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겉과속 20190313

1. 불쇼를 벌이는 구원투수 볼턴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예상과 사뭇 다른 결과로 끝나자 갖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세부가 잘 알려지지 않으므로 결과에 이른 과정을 상세히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회담이 끝난 직후에 연 기자회견에서 합의를 만들지 못한 책임을 북측에 떠넘기려는 발언을 함으로써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북측이 ‘제재의 완전해제를 요구했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북은 그날밤 늦게 리용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제재의 부분해제였다’라고 반박하였다.

이 공방에 대해 미국의 AP통신마저 ‘이번에는 북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보도하였다. 궁지에 몰린 미국은 국무장관 폼페이오가 나서서 ‘북이 기본적으로 제재의 전면해제를 주장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핵의 완전폐기’를 주장하듯이 북이 협상에서 전면해제를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반응에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이제는 볼턴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그는 논점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생화학무기와 미사일까지 완전 폐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볼턴은 이 황당한 주장으로 관계개선이나 평화정착에는 관심이 없고 적대적 대결을 고수하겠다는 속내만 드러내게 되었다.

볼턴은 위기에 빠진 트럼프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실점을 하는 엉터리 구원투수, 이른바 불쇼를 펼치는 3류 구원투수 노릇을 하고 있다.

2. 하노이 정상회담은 미국의 준비된 책략?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미국이 처음부터 준비한 치밀한 전략전술에 의해 합의가 결렬된 것처럼 분석 묘사하고 있다.

이 주장을 요약하면 트럼프는 처음부터 합의를 할 생각이 없었으며 갖은 술책을 동원하고 구사하여 회담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이렇게 저렇게 드러난 회담의 진행과정과도 맞지 않다.

‘조미 양국의 수뇌분들은 이번에 훌륭한 인내력과 자제력을 가지고 이틀간에 걸쳐서 진지한 회담을 진행하셨습니다.’ 북의 리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회담이 매우 어렵게 진행되었으나 합의가 이루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북의 전격적인 제의들에 의해 미국이 자기 요구를 거듭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트럼프가 처음부터 합의를 할 생각이 없었다면 굳이 이런 쇼까지 할 이유가 없다. 최종 서명에 이르건 이르지 못하건 정상간 협상에서 양보와 후퇴를 하는 것은 이후를 생각해서도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상회담 회의 탁자를 뒤엎거나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이유가 무엇이건 트럼프에게 결코 이득이 되는 일도 아니다.

‘세계가 놀랄 만큼 파격적인 하노이선언 초안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두 수뇌분이 수표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조선신보는 3월6일 논평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트럼프도 기자회견에서 합의문 최종안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서명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하였다.

20시간을 들여서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까지 온 그에게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는 말이었다. 그 사정은 누구나 짐작하듯이 미국내 반트럼프세력이 펼친 강력한 공세였다.

트럼프는 정상회담 동안 자신의 개인변호사였던 코언이 등장하는 정치추문 폭로청문회에 시달렸고 점점 활력과 자신감을 잃어갔다. 막판 회담장에 나타난 볼턴은 반대진영이 보낸 사뭇 위협적인 메시지를 트럼프에게 전달하였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는 볼턴이 회담을 파탄내는 책동을 벌이는 것을 묵인하였다.

볼턴이 확대회담장에서 꺼내든 추가핵시설문제는 사실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그것을 협상의 추가사안으로 삼으려는 것은 최종합의를 막으려는 수작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북측은 볼턴이 황당한 주장을 내놓는 것에도 놀랐겠지만, 미합중국 대통령을 재끼고 볼턴이 벌이는 행태를 보며 깜짝 놀랐을 것이다. 북은 결코 ‘추가 핵시설을 미국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북은 짐작하고 있던 트럼프의 저치와 사정을 직접 보게 되었다. 이번 회담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북은 회담을 여기에서 마치는 것이 그나마 좋겠다는 판단을 하였을 것이고 이렇게 하여 2차 북미정상회담은 정상회담 사상 전례없는 일정 중단이라는 방식으로 마치게 되었다.

백악관 대변인 사라 샌더슨이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활짝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김정은 국무위윈장은 도저히 돌연히 파탄난 회담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외교적인 행동이라고 설명하려해도 일부 분석가들이 주장하는 ‘뒤통수를 맞은’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이 사진은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막판에 벌어진 사태의 진상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행은 회담장을 먼저 떠났다. 결렬된 회담장을 누가 먼저 나가느냐 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일이다. 회담 결렬의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은 이런 행보를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책임회피와 전가로 일관한 트럼프의 기자회견을 반박하는 것도 꽤나 오랜 시간 숙고 끝에 하였고 그 강도도 북이 해오던 수준에 비하면 매우 부드러웠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북은 트럼프나 미국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말을 매우 아끼고 있다. 트럼프의 복잡한 처지와 곤란한 사정을 다 보았기 때문이다.

3. 그때와 지금은 같지만 또한 다르다

미국이 처음부터 회담을 파탄낼 작정이었다는 주장은 미국이 세상 일을 좌지우지한다는 인식의 기초위에 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시대착오적이다. 북미간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 한반도에 몰아치고 있는 역사적 변화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주장이다.

물론 미국이 다른 나라들 특히 북과의 중요한 합의를 뒤에 가서 깬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90년대초 북과 미국은 미국의 전술핵무기 철수, 팀스피리트훈련 중단과 북의 핵확산금지조약(NPT)가입,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 수용을 주고받는 합의를 이뤄냈다. 하지만 미국은 북이 신고한 핵물질량이 자신들이 계산한 것과 맞지 않는다며 시비질을 시작하여 이 합의를 파탄내고 한반도를 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다.

이 위기를 넘기고 1994년 제네바합의가 이뤄지자 다시 미국은 ‘금창리 지하에 숨겨놓은 핵시설이 있다’며 이 합의 이행을 거부하고 합의를 파탄내려고 책동했다.

제네바합의는 간신히 봉합되었으나 미국은 제네바합의에 규정되어있지도 않은 ‘우라늄농축의혹’을 제기하며 결국 제네바합의를 이행을 전면 거부하였다.

6자회담에서 만들어진 당시로서는 한반도문제해결의 완성판이라고 불리웠던 9.19공동성명도 미국이 지엽말단적인 시비질을 연이어 벌여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말았다.

미국의 이 같은 합의 파탄 행각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합의 내용은 침략과 지배를 추구하는 미국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은 합의가 이뤄진 뒤에 부랴부랴 합의를 깨기위해 갖은 수작을 부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도 미국이 합의를 한 것 자체가 고도의 계산과 전략에 입각한 것이라는 식의 분석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이 같은 관점과 인식이 가진 문제는 현재의 역사적 변화를 바로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전의 합의 파탄과 지금의 대화와 협상에는 명백히 다른 점이 있다. 당시에는 미국의 합의 이행을 거부해도 특별한 대책이 없었다. 즉 미국에게 합의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약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북미관계는 크게 변화하였다. 무슨 합의든 만들어서 북핵의 위협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것이 미국의 절박한 사정이다. 뿐만아니라 북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경제봉쇄 조치는 효력을 거의 다 잃었다.

이제는 북과 회담을 더 바라는 쪽은 미국이다. 트럼프가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지만 결국 북과의 협상장으로 나오게 되는 것은 이 같은 사정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북미관계 개선의 키를 쥐고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이다. 여기에 미국의 무슨 고도의 전술이나 책략이 작용할 여지는 별로 없다. 더더군다나 지금의 미국에게는 누구의 뒤통수를 때릴 능력은 없다.

4. 숭미사대주의 낡은 잔재와 결별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번 하노이에서만 우왕좌왕하고 갈팡질팡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1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결정해놓고 돌연 회담을 못하겠다는 희안한 ‘공개친서’를 보내는 일을 벌인 전력이 있다.

이번 2차회담도 수개월동안 ‘한다’, ‘못하겠다’를 수없이 번복했다. 워싱턴까지 간 김영철 부위원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건네자 최종 결정하였다.

대화반대론자들, 적대정책주구주의자들의 압박과 위협이 매우 거세다는 것을 말해주는 일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의 처지이고 트럼프의 입장이다.

북미간 대화와 협상에서 주도권과 결정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는 이제 세상이 다 아는 일이되었다. 그런데 일부 사람의 눈에는 왜 미국만 보이는 것인가.

물론 미국의 대북대결주의자들, 적대정책 추진세력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민주당과 공화당 주류집단을 중심으로 한 트럼프의 정치적 반대자들과 손을 잡고 2차 북미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공동선언이 나오는 것을 막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그들은 새로운 대북적대정책을 추구할 수 없다. 그저 북이 강경책으로 선회할 것을 걱정해야 하는 한심한 처지가 되어 있다. 그들 내부에서조차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했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모든 것을 모의하고 결정한다는 식의 사고가 있다. 일부 사람들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미국을 규탄하기 위해서라는 좋은 뜻에서 이런 분석을 내놓는다고 한다.

그러나 선정적인 구호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해도 사실을 뒤집어 놓으면 될 일도 안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이런 분석의 밑바닥에는 음모론식 정세인식을 낳는 숭미사대주의의 잔재가 짙게 배어있다.

이런 낡은 생각을 떨쳐 버리지 않으면 판문점시대, 새로운 역사의 시대를 해쳐나갈 수 없다. 미국 강대성의 신화에 사람들을 묶어두면 대중의 힘은 절대로 이끌어 낼 수 없다.

5. 새로운 선택은 있어도 역사적 변화는 계속된다

지금 세계는 북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면 북도 깊은 고찰과정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를 예상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이런 상황까지 예견하여 입장을 천명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년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대강의 방향을 짐작할 수도 있다. 물론 하노이 회담의 과정과 결말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확인된 트럼프의 한계와 미국의 속셈이 매우 심각하기도 했다. 이런 때문에 매우 전격적인 정책선회가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북미관계개선과 한반도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시대의 흐름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흐름은 미국자신의 책략이나 선택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달라진 북미간의 힘의 균형에 의해 강제되고 있는 것이므로 달라질 수도 없다.

하노이회담이 가져온 변화는 미국의 본심과 한계가 더 많이 노출되었다는 것, 미국이 더욱 수세에 몰리고 피동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며 남북관계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더 커진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때에 미국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

민족허무주의를 낳을 수 있는 정세분석이나 주장은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는 것이며 백해무익한 것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우리 민족의 힘을 믿어야 한다. 진보운동과 통일운동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결코 작지 않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남북관계를 더 빠르게 발전시키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