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반도평론 (2)

1. 7.27의 회상

한국(조선)전쟁은 기이한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핵을 처음으로 거머쥔 거대 패권제국이 핵도 없는 동방의 작은 신생공화국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서명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강대성 신화가 처음으로 여지없이 깨진 전쟁이었다. 전쟁 초기 미 합참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전쟁에 승리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여 핵무기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미국은 속전속결과 승전을 낙관하였으나 이 전쟁은 미국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1950년 12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전쟁승리를 장담하던 더글러스 맥아더의 크리스마스 총공세가 대패로 돌아가자 미국은 경악했으며, 더 이상 전쟁의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다. 맥아더는 한반도에서 원자폭탄 26개를 사용할 목표물을 지정하기도 했으며 원자폭탄 30~50개를 투하해 동해에서 서해까지 ‘방사능 코발트 벨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전쟁 개시 6개월 만에 미국은 핵무기 사용을 적극 검토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핵사용 가능성, 중국과의 확전과 인민군의 분산 집중전술에 밀려 결국 핵을 사용치 못했다. 핵무기가 사용될 뻔했던 가장 위험한 시기는 1951년 4월로 알려져 있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핵무기를 중국과 이북 목표물에 투하하라는 명령서에 서명까지 했다고 한다. 

▲ 더글러스 맥아더(왼쪽), 존 볼턴(오른쪽)

오늘의 워싱턴 군산복합체를 대변하는 존 볼튼과 유사한 ‘反(반)휴전파’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더글러스 맥아더이다. 맥아더와 트루먼의 대립은 극심했는데 휴전협상은 1951년 4월 트루먼이 맥아더를 해임한 뒤인 1951년 7월 개시되어 2년 넘게 이어지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으로 매듭지어졌다. 트루먼이 핵을 쓰지 않고 정전협상에 임한 것은 그가 평화주의자여서가 아니다. 승산 없는 전쟁에서 후퇴하는 현실적인 길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2년여의 휴전협상 기간 중에 전투는 더 치열하게 전개되어 전체 전쟁 사상자의 70%가 이 기간에 발생했다. 

7.27 정전협정은 체결되었으나 전쟁의 양상은 ‘총성 없는 핵 대결’로 바뀌어 70년 가까이를 지속해 왔다. 그러다가 2017년 11월 조선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다시금 전변되었다. 동아시아 국지전에서 열핵 세계대전으로, 미국의 일방적 핵 위협에서 조미 상호 국가전멸을 위협하는 전쟁으로 바뀌었다. 중국 이외에 사회주의국가로는 처음으로 조선이 핵보유국 지위에 오르자, 냉전 해체로 가라앉았던 미국과 서방의 자본주의체제 안전보장 문제가 다시 전면에 대두된 것이다. 끝나지 않은 한국(조선)전쟁의 질적 전화, 이것이 역사적인 조미 정상회담이 열린 근본 배경이다. 이 회담의 본질은 엄밀히 말하면 흔히 알고 있듯 비핵화 회담이 아니다. 한국(조선)전쟁을 완전히 종결하는 종전회담이자 평화회담이다. 

트럼프 정부의 요청으로 66년 만에 종전회담이 열렸으나 양상은 7.27의 연장선에 있다. 7.27 당시 미국 내부가 핵 확전과 정전협정을 두고 찬반으로 갈렸던 것처럼 오늘의 미국은 종전을 두고 갈라져 있다. 협상은 시작됐으나 마지막 전투와 술수는 과거보다 더 심하다. 오리무중의 협로에다 중단과 재개의 반복은 7.27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2. 선의에 악의로 답한 결과 

3월15일 평양에서 진행된 긴급기자회견에서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부상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이 (핵·미사일 실험 유예 등) 우리가 취해온 조처들에 상응하는 조처를 하지 않거나 정치적 계산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미국의 요구에 양보하거나 협상을 계속할 의사가 없다.” “미국은 지난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의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고 우리는 미국과 협상을 지속할지, 그리고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유지할지 등을 곧 결정할 것”이라고 미국 AP와 러시아 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협상을 계속할지, 핵시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모라토리엄)을 유지할지 여부에 대해 조만간 밝힐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의 핵시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을 자신의 가장 큰 외교적 성과로 내세워 왔다. 역사상 처음인 조미협상 개시만으로도 트럼프는 오랜 동안 누적 심화된 미국 국가안보 위기의 급한 불을 끈 셈이다. 역대 미국의 어느 대통령도 해내지 못한 가시적 성과를 일궈낸 것이다. 그런데 급한 불을 끄자마자 트럼프 정부는 북의 비핵화 의지와 선제적 핵 시험장 폐기, 그리고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조처를 악용해 나섰다. 과감히 결단해야 할 대북제재 문제를 두고 좌고우면하면서 시간을 끌고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했다. 그러면 북이 후퇴하여 더 유리한 자리에서 협상을 주도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 같다. 베트남 하노이 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조미관계를 진전시키려 한 게 아니라 다른 정치적 계산 아래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고 시간 여유를 부렸다. 

최선희 부상의 긴급회견 직후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이 “(모라토리엄은)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이라며 달래기에 나섰으나 북은 지난 22일 전격적으로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철수를 단행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는지 트럼프 대통령은 곧이어 미 재무부의 대북 추가 제재 철회를 지시했다. 북은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철수를 통해 미국뿐 아니라 미국에 편승하는 남쪽의 태도도 문제 삼고 있음이다. ‘미국의 제재 범위에서 남북교류를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 자세와 마치 완전 폐지하는 양 떠벌이던 3월 한미연합군사훈련(키리졸브)을 ‘동맹’ 훈련으로 지속하는데 대한 북의 대응이다. 남쪽과 미국이 4.27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조미공동선언을 위반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상유지를 하면서 유리한 입지를 염두에 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협상의 밑돌이 빠지면 그동안의 성과는 물론 협상 자체가 허물어질 수 있다. 지금의 위기가 바로 그렇다. 북도 미국 내부의 심각한 정쟁과 반트럼프 세력까지를 감안하며 대응하는 것으로 관측되지만, 이번 위기는 사실 트럼프가 자초한 ‘오판’의 결과라고 하겠다. 진정 트럼프가 이런 결과를 의도했다면 협상은 여기서 끝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대통령 재선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는 트럼프에겐 부메랑으로 작용해 상당한 정치적 타격이 될 것이 틀림없다. 

현재 조미간 협상에서 유일한 성공비결은 이른바 ‘빅딜’이나 일방적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간 상호신뢰에 기초한 ‘단계별 동시행동’이다. 이것이 회담의 전제이고 대원칙이다. 조미협상에서는 힘을 통한 제재나 미국내 정쟁을 염두에 둔 정치적 술수 따위가 더는 통할 수 없음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만약 일방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협상에서 이미 마련된 우호적 환경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협상 자체에 위기를 부를 것이다. 뚫지 못할 벽에다 찬 공은 결국 트럼프에게 되돌아갔다. 

3. 4.27시대, 자주통일투쟁의 지위

4.27시대란 과연 어떤 시대이며 4.27시대의 목표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4.27시대를 ‘한반도 평화시대’, ‘공동번영시대’, ‘통일시대’ 등으로 일컫는다. 모두 의미 있는 규정이다. 필자는 지난 6.15시대가 통일의 준비기였다면, 4.27시대는 민족의 단합된 자주역량으로 결론을 짓는 통일시대라고 본다. 한마디로 ‘자주통일을 여는 시대’라 하겠다. 4.27시대는 남북의 반제민족자주역량이 외세를 제압하기 시작한 승리의 시대이다. 그래서 4.27시대의 최종 목표와 완결은 자주통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체감하듯 4.27시대의 양상과 경로는 탄탄대로가 아니다. 새로운 통일 역사를 창조해가는 4.27시대 역시 역풍과 외풍, 그리고 진퇴와 우여곡절은 피할 수 없으며 그런 가운데서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다. 4.27시대의 전진은 필연이다. 4.27시대를 만든 근본 힘은 외세나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남북해외 우리민족의 70여년 반외세 자주역량이기 때문이다. 

4.27시대 자주통일의 완성을 앞당기려면 조미간에 계산할 것이 있으며 남북당국과 정당, 사회단체가 제각기 할 역할이 있다. 한국 진보 역시 커다란 역사적 책무가 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성은 원래 변하지 않아 조미협상은 성공 가능성이 없으니 기대와 관심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지난 7.27정전협상 과정과 결과는 무의미하고 국지적 개별전투만 중요하다는 주장처럼 단견이다. 반대로 조미협상에 일희일비하며 스스로의 노력과 투쟁 없이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의 이익만 계산하는 태도 역시 문제다. 

새로 열린 4.27시대는 온 국민에게 거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1년도 안 되는 동안 3차례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으로 한국 민중은 북녘 지도자와 사회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를 맞았다. 미국의 부당 간섭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민족단합의 기운이 높아가고 국민들은 북과 미국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내부 정쟁과 대결을 끝내고 전면적인 남북 교류협력이 진행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온 국민이 남북 철도와 도로의 연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갈망하고 있으며, 나아가 유라시아 철도 연결과 러시아 가스관의 서울 진입이라는 새 시대를 고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통일이 단순히 평화만이 아니라 민생이며 일자리이자 젊은 새 세대의 활로임을, 통일이 밥이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아 가고 있다. 누가 통일을 원하며 누가 우리민족의 번영을 방해하는지도 알아가고 있다. 역사적인 고비에는 모든 감추어진 본질이 대중적으로 만천하에 드러나는 법이다. 4.27시대는 대중적 통일열망과 함께 대중적 자주통일운동이 새롭게 열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4.27시대에는 분단적폐 청산이 중핵적 과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분단적폐청산투쟁, 자주통일투쟁과 민족의 단합을 위한 거국적 ‘북 바로알기 운동’과 ‘통일국가 건설운동’, 이것이 4.27시대 일관되게 한국 진보가 해야 할 선도적 역할이다. 우선 알아야 통일이다. 새 시대의 주인인 대중은 새로운 정보와 진실을 원한다. 4.27시대가 깊어갈수록 ‘북 바로알기’는 필연적으로 새 세대와 근로대중 자신의 요구로 발전한다. 통일의 주인은 소수가 아닌 대중이다. 주류 보수언론에 의해 왜곡된, 북에 대한 그릇된 허상을 깨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접해 ‘마음의 38선’을 허무는 것이 통일의 시작임은 물론이다. 

4. 제재를 넘어 남북 전면교류로, 통일로!

국가보안법 철폐,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4.27시대 한국 진보 앞에 놓인 과제들이다. 바위처럼 무겁지만 4.27시대가 전진하며 온 민족의 힘으로, 대중의 힘으로 능히 하나씩 해결할 수 있다. 당면해서 대북제재는 단순히 북을 봉쇄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번영과 행복추구권을 동시에 봉쇄하고 있다. 대북제재가 아니라 우리 남북 민족에 대한 제재이다. 대북제재는 미국이 그어놓고 붙들고 있는 ‘새로운 38선’이다. ‘통일 제재’이자 ‘민족번영 제재’이다. 따라서 제재 문제는 조미간만의 협상의제가 아니다. ‘새로운 38선’ 제재 문제 해결 없이 번영과 통일은 없다. 

나라의 독립도 통일도 결코 저절로 오는 법은 없다. 촛불투쟁이 그러했듯 민중과 함께 한국 진보가 움직여야 국민대중이 움직이고 대중이 움직여야 ‘그들도’ 움직인다. 4.19 이후 들었던 통일구호가 다시 생각난다. “이 땅이 뉘 땅인데 오도 가도 못하느냐?!”,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개성, 금강산에서!” 온 국민의 염원을 모아 “남북 전면교류 확대! 제재 반대!” 미국의 한국 정부에 대한 간섭을 중지시키고 전면교류를 우리 힘으로 실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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