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 제도개선위, ‘노동기본권 보장방안’ 논의는 어디가고… 민주노총, 6일 총파업
오는 6일 민주노총 총파업, 7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본위원회를 앞두고 경사노위와 청와대, 그리고 국회 앞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27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발표한 후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7일 열리는 경사노위 본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할 거란 전망 속에 ‘야합’이라고 지탄받는 ‘탄력근로제 기간확대’를 승인할 예정이다. 이에 맞서 민주노총은 6일 총파업 후 전국 동시다발 총파업·총력투쟁대회를 열고 수도권 조합원들은 국회 앞으로 모인다. 11일부터는 가맹조직이 주최하는 릴레이 상경투쟁도 예정돼 있다.
최저임금 제도 개악, 탄력근로제 사안만큼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사는 또 하나의 이슈는 ‘ILO 핵심협약 비준’관련 논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문재인 대통령을 오는 6월 열리는 ‘ILO 100주년 총회’에 초청했다. ILO 총회는 오는 6월10일부터 21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다. 문 대통령의 ILO 총회 참석이 예상되는 가운데 그에 앞서 ‘ILO 핵심협약’ 비준 여부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정부와 문 대통령 입장에선 사회적 합의와 입법까지 속도를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게 뻔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ILO 총회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ILO 정식 회원국이 됐다. 그러나 ILO 핵심협약으로 분류되는 8개 가운데 4개는 아직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단체교섭권 보호에 관한 협약(87·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105호) 등 4개 협약이 그렇다.
경사노위에선 탄력근로제 합의에 이어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미명하에 ‘ILO협약 비준’ 역시 처리를 서두르고 있지만 노동계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경사노위 내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제도개선위)는 그간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노동법 개정 의제 ‘노동기본권 보장방안’을 다뤄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논의 내용은 심상치 않다. ‘노동조합의의 단결권·교섭권·행동권을 국제기준만큼 보장하자’는 것이 ILO협약 비준의 핵심인데, 경영계(사용자)의 요구는 이런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ILO 핵심협약 취지에 반하는, ‘파업하지 말라’, ‘노동조합 하지 말라’는 것에 가깝다.
경사노위 사용자위원인 전국경제인총연합회(경총)은 ▲쟁의행위 기간 대체근로 허용 ▲쟁의행위 시 직장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엄격화 등을 요구했다.
이 말은 즉, ▲노조의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을 허용해 생산에 차질을 빚지 않고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며 ▲파업 시 직장 내에선 선전물 하나 들지 못하게 하고 쫓아 낼 수 있으며 ▲단협 유효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늘려 변화하는 노동조건 개선을 어렵게 하며 ▲부당노동행위를 마음껏 허용해 주며 ▲노조 파업 시 파업형태와 기간을 명시해 노조의 파업전술을 공개하고, 쟁의행위 찬반투표 효력은 60일, 부결 시엔 6개월 내 동일 사유 재투표를 금지하는 등 파업절차를 복잡하게 해달라는 청원이다.
이를 두고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노총·금속노조·공공운수·서비스연맹 법률원 등 노동법률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재벌(경총)주장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에 개입하려는 부당노동행위이며 노동3권을 부정하는 위헌적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노동권은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지, 흥정이나 거래, 바겐세일의 대상이 아니”라면서 “21세기 노동자들을 19세기 단결금지, 노동조합 혐오법률로 묶어놓고 얼마만큼 풀어줄지 재벌들과 협상해 오라는 정부 태도에 절망하고 분노한다”고 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에 이어 급기야 노동법률단체들까지 “재벌과의 음험한 거래가 아니라, 헌법상 노동3권과 국제노동기준에 따른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난달 27일 경사노위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재벌·사용자들의 청원이 실현되면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은 ILO 제87호 협약과 결사의 자유 원칙에 어긋난다. ILO는 한국의 대체근로 관련법에 대해 “(대체근로)허용 폭이 너무 넓어 국제노동기준에 부족하다”고 지적해 왔는데, 이를 사용자들은 더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ILO가 정당한 파업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는 ‘직장점거’ 역시 사용자들은 금지해 달라고 한다. 정당한 단체행동으로 교섭력을 높이는 노동조합에겐 큰 제약이 될게 분명하다. 노동법률가들은 “재벌과 사용자위원들이 요구한 ‘쟁의행위 시 직장점거 금지’만 실현돼도 사업장 내 쟁의행위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쟁의행위 찬반투표 효력을 60일’로 해달라는 요구도 마찬가지다. 노조는 60일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해야 한다.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간 끌기를 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투쟁을 이어가기는커녕 다시 찬반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동조합 파업권은 힘을 잃게 된다.
뿐만 아니다.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자들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자의 노조활동 방해행위, 지배개입을 국가가 법으로 금한 것인데, 현재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검찰의 기소율은 9.5% 극히 낮은 실정임에도 사용자들은 이 불법 행위를 허용해달라며 부당노동행위 조항 ‘삭제’해달라고 한다. 노동3권을 마음껏 침해하겠다는 의지다.
이처럼 ILO 핵심협약에 맞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기본권 보장방안’을 다룬다는 경사노위 제도개선위에서 되레 ILO 취지를 어기는 역설적 논의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제사회 권고, ‘내용’은 외면한 채 ‘비준’만?
국제사회가 한국정부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권고한 것은 한 두 번은 아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2월17일 한국정부가 한-EU FTA(대한민국과 유럽 연합 및 그 회원국이 맺은 자유무역협정) 13.4조 3항 상의 두 가지 의무, 즉 “결사의 자유 원칙 및 단결권 등 국제노동기구 기본권 선언의 원칙을 국내법과 관행에서 존중·증진·실현할 의무와 ILO 핵심협약 및 최신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의무 모두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고 이에 관한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피에르 아바르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 사무총장이 민주노총을 방문했다. 피에르 아바르 사무총장 역시 “핵심협약 비준, ILO 기준에 따른 노동법 개정과 관련된 사항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사항이며, TUAC 입장도 분명하다. ILO가 회원국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분명하게 지켜야 한다. 한국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라는 법을 ILO 기준에 맞도록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이것은 1996년 한국 정부가 가입 조건으로 약속을 했던 사항으로 국제사회는 한국정부가 이 약속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다리고 있다”면서 “ILO 협약에 따라 모든 노동자들은 자신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노동조합에 의해 대표될 수 있어야 하고 자주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이유로 사용자로부터 방해나 개입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도 2017년 8월 양대노총을 만난 자리에서 “이번처럼 한국정부가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힌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호, 98호 협약 비준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으로 국제사회는 기대한다”고 했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ILO 핵심협약의 비준, 그리고 국제기준에 맞춘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와 경사노위 논의 내용은 “핵심협약과 국제기준보다 ‘후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제사회의 ‘권고는 그냥 권고일 뿐’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11월, 제도개선위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골자로 하는 공익위원안을 발표한 후 이를 토대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12월28일 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비판을 면치 못하긴 마찬가지다.
여당의 노조법 개정안이라 불리는 이 안은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한다. 그러나 해고자를 노조 대의원과 임원으로 선출할 수 없도록 했으며, 해고자의 노동조합 활동도 ‘사용자의 효율적 사업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로 제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이 특정 기업 사업장에서 노조 활동을 하려면 목적과 시기, 장소, 인원 등을 미리 사용자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조항(5조3항)은 “산별노조와 같은 초기업단위 노조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도 막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종사자’라는 표현을 통해 산별노조 간부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원청 사업장에서 노조활동을 하지 못하게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도 마찬가지.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기업의 종사자가 아니라서 기업에서의 노조활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
이런 내용대로 ILO 핵심협약이 비준되고 노조법이 개정된다면 박수칠 사람들은 뻔하다. 재벌과 사용자들의 요구를 담아 이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노동계의 반발과 국제사회 권고는 외면한 채 이대로 비준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라면, ILO 총회에 참석하는 대통령의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