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으로 가고 있는 노동기본권 확대 논의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를 앞둔 4/1~4/3 민주노총은 국회 앞에서 노동법개악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을 벌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최저임금결정구조 개편,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안합의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집회과정에서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임원 등 다수 간부들이 연행되었으며 민주노총 위원장이 집회현장에서 연행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문재인정부는 대선공약으로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표방했으며 출범 직후 100대국정과제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호기롭게 추진되던 노동존중사회-노동기본권확대는 출범 1년만인 2018년부터 행보가 꼬이기 시작했다. 보수언론의 역공과 영세자영업자의 저항에 직면하여 최저임금공약을 포기한 데 이어 하반기에는 친재벌행보를 노골화했다.

경제지표의 악화로 최저임금은 포기하더라도 노동기본권 확대는 관철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반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노동개혁정책의 실종, 더 나아가 노동법개악시도로 귀결되었다. 문재인정부는 전교조 합법화, 특수고용노동자성 인정 등 노동계의 절박한 요구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통한 노동기본권 확대를 약속했지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동기본권보장 논의는 사용자측이 제기한 노동법개악의 흥정물로 전락해버렸다.

애초에 제기된 ILO기본협약의 비준 등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동기본권보장은 사라지고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제도 개악, 단체행동권의 제한 등 재벌의 청부입법만 남게 되었고 노동계는 과거 반노동정권하에서처럼 노동법개악저지를 위한 거리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2. ILO기본협약, 어떤 내용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자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인 한국이 노동권, 사회권보장수준에서 하위권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진영은 1991년 한국의 ILO가입 이후 일관되게 ILO기본협약 비준을 요구해왔다. ILO기본협약 비준을 통해 후진적인 한국의 노동권을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ILO는 어떤 기구이며 기본협약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가? 
ILO는 유엔 전문기구 중 하나로 1919년 창립되었으며 각국의 정부, 사용자대표, 노동자대표로 구성,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187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해있다. 올해는 ILO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오는 6월10일 제네바에서 기념총회가 개최되고 문재인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다. 

ILO는 1998년 총회에서 200여개의 협약 중 4개분야의 8개협약을 <노동에서 기본원칙과 권리에 관한 선언>으로 채택했으며 이를 기본협약(또는 근본협약)이라고 한다. 
4개원칙은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금지, 균등대우, 아동노동금지이며 한국은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금지 관련 4개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 가입하지 않은 기본협약중 ‘결사의 자유 원칙’ 관련 87호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의 보장협약, 98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이 노동기본권보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협약이다.

구체적으로 87호협약은 △근로자와 사용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사전 인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여 단체를 설립하고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제2조) △근로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행정당국에 의하여 해산되거나 활동이 정지되어서는 안된다(제4조), 98호 협약은 △근로자는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인한 고용거부, 조합가입 또는 노동조합활동을 이유로 해고등 기타 불이익행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제1조) △근로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그 설립, 운영 및 관리에 있어서 상호간 또는 상대의 대리인이나 구성원의 모든 간섭행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제2조)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3. ILO기본협약 비준의 의의  

ILO기본협약 비준은 ILO회원국의 당연한 의무이며 한국의 노동권과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ILO 가입 이후 한국정부가 28년 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미루어온 기본협약비준을 더 이상 미룰 명분과 이유가 없으며 국제사회 또한 한국에 기본협약비준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EU는 한-EU 자유무역협정 후속사업으로 한국이 ILO기본협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분쟁조정해결절차를 밟겠다고 밝히고 있다. 

ILO기본협약 비준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경사노위 논의에 노동기본권강화 방향을 명확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부가 노동기본권 확대에 책임있게 나서지 않고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로 넘기면서 재벌의 반노동정책 물타기로 방향을 상실한 노동법개정 논의를 기본권강화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ILO기본협약비준은 전교조·공무원 노동3권보장,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보장, 노동조합활동의 자유확대 등을 통해 노조탄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당장 법적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투쟁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이후 국내입법화의 교두보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4. 즉각적인 ILO기본협약 비준투쟁에 나서자 

지금까지 노동운동진영은 ILO협약의 비준에 선행하여 또는 동시적으로 노동기본권보장을 위한 국내입법화를 주장하고 추진해왔다. 이는 국제조약의 비준이전에 국내입법을 통한 노동기본권확대가 바람직한 기본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국내정치환경과 여론을 핑계로 노동기본권확대를 미뤄왔으며 경사노위에 책임을 미룬 결과 현재는 노동기본권 논의는 방향성을 상실했다. 앞으로도 경사노위에서 의미있는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현재 조건에서 ILO기본협약을 비준하는 방도는 선비준-후입법방식이 유일하다. 
우리나라 헌법은 조약의 체결비준권이 대통령에게 있으며 국회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결심하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ILO기본협약을 비준하는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기본협약비준에 따른 후속입법은 국회가 판단할 몫이며 만약 후속입법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과 노동자들이 국회에 책임을 물을 문제다. 

현 정부가 국회의 동의여부가 명확하지 않아 비준절차를 밟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의지가 없으며 자기 권한과 임무를 방기하는 핑계에 불과하다. 
야당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장관인사를 강행하고 있다. 청문회를 통한 반대의견은 국회의 권한이며 청문회절차를 거친 장관 임명권한은 대통령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2019년 6월 ILO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국제사회의 관심과 한국정부에 대한 압박, 미약하지만 남아있는 문재인정부의 노동개혁의지를 고려할 때 강력한 대중투쟁과 여론을 조직해야 한다. 
노동법개악저지 투쟁을 넘어 노동기본권 보장-ILO기본협약 비준쟁취 투쟁을 공세적으로 벌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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