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 파인텍 노동자 2명도 최장 기록… 시민사회, ‘5명 고용승계’ 촉구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경북 구미 스타케미컬 공장 굴뚝에 올라 408일을 싸운 노동자 ‘차광호’가 세운 기록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는 24일이 지나면 그 씁쓸한 기록이 깨질지도 모른다. 차광호의 동료들이 기록을 경신할 수 있어서다. 

지난해 11월12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한 파인텍 노조원 홍기탁, 박준호씨. 지난 20일 “그들에게 또한번의 매서운 겨울추위를 고공에서 보내게 할 수 없다”면서 금속노조 동료들과 시민사회단체가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 앞에 모였다. 

“홍기탁, 박준호, 차광호, 김옥배, 조정기.” 두 명은 굴뚝에 올랐고, 한 명은 단식을 시작했다. 남은 두 명의 노동자 역시 스타플렉스 앞 천막 안에서 그들을 지원하고 투쟁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다섯 노동자의 이름을 힘차게 외쳤다. 

▲ 10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한 차광호 조합원. 

지난 10일부터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차광호씨가 입을 뗐다. “헐값에 한국합섬을 사들인 스타케미컬이 먹튀를 했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니 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기계를 반출하고, 임대한 공장을 반납했다.” 5명의 노동자가 돌아갈 공장이 없어졌다. 

그들의 투쟁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는 지난 2010년 공시지가 870억 원의 한국합섬 구미공장을 399억 원의 헐값에 인수한 뒤 ‘스타케미컬’로 이름을 바꿨다. 노동조합과 ‘고용보장’, ‘공장 정상화’를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않았다. 1년8개월 만에 공장을 폐업하고 노동자들을 강제퇴직으로 몰았다. 

당시 스타케미컬 노동자였던 차광호씨는 구미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다. 408일,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을 세우고 난 뒤인 2015년 7월7일, 사측에게서 고용 보장, 노동조합·단체협약 승계 등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 스타케미컬은 고용보장 합의를 이행한다는 명목으로 파인텍을 설립했으나 합의사항은 이행되지 않았고, 조합원들이 1년에 가까운 파업을 하는 중에도 당시 합의 당사자였던 김세권 대표는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 20일 금속노조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파인텍 단식농성장에 트리 장식물을 달며 파인텍 노동자들을 응원했다.

“김세권 사장이 충분히 책임질 수 있고, 책임져야 한다.” 스타플렉스와 김세권 대표를 향한 시민사회의 원성이 높아갔지만 김세권 사장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타플렉스 본사 앞에서 1인시위도 하고, 단식도 하고, 오체투지 등 안 해본 투쟁이 없다. 청와대 앞에서도, 광화문광장에서도 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나 “교섭은커녕 김세권 사장의 얼굴 한번 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노동자가 약속을 조금만 어겨도 구속되고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자본은 약속을 어겨도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김세권 대표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약속을 수도 없이 어긴다. 우리가 바라는 건 5명의 노동자가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파인텍 조합원들은 스타플렉스가 음성 공장으로 조합원 다섯 명의 고용을 승계하라고 요구했다. 

권오대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수석부본부장은 갈등 해결에 나서지 않는 문재인 정부와 관계부처에 날을 세웠다.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장과 면담하면서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는데 왜 노동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 물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한다. 말이 되느냐. 합의한 약속을 지키라고 하면 되는데.” 

최장기 기록으로 치닫는 고공농성을 멈추기 위해 각계 시민사회인사들도 나서고 있다. 백기완 선생을 비롯해 명진 스님, 문규현 신부 등 사회원로 148인도 17일 ‘스타플렉스 김세권 규탄·문재인 정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비상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송경동 시인을 비롯해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등 4명의 대표단은 18일 동조 단식에 들어갔다. 

▲ 동조단식을 하고 있는 박래군 인권단체 사람 소장, 박승렬 NCCK인권센터 소장, 차광호씨, 송경동 시인(왼쪽부터). 함께 단식 중인 나승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사진 : 송경동 시인] 

“곡기를 끊으려는 생각이 아니다. 김세권 대표의 무책임한 행동을 끊어야 한다. 노동자가 죽어가고 노동의 권리가 길거리에 내팽개쳐지는 현실을 끊어야 한다.” 차광호씨 옆에서 함께 단식하고 있는 송경동 시인이 말했다. 

차광호씨의 최장기 굴뚝농성 기록 408일. 24일이면 홍기탁, 박준호씨도 같은 기록 보유자가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이날 굴뚝농성장 앞에서 문화제를 연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이 또 지나면 새해다. 고공에 있는 노동자, 단식하는 노동자, 그리고 각계 시민사회는 한목소리로 “연말이 되기 전에 굴뚝에서 내려와 새해엔 공장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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