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재현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위원장

“이제 우리 모두 정규직입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물바다가 됐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진지 5년10개월, 6년도 채 안된 시간에 이뤄낸 성과에 노동조합 초기부터 같이 활동해온 간부들이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대형마트 최초로 ‘근속 1년 이상 조건없는 정규직 전환’을 이뤄낸 홈플러스 노동조합의 이야기다.

조합원이 많지 않던 시절, 외롭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지만 그 시절을 다 겪고도 온전히 조합원과 노동조합의 힘으로 이겨내고 맞이한 결과이기에 그 감격이 더 했을 법 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까지 초기부터 활동했던 주재현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홈플러스지부는 전 지회(점포)에서 100여 차례가 넘는 ‘노사 잠정합의안’ 설명회를 한데 이어, 지난 15일 전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해 합의안을 가결(83.4%)했다. 18일엔 노사 조인식도 마쳤다.
주재현 위원장을 만나 ‘온전한 정규직 전환(직접고용)’ 투쟁의 과정과 노조활동 5년10개월의 소회를 들어봤다.

▲ 주재현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위원장 [사진 : 선현희 기자]

“마트노동자도 정규직 될 수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주 위원장이 ‘홈플러스 정규직 전환’이 마트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표현했다. 마트노동자들도 무기계약직,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바꾼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강원도에 있는 중소마트 조합원 한 분이 우리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됐다고 하니까 ‘홈플러스는 지금까지 비정규직이었대, 우린 정규직인데…’라고 얘기했다고 해요. 거기도 정규직이 아니고 무기계약직 이예요. 이처럼 세상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이라고 하는데, 그게 맞다면 홈플러스가 이런 조치(정규직화)를 할 리가 없죠.” 주 위원장은 이번 정규직 전환은 무기계약직이 ‘온전한 정규직’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한 사례라고 칭했다.

노동조합의 ‘초심’과 그 ‘전략’의 승리

주 위원장은 이번 정규직 전환이 6년 전부터, 일관되게 밀고 온 노동조합 ‘전략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고부터 지금까지 우리 노동조합은 흔히 표현하는 ‘경제주의’를 우선한 적이 없습니다. 임금을 몇% 인상할 것인가, 퍼센트(%)를 걸고 싸운 적이 없어요. 마트현장 내 차별을 없애고, 비정규직을 없애고, 제도를 개선하는데 집중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오늘처럼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제도개선을 통해서 자연적으로 임금 상승효과가 나도록 하는 교섭전략을 밀고 왔다는 얘기다.

대형마트는 여성, 비정규직,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이다. 홈플러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 중 하나였다. 0.5시간 근로계약제(30분 단위 계약)를 시행해 무기계약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차별하는 꼼수를 부리고,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과 임금이 다르고, 임금체계, 근무시간도 달랐다. 그러나 노동조합 하면서 달라졌다.

“0.5계약제도 없애고, 시급제도 월급제로 전환하고, 6시간·7시간의 노동도 8시간 전일제로 바꾸고…. 몇 달씩 파업해서 바꿔온 성과였습니다. 이런 힘이 축적돼 올해 온전한 정규직 전환도 이룰 수 있었던 거죠.” 대형마트 3사 최초로 비정규직 없는 회사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 쟁의행위 기간이던 1월22일, 홈플러스지부 사전 총파업 결의대회. 확대간부들로 대회장이 꽉 찼다. [사진 : 마트노조]

“청심환, 수없이 먹었어요”

주재현 위원장은 정규직 전환의 공을 조합원들에게 돌렸다. 홈플러스지부 지난해 12월28일 현장투쟁을 시작했다. 모든 점포(매장)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꼬박 한달 동안 싸웠다. 매장에서 피켓을 들었고 구호도 외쳤다. 조합원들의 표정은 너무도 밝았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주 위원장이 그 ‘긴장감’을 모를 리 없다.

“조합원들이 내심 얼마나 떨렸겠어요? 마트에서 일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노동조합 활동에, 심지어 파업까지? 상상도 해보지 않았을 일,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인데 그 떨리는 마음을 뒤로 하고 청심환까지 먹어가면서 이어온 거예요.” 노동조합과 지회(각 점포) 간부들, 조합원들이 서로가 서로를 믿고 한마음 한뜻으로 투쟁에 나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노동조합 초기에도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조합원들은 청심환을 많이도 먹었다고 했다. 홈플러스지부는 이번 임금협상 투쟁에서 현장(매장)투쟁에 처음 나서는 조합원이 절반에 달했다. 3년 만에 임(단)협 파업과 투쟁을 하게 된 올해, 그 3년 사이 노조에 가입한 지회(매장)가 40개 정도다. 40개 점포의 조합원들은 투쟁이 처음이었다는 얘기다.

▲ 홈플러스지부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요구가 담긴 선전물을 등에 붙이고 현장투쟁을 진행했다. [사진 : 마트노조]

“그동안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억눌려 살다가 ‘투쟁’이라는 걸 처음하면서 자기 속에 있는 이야기를 외치는 건데, 전혀 상상해보지 않던 일을 너무나 당당하게 하면서, 자기 삶과 인생에서, 그리고 내 직장(현장)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흔들림 없이 한 달 내내 투쟁을 이어갔다. 전 지회(점포)에서 2천회 이상 현장투쟁이 진행됐고, 총 인원 1만여 명이 동참했다. 회사에 압박이 된 건 당연했다.

한 달 동안 조합원 800명이 늘었다. 일상적으로 조직확대 운동을 벌여온 홈플러스지부는 매월 조합원 ‘300명 가입운동’을 펼쳐왔다. 매월 100명 정도는 꼬박꼬박 늘어났지만 이번 투쟁과정에선 800명이다. “노조가 튼튼해지고 현장간부들이 튼튼해지고, 조합원들이 일심동체가 되니 조합원이 늘어요. 어느 때보다 피부에 와 닿는 의제로 투쟁하다보니 조합원들이 비조합원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함께 하자고 한 덕분이죠.”

“우리가 늘 ‘노동자가 단결해서 투쟁하면 이긴다’고 말하는데, 홈플러스에서는 그것이 기준입니다.” 말로만 하는 단결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힘을 믿고 동료를 믿고 단결해 싸우면 이긴다는 것, 이것이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분위기라고 했다. “홈플러스는 지난 6년간의 노조 역사 자체가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싸워 승리해왔던 역사”라고 주재현 위원장은 강조했다.

▲ 결의대회 중 투쟁보고문을 낭독하고 있는 홈플러스지부 지역본부장들 [사진 : 마트노조]

1년 앞당긴 ‘정규직 전환’… 이제 올리는 일만 남았다

홈플러스지부 올해 투쟁의 시작은 마트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지키기 위한 투쟁일 수밖에 없었다. 노조가 생기고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저임금이 지난해 16.4%, 올해 10.9%로 연속해서 높은 수준으로 오르자, 홈플러스도 최저임금에 상여금(기본급대비 200%) 산입을 고려했다. 그러나 노조의 동의 없인 산입할 수 없어 ‘근속수당’을 이용하려 했다.

홈플러스에 근속수당이 없던 시절엔 10년을 일해도 회사에 기여해온 노동자들의 근속과 숙련도는 인정받을 수 없었다. 노조가 생기고서야 근속수당이 더 강화되면서 장기근속자는 자신의 노동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홈플러스는 이 근속수당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켜 기본급 인상률을 떨어트릴 계획이었다.

“근속수당은 임금 인상률을 낮추는데 있어서 회사에게 유리한 항목이에요. 법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할 수 있는 항목이니까요. 최저임금은 매년 오를 거고, 근속수당은 매년 근심거리가 될 항목이죠.” 그래서 노조는 노동조합의 일관된 목표였던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정규직이 되면 정규직 임금체계에 따라 해가 지날수록 임금이 더 나아지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임금체계가 더 나아지도록 제도개선 투쟁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홈플러스지부는 2019년 말 임금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서 ‘정규직 전환’을 두고 회사와 단판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마트 노동자들의 결심과 현장투쟁으로 ‘정규직 전환’은 1년이 당겨졌다. 무늬만 정규직이 아니다. “새로운 직군의 정규직을 만들거나, 홈플러스 리테일과 같은 자회사를 만드는 것이 아닌, 비정규직과 다를 게 없는 처우를 받는 게 아닌, 1만 5천여 명이 온전히 본사 법인의 정규직(직접고용)이 됩니다.”

“노조의 힘으로 정규직이 됐으니, 역시 노조의 힘으로 정규직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게 홈플러스지부의 포부다. “회사가 임의로 정했던 비직책인 선임-주임-대리의 상여금을 이번 임금협상에서 기본급200%로 정한 것처럼, 정규직 전환 후 정규직의 임금체계도, 임금도, 처우도 올려서 명문화 해야죠. 이제 올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2018년 12월31일 기준 근속 1년 이상의 무기계약직원 전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근속 1년이 채 되지 않은 직원에 대한 후속 협의도 남아있다.

▲ 사진 : 마트노조

“이제 큰 산을 하나 넘었다”

주재현 위원장은 마트노조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 투쟁 승리엔 마트산별노조인 ‘마트노조’가 있었다는 것. “마트노조가 생기고 작년에 이마트 투쟁에 힘 쏟으면서 최저임금 꼼수를 가만 놔두지 않고 신세계를 압박했어요. 그래서 이마트도 올해 임금이 인상됐고, 홈플러스도 이마트 합의결과를 보면서 정규직화 전환이라는 결과도 만든 거죠.” 이 결과가 마트3사에, 마트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홈플러스지부는 “이제 큰 산을 하나 넘었다”며 “현장투쟁 경험과 투쟁 승리의 기쁨, 그리고 더욱 커지고 튼튼해진 산별노조와 조합원을 믿고 마트현장의 변화를 이끌겠다”는 각오다.
“조합원들과 늘 얘기해요. 우리는 그래도 힘 있고 튼튼한 노조가 있어 이렇게 정규직도 되는데 이 좋은걸 우리만 하면 되느냐. 사실 홈플러스 매장, 마트라는 곳에 우리 옆에서 같이 일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있는데, 협력업체 언니들은 우리보다 더 힘들고 우울해도 하소연 할 곳도 없지 않느냐, 이 좋은 거 우리만 하지 말자고….”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에서 일하는 마트노조 조합원들은 고용관계 때문에 선뜻 노조를 선택하기 어려운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도 마트노조로 함께하자고 먼저 손 내밀고 있다고 했다. “마트 안에 차별을 없애고, 모든 비정규직을 없애고 현장을 바꾸는 데에 홈플러스 조합원들이 결심해서 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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