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당사자 무시·최임 인상 정책 포기”… 공동대응 예고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이원화하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을 7일 발표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원회)를 두 개로 나누는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최저임금은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측 각 9명씩 총27명으로 구성된 최임위원회에서 매년 결정해왔다. 그러나 개편안에 따라 최임위원회는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뉜다.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최저임금 인상 범위를 제시하면, 그 범위 안에서 노·사가 포함된 결정위원회가 최저임금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7일 “9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에서 통계분석, 현장 모니터링 등을 통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구간을 설정하고, 이 구간 범위 내에서 심의가 이뤄져 노동계와 경영계의 요구안을 중심으로 줄다리기 하듯이 진행돼 온 최저임금 심의과정이 보다 합리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정부 개편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노사가 대립하는 상황에 완충작용을 하겠다는 셈이다.

▲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안에 대해 브리핑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노동계는 최임위원회 개편안 발표에 대해 “당사자를 무시한 결정”, “최저임금 인상 정책 포기”, “최저임금 제도 개악”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날 정부 발표 직후 비판성명을 내고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에 대해 “형식과 내용 모두 엉망”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먼저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근로자의 생계비, 노동생산성’ 등에 ‘사회보장급여 현황, 고용수준, 기업 지불능력, 경제성장률 포함 경제상황’을 명시적으로 추가·보완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재벌대기업 등 재계의 압력에 굴복해 ‘최저임금 1만원’으로 대표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문가들이 통계분석과 현장 모니터링으로 최저임금 상·하한 구간을 정하겠다는 것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임금교섭을 해보지 않은 이들만의 발상”이라고 잘라 말하며 “최저임금 인상폭은 통계와 분석이 필요한 전문가의 연구·분석 영역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도 마찬가지. 한국노총은 같은 날 성명에서 “정부는 고용 수준, 사업주 지불 능력 등 고용 및 경제상황을 염두에 둔 결정기준을 밝혔지만 현재까지 학계 및 연구기관에서 발표된 최저임금 연구에서 고용 및 경제 영향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다. 더구나 사업주의 지불능력을 고려한다는 것은 최저임금법 제 1조에서 밝히고 있는 ‘노동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 사진 : 뉴시스

“도대체 누가 전문가인가”… ‘답정너’식 정책발표 비판

정부 개편안 발표에 앞서, 지난 4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을 내주 발표하겠다”고 밝히자 양대노총은 이날도 비판성명을 냈다.

양대노총은 먼저 당사자인 노동계를 무시한 정부의 일방 발표에 항의했다. 민주노총은 “정부는 노동과 밀접한 제도 개정을 추진하면서 당사자와 충분한 사전협의 절차 없이 언론에 설익은 계획을 먼저 터뜨려 답을 정해놓은 뒤, 타협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답정너(답은 정해놨으니 너는 대답만 해)’식 정책추진은 대화상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대단히 오만하고 불손한 태도”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한국노총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면서 당사자인 노동자의 의견을 무시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최저임금 제도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구간설정위원회 구성에 대해 민주노총은 “무엇보다 노사가 빠진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상·하한을 결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도대체 누가 전문가인가”라고 따져 물었고, 한국노총도 “노사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훼손하는 것으로, 결정위원회의 노·사·공은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개편안이 “ILO 최저임금협약 취지와도 맞지 않는 내용”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우리나라가 2000년에 비준한 ILO 최저임금협약은 권한 있는 노사대표가 최저임금제도 및 최저임금 결정에 참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면서 “이번 개편안은 ILO 권고보다 훨씬 후퇴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노동정책 후퇴 방증하는 것”

이번 개편안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과 함께 추진된다는 점에서 정부가 꾀하고자 하는 완충작용, ‘객관성과 합리성 제고’를 위한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12월11일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정책 속도 조절의 일환으로 최저임금 결정구조가 개편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등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양대노총은 홍남기 부총리를 향해 날을 세우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개편 방안 발표 당사자인 홍남기 부총리는 연말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정책 발표로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산데 이어 최근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도 녹실회의를 부활시켜가며 주휴시간 제외를 시도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역시 “재계를 대변하는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계의 입장이 반영된 최저임금 제도개악을 하겠다고 공식천명해 매우 불쾌하고 유감스럽다”면서 “이 정부의 노동정책이 확실하게 후퇴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홍 부총리는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해 12월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최저임금은 시장수용성, 지불여력, 경제파급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되도록 하겠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도 적극 모색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민주노총은 “자격도 권한도 없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저임금 결정구조 변경을 선제적으로 운운하는 것은 노사 당사자의 입장을 배제하고 최저임금 인상 억제를 위한 제도개악을 공언한 것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며 공정한 경제정책 수행자로는 부적격자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 사진 : 뉴시스

한편, 지난해 12월17일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확정하면서 경제성장률과 취업자수 증가폭을 하향 조정했다. 올해도 경기와 고용의 부진이 예상된다.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추가 제시한대로 라고 한다면 구간설정위원회 전문가들도 경제상황을 반영해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정하게 된다. 올해 경기와 고용 사정에 따라 낮은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 포기’라는 정부를 향한 질타가 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정부를 향해 “지난해 한국사회 저임금 노동자비율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10%대로 떨어졌다. 정부가 재계의 입장만 들어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을 강행한다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전체 노동자 대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한국노총은 “정부가 일방적인 최저임금 제도개악을 즉각 폐기하고, 당사자인 노사와 공익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충분히 논의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양대노총은 오는 9일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워크숍을 열어 최저임금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등 최저임금 제도 개악에 대한 공동대응을 준비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오는 10일 전문가 토론회, 그리고 TV토론, 온라인 국민의견 수렴 등을 거쳐 이달 안에 정부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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