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의 빈민스토리(2)

▲ 포장마차 [사진 : 노무라 모토유키 Nomura Motoyuki 제공]

노점상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포장마차는 ‘비바람, 먼지, 햇볕 따위를 막기 위하여 포장을 둘러친 마차.’ 또는 ‘손수레에 네 기둥을 세우고 포장을 씌워 만든 이동식 간이주점’ 등으로 정리되어 있다. 포장마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약 1950년대로 추정하는데, 잔술과 지역에 따라 어묵이나 은행구이, 참새구이 등을 팔던 것에서 유래한다. 이 모습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것이 서부 영화 속 포장마차에서 말을 빌려와 포장마차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장을 씌워 만든 이동식 간이주점’이라는 정의로는 포장마차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포장마차는 변신을 거쳐 차량을 개조해 조리대를 올려놓고 음식을 파는 방식과 트럭은 자바라와 탁자 및 의자와 조리기구 등 노점물품 나르는 데 이용하고 도로에 조리대를 별도로 설치하여 운영하는 방식으로 나뉘기도 한다.

필자가 포장마차 단속을 처음 목격한 곳은 1980년대 초반 종로 3가 주변에 펼쳐져 있던 노점이었다. 당시 포장마차는 작은 손수레를 개조해 분홍색 근육질 갑바(포장)를 치고 밤이 되면 카바이트 불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사라진 단성사 극장과 소방서 사이 도로에서 쥐포와 오징어 땅콩을 팔던 작은 포장마차에서는 영화 할인권도 함께 팔았다. 근처 종로 3가 전철역 주변은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노점상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노래 테이프를 파는 노점상 자리에서는 최신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와 종로 거리를 활력 있게 만들었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극장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던 중 노점상을 단속하는 걸 처음 목격했다. 1980년대는 군부에 의해 정권이 장악되던 시절이다. 당시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등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길거리 단속도 마치 전쟁을 치르듯 막무가내로 전개되었다. 완장 찬 노점단속 반원들이 차에서 쏟아져 내려와 포장마차를 일거에 회수하는 방식이었다. 

“한 젊은 부부가 종로에서 작은 포장마차를 운영한 적이 있어요. 마차 위에 구멍을 뚫어 어묵과 떡볶이를 팔고 마차 옆으로 작은 공간이 있어 그곳에 백일 된 아이를 잠재우고 장사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단속반원이 갑자기 들이닥쳐 아이가 잠들어 있는 것도 모르고 마차를 들어 올려 트럭에 집어 던진 사건이 있었죠. 백일도 안된 아이에게 뜨거운 어묵 국물이 쏟아져…….” 

이 이야기는 선배 활동가에게 전해 들었다. 1980년대 중반 노점상단체를 조직한 직후에 벌어진 사건으로, 노점상들을 분노케 하고 더욱 결집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다음은 언젠가 우연히 명동 앞을 지나다 발견한 노점상 시위 장면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기억이 정확한지 반신반의했는데 컴퓨터로 검색해 비슷한 기사를 찾아냈다. 

“어제 오후 4시 서울 명동, 노점상 철거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아낙이 저지하는 경찰과 부딪치자 겁에 질려 우는 두 딸이 다칠세라 힘껏 감싸 안고 있다. 서울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이 날,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노점상 2천 5백여 명은 동국대에서 명동성당으로 쫓겨 가며 항의의 목소리를 터트렸다. 이달 들어 전국 각지에서 본격화된 공무원 경찰의 대대적인 철거 소용돌이 속에서 장맛비까지 겹쳐 노점상 가족들의 시름은 더욱더 깊어가고 있다.”1)  
주1) 1989.0721 한겨레. 빗속 항의 …….울며 쫒기는 노점상 가족     

어떤 기억은 누군가에겐 스치는 기억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오랫동안 여운이 남아 전부일 수 있다. 

한편 최근 포장마차의 숫자는 어떻게 될까?

‘서울시 2013년 거리가게 실태조사 결과 보고’ 에 따르면 서울시 노점상은 2000년에 전체 노점상은 18,464개소였고 포장마차는 1,809개로 집계된다. 다시 3년 후 서울시의 노점상은 8,826개이며 그 중 포장마차는 869개소였다.2) 최근 들어 2018년 9월 기준 노점상 숫자가 7,203개로 이러한 흐름으로 봤을 때 포장마차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7천여 개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2) 2014 서울시 상생정책 자문단 워크숍 회의자료 

미디어와 문학작품 속 ‘포장마차’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 1996년 선보인 <지하철 1호선>의 한 장면. 오른쪽 황정민의 모습이 눈에 띈다. 황정민, 방은진, 오지혜, 장현성, 설경구 등 굵직한 배우들이 모두 <지하철 1호선>으로 성장했다.[사진 : 마포문화재단 홈페이지 캡처]

포장마차가 운영되는 장소는 대부분 도시 속 공간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 사이 혹은 골목길 한 모퉁이 포장마차는 지난 세월 서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소였다.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연극에서도 포장마차 속 이야기는 종종 등장하는데, 1994년 초연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김민기 연출작 ‘지하철 1호선’ 에서는 포장마차 욕쟁이 할머니의 걸쭉한 입담이 나온다. 힘겹게 살아오는 이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지하철 1호선은 순진한 연변처녀, 창녀인 걸레, 학생출신의 운동가, 그리고 양아치와 건달들, 노점상 할머니, 이주노동자 등등 우리 사회의 낮은 곳의 사람들과 소외받는 이들의 일상의 모습을 풍자와 해악으로 엮어 관객들에게 웃음으로 때로는 눈물로 보여준다. 노점상 ‘꼼보 할머니’의 단속에 맞서 함께 싸우고, ‘걸레’의 장례식을 치루는 동안 이들의 비루한 삶은 더욱 견고해진다.

▲ 포장마차[사진 : 필자 제공]

영화 속 포장마차 장면은 단골 메뉴다.
넋두리에서 로맨틱한 사랑 고백까지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장소가 바로 포장마차가 아닐까? 1997년 정우성이 출연한 영화 ‘비트’에서도 포장마차가 나온다. 희망 없이 살아가던 주인공은 포장마차에서 다시 인생의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영화는 역경을 딛고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의 당당한 모습과 희망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포장마차가 철거당하자 이 과정에서 이성을 잃은 주인공의 친구가 철거반원을 칼로 찌르게 되고, 구속된 친구를 위해 폭력조직에 가담한다. ······
같은 배우의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어느 날 저녁, 수진과 철수는 한자리에 앉아 있다.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안 마시면?" "볼일 없는 거지." 그리고 잔을 들어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다. 영화 ‘내 머릿속 지우개’에 나오는 포장마차 속 연인들의 모습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포장마차에서 한잔 술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 시대 가장의 고단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포장마차는 주변부 사람들의 정서와 그림자처럼 존재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은 아웃사이더 즉 ‘아싸의 미학’을 구축해왔다.

하지만 포장마차는 ‘비트’의 정우성과 그의 친구들이 새 출발하는 장소로, 그리고 비극을 예감하는 장소로서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노점상을 부정적 인식으로 바라보게 하는 언론 자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점상의 형태는 해가 지날수록 더욱더 진화하고 다양해진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재료들, 차량을 이용한 노점상 및 천막을 활용한 노점상 등 도로와 인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행자와 운전자의 안전을 늘 위협한다. 모든 단속 업무가 그렇듯 사회의 악습과도 같은 불법행위를 완벽하게 뿌리 뽑기란 쉽지 않다. 전국적인 노점상의 개체 수보다 단속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며, 단속 시 비일비재하게 이뤄지는 비협조적인 태도, 폭언 등 극단적 상황에서는 물리적 충돌도 감수해야 한다…….”3)

주3) 2019.02.14 충북일보, 불법 노점상을 보이콧하자

이와 같은 주장은 노점상을 철거대상으로 바라보거나 정비사업을 추동하는 공간인식으로 나아간다. 

“노점공간의 주체를 정부, 소비적 주체로서 시민, 합법 노점상 등으로 인식하여 각 도시마다 경쟁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도시미관 개선사업들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하고, 이러한 담론들을 통해서 도시공간을 소비적 주체, 미학적 주체의 공간으로 구성하는 보도양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다른 보도양식은 노점상인들의 공간 전유를 강조하고 노점상이 노점 공간의 주체임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노점 공간이라는 자본주의의 모순적, 갈등적 공간 성격을 드러내는 담론”으로 나아간다.4)

주4) 2010 엄정윤, 김승현 “노점상 관련 보도에서 나타난 언론의 공간인식 분석.” 1쪽 

어떤 그럴듯한 표현으로 그려줄까
13년 동안 밀가루값 가스값 빼면
100원을 벌었고 200원 벌었고 300원 벌었고를 헤아리면
변함없이 붕어빵만 구웠을 당신의 무미건조한 삶을
당신 옆에서 또 그렇게 순대를 썰고 떡볶이를 팔던
당신의 아내를

어떤 그럴듯한 은유로 보여줄까
2007년 10월 11일 오후 2시 일산 주엽역 태영프라자 앞
트럭을 타고 갑자기 들이닥친 300여명의 용역깡패들과 
구청직원들에게 붕어틀이 부서지고 가판이 조각나고
조각난 리어카라도 지키려다
부부가 길바닥에서 얻어터지며 울부짖던 날을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 그 밤을 형상화해줄까
잘난 것 없는 죄, 못 배운 죄 억울해
붕어빵 순대 떡볶이 팔아 대학 보낸
자식들 마음 아플까봐 몰래 숨죽여 울던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부르튼 아내 손 꼭 잡은 채 잠들지 못했다는 그 밤을

........(중략)

위 시는 송경동 시인의 시다.
생애 끝자락을 잡고 고단한 삶을 지탱하거나 그마저도 끈을 놓쳐버린 노점상들에게 보내는 헌시가 아니었을까? 거리의 시인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상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목은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다. 부재로 ‘붕어빵 아저씨 고(故) 이근재 선생님 영전에’로 되어 있다. 지난 1편에 실린 이근재 열사에 대한 추모시다. 요약해서 게재했다.

다음은 대중가요 속 포장마차를 살펴보자. 

벽돌담 모퉁이에 기대선 포장마차 
너도 친구 나도 친구 
우연히 만나서 다정한 친구 되는 포장마차 포장마차 
아~ 흐뭇한 미소 아~ 따스한 인정아~~~ 
즐거워서 크게 노래하는 사람 야야야 
괴로워서 눈물짓는 사람 야야야 
부딪치는 술잔 속에 떨어지는 별을 보며 하늘을 마신다. 
인생의 파란 꿈 펼치는 포장마차 

효녀 가수로 알려진 현숙의 노래 ‘포장마차’ 다. 노래 가사처럼 사람들은 차가운 바람을 피해 뜨거운 어묵 국물에 몸을 데우고 겨울 거리를 지나는 찬 낙엽 같은 것들을 불러 모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가락국수 국물 위로 피어오르는 술주정과 꽁치 한 마리 구울 수 있는 친구와 함께 불투명한 내일을 접고, 맑은 소주 한 잔 털어 넣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길모퉁이 포장마차는 많은 서민의 정신적 위안을 주는 장소였음이 틀림없다. 

다음은 이철환에 연탄길에 실려 있는 글을 일부 요약해 인용해 보겠다. 제목은 ‘따뜻한 손길’ 이다.

…… (중략)
‘거리질서 확립’이라고 쓰여진 완장을 두른 사내는 잡아먹을 듯 아줌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행으로 보이는 또 한 사내가 뒷짐을 지고 그 옆에 서 있었다.
“죄송해요……. 근데요 아무리 뒤져봐도 여기밖에는 없어요. 높으신 분들이 저희 같은 사람 한번만 봐주세요.”
“아니 봐줄 걸 봐달라고 해야지. 이 아줌마 참 답답하네. 벌써 몇 번짼 줄 알아요? 윗사람들이 보고 나 잘리면 아줌마가 밥 먹여 줄 겁니까?” 
“정말 죄송해요. 이거 없으면 우리 식구 모두 굶어야 합니다. 어려우시겠지만 어떻게 한번만 봐주세요.”
"죄송이구 뭐고, 여기는 정화구역이라 대통령도 장사 못해요.” ……

“아저씨 부탁드릴게요. 사람에겐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용기 있는 젊은이의 말을 듣고 있던 사내의 얼굴은 이전보다 많이 누그러진 듯 했다. 그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일 아냐. 없는 사람 가슴에 못 치는 일이 뭐 신나는 일이라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이 하는 일이지.”
사내는 허탈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그곳을 떠나 버렸다........

이철환의 소설 ‘연탄길’에는 노점상을 비롯하여 가슴 찡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위 소설 속 이야기는 현실적인 삶의 모습과 유리된 채 노점상과 단속을 다소 낭만적인 모습으로 그렸지만, 1990년대 전까지만 해도 거리의 단속반과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단속반원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물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그들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이 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참으로 인간미 있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도시미관 개선사업’과 더불어 단속이 진행되는 1990년대 이후는 ‘공간의 상품화’가 현격히 드러난다. 전통시장은 다양한 현대화 사업이 추진되고, 유통시장은 재편되어 나갔으며 역세권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는 곳은 ‘노점상 절대 금지와 상대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나갔다. 이 시기 본격적으로 사설용역반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없는 가난한 이웃과 장애인이 노점단속에 투입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웃을 탄압하는 풍경이 거리에서 벌어졌다. 단속을 무자비하게 잘하면 지급되는 임금과 처우가 달라졌다. 단속과정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유명을 달리했다. 

▲ 포장마차[사진 : 필자 제공]

종로 3가 탑골공원 깊숙한 모퉁이에 
샘물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맑은 물 퐁퐁 솟아 
이끼 낀 돌담 사이를 적셔 주고 
작은 도랑 하나 이루며 
자그마한 표주박으로 
물 한잔 퍼 담아 
타는 갈증 적셔 주면 더욱더 좋겠다. 
하나둘 가로등 불 밝히면 
낙원상가 길모퉁이 돌아 
파고다 극장 앞 
맑은 샘물 같은 포장마차 있어 
그곳에 하나둘씩 찾아 들어와 
낯설거나 말거나 꼼장어 한 접시에 쐬 주잔 기울이며 
주거니 받거니 넋두리를 나눠 가져도 
뒤 끝 깨끗하게 싸아 하고 씻어주는 정겨움 
훈훈한 인심 퍼주는 곳 있어 
나는 참 좋다. 

위 시는 필자의 자작시 ‘그곳에 가고 싶다’이다. 이 시를 쓸 때는 2007년 ‘서울시 노점 특별관리대책 추진계획’이 오세훈 서울시장에 의해 집행되던 시기다. 종로 거리의 노점상과 인사동 노점상이 집중적으로 단속을 받거나 그 후 탑골공원 쪽 혹은 관철동 쪽 이면도로로 밀려 나가기 시작하던 시절이다. 

포장마차는 찰나의 현상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현실과 삶에 맞닿아 있는 역사적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풍경은 단순히 시각적인 감상 안에 포획된 경치나 경관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유행이자 풍속으로서의 ‘풍(風)’과 대상의 모습, 상황, 정황으로서의 ‘경(景)’이 합쳐져, ‘시대의 경관을 구성한다’는 해석을 가능케 하고, 나아가 ‘각 시대의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서사 창작으로서의 의미까지도 내포한다.5)

주5) 2012 강보라 “포장마차 풍경사” 여가학 연구.28쪽

하지만 최근엔 곳곳에 합법화된 풍물시장과 최신식 푸드카가 등장해 젊은이들의 인기 창업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단속이 심했던 박근혜 정부 들어 포장마차의 풍물적 요소를 ‘상품화’ 하면서 서양식 ‘푸드카’로 대체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서민성을 담보하는 누구나 평등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모르는 이와도 금세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정취와 낭만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포장마차를 부분적인 소재로만 그리지 않은 13회 인권영화제 출품작 박홍준 감독의 "소년 마부"란 작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분신을 시도해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고등학생 주인공은 작은 포장마차를 끌게 된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노점상은 철거되고, 학교 대신 민원실을 드나드는 참담한 일상을 다루지만 주인공은 결코 꿈을 잃지 않는다. 이 영화가 상영되던 2009년은 바로 서울의 용산에서 다섯 명의 철거민이 망루에 오르다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던 해다. 철거민 가운데는 한 명의 노점상도 있었다.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높아지고, 뉴타운 재개발로 곳곳이 파헤쳐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단속으로 숨 쉴 틈 없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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