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스포츠강사 노숙농성… 학비 서울지부 “교육청이 직접 선발·고용 보장” 촉구
초등학교에서 체육 수업을 지원하고 학내 스포츠클럽을 지도하는 초등스포츠강사 정 모씨는 2008년 스포츠강사제도가 시행된 후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11년 동안 일해 왔다. 근무지를 찾기 위해 매년 1~2월이면 수십 개의 학교에 이력서를 내러 다닌다. 12월 단위의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학교도 마찬가지. 강사를 채용하기 위해 매년 채용공고를 내고 접수를 받아 면접을 보는 등 새 학기 준비시간을 보내야 한다. 서울시내 342개의 학교가 강사 채용을 위해 매년 이 같은 업무를 반복하고 있다.
매년 새 학기를 앞둔 1~2월, 교육청 앞에서 ‘고용보장’ 투쟁을 해야 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 서울지부는 “스포츠강사 선발을 342개 학교가 아니라 교육청이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하며 지난 10일 서울교육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서울지부에 따르면 경남, 광주, 부산, 전북, 충남, 충북 그리고 강원 일부지역에선 교육지원청이 스포츠강사를 선발한다. 그 외에 지역은 학교가 선발하는데 인천, 울산, 전남의 경우 기존 일했던 강사들을 재고용하며 고용을 보장하고 있다.
‘교육청 직접선발’ 기대했지만...
서울지역의 초등스포츠강사들은 올해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지난 수년 간 ‘교육청 직접 선발’을 요구해온 강사들은 2017년 정부가 내놓은 ‘공공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과 ‘17개 시·도 교육청에 초등스포츠강사의 고용안정 방안을 마련하라’는 교육부의 권고에 희망을 가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교육부 전환심의위원회 결정] |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교육청 직접 선발’ 방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소식을 접하고 강사들은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담당부서와 면담을 거듭하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학비노조 서울지부는 “교육청이 직접 선발을 고려하면서 강사들의 고용안정보다는 ‘우수강사’라는 내부적 기준으로 내세워 학교가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아했던 강사들을 솎아내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지부는 ‘우수강사’라는 기준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서울지부는 “교육청 관계자는 연차나 병가의 사용 횟수가 많거나 근태 상 지각기록이 있는 강사가 실제 근무는 제대로 했을지 여부에 대해 의구심이 있다면서 향후 재고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면서 “근태문제는 근로자의 책임을 따져볼 여지가 있지만 노동법과 취업규칙이 보장하고, 학교장의 허가까지 받은 노동자의 쉴 권리, 즉 연차와 병가 사용을 근태문제와 동일선상에서 평가해 이를 근거로 근무평가까지 낮게 하겠다는 교육청의 태도는 노동에 대한 인식 부재의 심각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차와 병가사용을 평가기준으로 삼은 것은 “1년 단위 고용이라는 족쇄에 얽매어 휴식권도 포기한 채 학교의 방침에 따라 납작 엎드려 지내라는 강요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학비노조 서울지부는 교육청과 면담과정에서 ‘초등스포츠강사에 대한 현재의 근무평가는 비인간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교육청도 인정했다고 전했다. 또, 교육청 관계자가 강사의 근무평가가 낮은 학교에 찾아갔을 때에도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평가를 다시 하면 안되느냐’는 반응을 보이며 근무평가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사들은 이미 평가를 받았고 생계와 직결된 고용여부가 결정될 상황에 처했다. 고용안정 도모를 위한 ‘교육청 선발’이 오히려 기존 방식보다 강사들의 고용을 더 위협하게 된 것이다.
학비노조 서울지부는 고용안정 문제를 놓고 수차례 교육청과 대화했지만 올해 역시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선발방법(평가)에 문제가 있으니 올핸 학교장 채용으로 하고 평가기준을 새롭게 만들어 내년부터 바꾸자”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11년간 고작 ‘네 번’ 인상된 임금
매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초등스포츠강사들의 처우도 문제다. 정 씨의 월급은 11년 동안 고작 네 차례 올랐다.
교육공무직의 임금은 채용기준에 따라 두 개의 유형이 있다. 전문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한 직군에 적용되는 ‘유형1’, 전문자격증이 별도로 필요치 않는 ‘유형2’다. 스포츠강사들은 학교체육진흥법상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전문자격증을 소지했지만 유형1,2에도 해당되지 않아 별도의 임금체계를 적용받아왔다. 다른 비정규직에게 지급되는 각종 수당도 스포츠강사들에겐 예외였다. 정부 권고안과 교육부 권고안에 따른 처우개선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채 서울시 스포츠강사들은 지난해 약 170만원을 기본급으로 받아왔다.
학비노조 서울지부는 “올해부터 지방에서는 (다른 비정규직과)동일하게 지급하거나 기존보다 수당을 더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마다 임금체계는 다르다. 서울지부에 따르면 서울시가 지난해와 같은 임금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 2019년 임금협상을 마무리한 경남지역과 비교한 결과, 기본급에서 매월 16만원이 차이가 난다. 1년(12개월)을 합친 금액으론 192만원에 해당한다. 경남에선 매월 지급하기로 한 근속수당·가족수당은 물론 정기상여금(1년 100만원)도 서울시 스포츠강사들에겐 없는 상태다.
결국 학비노조 서울지부와 초등스포츠강사들은 ‘교육청 직접선발과 고용보장’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지난 23일부턴 농성의 범위를 넓혀 서울시교육청 앞마당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교육청이 초등스포츠강사를 직접 선발하고 ▲2018년도에 일한 스포츠강사의 고용보장 ▲조희연 교육감이 후보시절 약속한 ‘스포츠강사 고용안정’ 약속을 지킬 것 그리고 ▲초등스포츠강사에게 유형1의 임금을 적용하라고 촉구했다.
초등학교가 개학하는 오는 3월, 서울시 342명의 초등스포츠강사 선생님 모두가 가르치던 학생들 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