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5)] 사회민주주의적 경제민주화 사례① 독일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 사례에 이어, 사회민주주의적 경제민주화사례를 독일과 스웨덴, 두 편에 나눠 연재한다.[편집자]

1. 유럽 나라들의 경제민주화 특징

앞서 소개한 미국, 일본, 이스라엘 등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를 추진한 나라들의 경우 독점자본의 폐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독점자본규제, 재벌개혁을 추진했다. 반면, 유럽의 나라들은 전쟁과 공황에 의한 자본주의 체제붕괴 위기에서 노동자의 경영참여 등 권리보장,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포괄적인 경제민주화를 추진했다. 이들 나라들은 노동계급의 다수를 조직한 산별노동조합과 노동조합에 기반한 사회주의정당(사회민주당)이 강력한 대중적,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 이들 나라에서 경제민주화는 노동조합과 사민주의정당의 주도와 참여하에 이루어졌으며 독점자본의 규제만이 아니라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노동자의 경영참여, 포괄적인 사회복지를 지향했다.

2. 노사공동결정제도의 도입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의 위기에 몰린 1918년, 독일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과 병사들의 반란, 독일 11월 혁명이 일어났다. 노동자들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의 보장, 50인 이상 기업에 노동자위원회 설치, 8시간노동제 실시 등을 요구하여 중앙노사공조협정을 체결하였다. 이는 패전과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자본주의 체제붕괴 위기에 몰린 자본가들이 자본주의 체제유지를 위해 노동자들에게 양보한 결과다.

노사간합의는 1차 대전 이후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사업장협의회법(1920), 감독이사회법(1922) 등을 통해 노동자평의회와 사업장협의회 구성을 의무화하고, 노동자대표의 감독이사회 파견이 법제화되었다.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보장되었던 공동결정제는 나치정권하에서 1934년 ‘국가노동질서법’ 제정을 계기로 폐기되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연합국의 지배하에 있던 삭탄철강산업에서 노사동수의 공동결정제가 도입되었다. 이후 서독정부가 들어선 후 몬탄공동결정법(1951년), 종업원평의회법(1952년), 공동결정법(1976년)을 통해 석탄철강산업과 전 산업에 공동결정법과 종업원평의회제도가 도입되었다.

3. 공동결정제도의 내용

독일의 노사관계와 기업지배구조의 특징은 이원적인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산별노동조합과 산업별 사용자단체가 맺는 산업별 단체협약에 의해 임금, 근로조건 등 노사간 주요 협약이 맺어지며 사업장 차원의 인사, 경영, 복지에 관한 사항은 종업원평의회와 공동결정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종업원평의회법(1972년)에 따르면 5인 이상의 상시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에는 종업원평의회를 설치해야 하며, 평의원 수는 근로자 20인 이하 사업장은 1명, 1천 명인 사업장은 11명, 1만 명 사업장은 30여 명으로 구성된다.

종업원 평의회의 의사결정 참가권의 정도는 사안에 따라 다른데, 임금 및 작업조건에 관해서는 공동결정권, 인사 사항에 대해서는 동의권 또는 협의권, 경영정책과 관련해서는 정보요구권 정도를 가진다.

독일의 기업구조는 주식회사의 경우 주주총회가 최고결정기관이며 일상적인 기구로 감독회(감독이사회)와 이사회(경영이사회)가 있다. 감독회의 주요 임무는 이사회에 대한 감독과 이사의 지명·해임이며, 이사회의 권한이더라도 주요 사안의 경우 감독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사회는 기업의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며 일상적으로 기업의 최고결정기구 역할을 한다.

몬탄공동결정법(1951년)의 특징은 감독회의 노사동수 구성과 노동이사제의 도입이다.

감독회는 보통 사용자 측 대표 5인, 노동자 측 대표 5인, 중립적인 인사 1인 등으로 구성되며, 노동자 측 대표 2인은 종업원평의회에서 추천하며 3인은 전국적 노동조합이 협의하여 추천한다. 또한 이사회 구성원으로 노동이사 참여를 제도화하고 있다. 석탄철강산업 외 전산업에 적용되는 공동결정법(1976년)에서는 감독회와 노동이사참여가 몬탄공동결정법에 비해 약화되었다.

4. 공동결정제도의 의의와 한계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도는 1, 2차 세계대전 후 벌어진 강력한 노동자 투쟁의 결과이자 사용자 측의 불가피한 양보에 의해 만들어졌다.

노사공동결정제도는 기업단위에서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통해 산업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확대했으며 독일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의 사업장 내 권리보장과 산업별 교섭을 통한 평등의 실현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핵심과제를 산업영역에서 실현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90년대 초반 폭스바겐의 경영위기 시 대규모 정리해고 없이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나누기를 통한 위기극복은 대표적인 긍정사례다.

그러나 독일식 공동결정제도는 한계 또한 갖고 있다.

제도도입 자체가 자본가의 불가피한 양보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이후 체제안정화에 따라 자본 측의 반발이 확대되고 있다. 실제 1970년대 만들어진 공동결정법과 종업원평의회법은 1950년대에 비해 노동자의 권리가 약화되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산업별교섭에 비해 사업장별교섭의 규정력이 강화되고 있다.

종업원평의회는 사업장 내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긍정성을 갖지만 사업장단위에서 노동조합의 대표성과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효과 또한 발휘한다.

5. 한국식 공동결정제도의 도입을 위해

노동자 경영참여와 공동결정제는 노동조합운동에는 양날의 칼과 같다. 노동자의 경영참여 권한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경영에 대한 공동책임과 노사협조주의가 확산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전근대적 재벌행태와 기업경영 관행을 개선하고, 노동조합운동 또한 경제주의를 극복하고 경영과 산업정책에 대한 책임있는 역할을 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 사업장 단체교섭의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인사, 노무, 경영 관련 사항에 대해 공동결정이 아니더라도 교섭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 사용의 남용, 경영위기대응에서 정리해고일변도의 대응 등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외이사제가 도입 취지와는 무관하게 총수의 전횡을 합리화하는 거수기 역할로 전락한 조건에서 그나마 노동조합에 기반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이사제의 도입은 기업경영문화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공공부문에 한정돼 시도되는 노동이사제를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기업에 적용하는 것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분식회계와 불법경영을 막아내고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을 실현하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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