[전교조 30년, 교육정책의 변화] ① 일제고사 폐지

전교조 결성 30년, 그간 전교조가 해온 가장 큰 활동의 영역 중 하나는 ‘교육정책 개선’이다. 교육정책의 변화로 학생들의 학교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야말로 학교가 변했다.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이슈 세 가지를 선정해 학교의 변화를 위한 전교조의 노력, 그리고 전교조의 활동에 담긴 참교육의 지향을 선생님에게 직접 들어봤다. 세 편에 나눠 싣는다.[편집자]

1) “경쟁교육 반대” 일제고사 폐지
2) “밥도 교육이다” 무상급식 실현
3) “우리 학생들에게 인권을 돌려주자” 학생인권조례 제정

아침 8시가 되기도 한참 전, 학생주임 선생님이 교문 앞을 지킨다. 등교하는 학생들이 교복은 단정하게 입었는지, 두발 길이가 길지는 않은지 살핀다. 여학생들은 교복 치마 길이까지 점검의 대상이다. 무사히(?) 교문을 통과한 학생들은 0교시 수업을 시작한다. 4교시까지 마치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도시락을 꺼내 든다. 급식을 신청한 학생들은 복도에 줄을 서 있다. 식사를 마치면 오후 수업 시작. 수업이 끝나도 귀가는 아니다.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야자)이 있기 때문이다. 야자뿐이겠는가. 시험을 앞둔 시기엔 학생들도 선생님도 긴장이 더하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학교생활….

독자들에겐 이 글이 나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경험하지 못한 옛날 옛적의 이야기일까? 나의 학교생활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가 변하고, 학생들의 학교생활이 하나둘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학생이 똑같은 시험지로 똑같은 시간에 치르는 ‘일제고사’는 없어졌고, 초등·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까지 도시락이 아닌 무상급식을 시작하는 학교가 점차 늘고 있다. 두발·복장 자유화 등을 비롯해 억압받던 학생들의 자유와 권리, 인권을 보장하는 ‘학생인권조례’도 생겼다.

이렇게 학교가 변할 수 있었던 중심에는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며 학생들을 가족만큼 잘 아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올해 나이 서른을 맞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님들은 내가 경험했던 학교생활이, 우리 학생들이 처해있던 교육 현실이 지금 학생들의 교육과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획일화·서열화 안돼”

“제가 학교에 다닐 때엔 매주 시험을 쳤어요. 성적이 안 좋으면 담임선생님한테 불려가 맞기도 많이 맞았죠.(웃음)”

부산 금사중학교 홍동희 선생님이 말한 자신의 학교생활이다. 자신은 매주 시험을 보면서 학교생활을 했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다.

전국 모든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동시에 치르는 ‘일제고사’가 없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3월에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보고, 6월엔 일제고사라고 말하는 ‘학업성취도평가’를 전국적으로 치렀어요. 12월이 되면 전국연합 성취도평가를 봤죠. 3월 진단평가에서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도 집에 못 가고 6월 평가를 준비하고, 또 남아서 12월 평가를 준비하고, 1년 내내 전국단위의 시험을 준비했다고 보면 됩니다.”

“일제고사는 학생들에게 엄청난 학업 스트레스를 가져왔다”고 홍 선생님은 말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인 2011년, ‘표집평가(표본추출)’로 실시돼온 일제고사(학업성취도평가)가 모든 학교에서 시험을 봐야 하는 ‘전집평가’로 바뀌었다. “학생이나 학교가 얼마나 학업을 성취했는지를 알아보고 다음 해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목적인 시험인데, 전집평가가 되면서 성취도평가 결과에 따라 학교와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학업성취도 결과는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을 평가하는 평가항목에 반영됐다. “시·도간 평가를 통해 예산을 차등 배분했기 때문에 교육청에선 성적을 잘 받아야 했죠. 시·도교육청에선 다시 지역교육청 평가에, 교장평가에, 각종 평가에 이 결과를 반영했어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니까 성취도평가 시기만 다가오면 학교에선 문제풀이식 수업을 하거나, 해당 5과목(국영수과사)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진행하고… 수업이나 교육과정이 파행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인 현상들도 다반사였다고 했다. “운동부 학생들은 훈련하다보면 수업을 많이 듣지 못해 성적이 좋지 않으니까 시험 보는 날엔 의도적으로 전지훈련을 보내거나,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에겐 시험기간에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한다거나, 전학생들이 들어올 때마다 성적을 먼저 보고….”

‘학습부진아’라고 불리던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남아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비교육적 낙인을 찍었던 시절이었다”고 홍 선생님은 회상했다.

▲ 2013년 부산교육청 앞, 일제고사 폐지 촉구 기자회견 [사진 : 전교조 부산지부]

스트레스를 받는 건 학생들뿐만 아니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 학업성취도평가가 전집평가로 전환된 후 2011년, 학교에서 학업성취도평가를 담당하는 ‘교육과정부장’이었던 홍 선생님. “시험 몇 달 전부터 교육청 장학사들이 학생들의 성적을 끌어올릴 방법을 제출하라는 둥, 학교에 찾아와 장학지도를 한다는 둥,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성취도평가가 끝난 후엔 성취도에 도달하지 못한 미도달자에 대한 구제책을 내놔야했다. 한마디로 일제고사는 “학생들과 교사 모두가 고통스러운 교육과정”이었다는게 홍 선생님의 평가다.

“‘교육과정’은 국가에서 만듭니다. 그 안에 교육의 ‘목적’이 있고,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내용’과 ‘방법’이 있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잘 배웠는지를 ‘평가’합니다. 이렇게 네 가지가 축으로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이 만들어집니다.” 국가가 이 교육과정을 다 틀어쥐고, 학업성취도평가를 통해 학생 모두를 평가해 성적에 따라 줄을 세우는 중앙집권적인 교육과정 중 하나가 바로 ‘일제고사’라고 했다.

홍 선생님은 “국가가 학교를 지배하기 위한 구상에서 시작된 평가 방식은 모든 수업과 교육활동을 획일화시켰고, 서열화시켰다. 교육자치에도 역행하고, 교육의 자주성을 해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2010년을 시작으로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면서 12월에 치르던 전국연합 성취도평가는 없어졌다. 이명박 정권 시절 표집평가에서 전집평가로 바뀐 학업성취도평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다시 표집평가로 전환됐다. 일제고사의 폐해를 전교조 선생님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실천했던 결과다.

홍 선생님은 현재 전교조 부산지부 지부장이다. 일제고사 폐지 운동을 벌일 당시 지부 정책실장을 맡기도 했다. “일제고사를 찬성하는 선생님은 거의 없었다”며 당시 선생님들의 활동을 전했다.

“당시 교육감과 지역교육장을 수차례 만나 일제고사를 도입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죠. 도입된 후엔 계속해서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일제고사 부활을 시작하던 시기엔 많은 학교에서 일제고사를 거부하기도 했어요. 시험이 있는 날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부모의 동의를 얻어 시민단체와 함께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어 체험학습에 갔습니다.” 선생님들은 일제고사를 치른 학교 앞에 가서는 1인시위를 했다. 전교조 선생님 중엔 일제고사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파면·해임 등 중징계를 받은 선생님도 있었다.

일제고사가 폐지되고 표집평가로 전환되면서 학교에도 변화가 일었다. ‘결과중심’의 평가가 아닌 ‘과정중심’의 평가가 보편화 되고 있다. 발표와 토론 중심의 수업이 이뤄지고 수업활동도 다양화됐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가르침’이 중심이 아닌, 학생들의 ‘배움’을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지는 것도 큰 변화라고 홍 선생님은 말한다.

학생들의 학교생활도 달라졌다. “일제고사가 없어진 후 OECD 꼴찌를 달리던 학생들의 행복지수가 상승하고 있어요. 학업성취도평가가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얼마나 억눌렀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입니다.”

지난 4월10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선 ‘기초학력’ 평가 결과와 함께 ‘학교생활 행복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에서도 5년 전보다 학교생활 행복도 ‘높음’ 비율이 20% 내외(2013년 중학생(43.6%)→2018년 중학생(62.7%)/ 2013년 고등학생(40.4%) → 2018년 고등학생(60.8%))로 상승했다. 전교조는 “교육과정 전반에 ‘점수’ 위주 경쟁 구도가 완화되고, 기존 견고했던 ‘성적’, ‘경쟁’과 ‘서열화’ 등의 시스템이 일정 부분 완화되기 시작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변화를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어렵고 학습의 양도 많아요. 교육과정을 새로 만들 때마다 정부는 학습양을 20% 이상 줄이겠다고 말하지만 실현된 적은 없고 오히려 더 늘어나는 현실입니다.” 홍 선생님은 교과서를 만들 때에도, 교육정책을 만들 때에도 학생들을 가장 알 아는 교사들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전교조와 진보교육감의 노력으로 고등학교에도 ‘혁신학교’가 도입되는 등 변화가 시작됐다. 그러나 대학이 서열화되고, 고등학교가 서열화돼 있는 현실에서 전교조 선생님들은 오늘도 ‘경쟁’, ‘성적’ 중심의 교육에 내몰린 학생들을 걱정하며 ‘교육체제 변화’를 이야기한다.

▲ 2009년 2년, 일제고사 폐지 투쟁 [사진 :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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