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백문백답(52)

1) 인간론으로

앞에서 마르크스의 철학적 세계관 가운데 유물론과 변증법을 살펴보았다. 주체철학은 근본적으로 이런 유물변증법적인 세계관을 벗어나지 않는다.

주체철학은 마르크스 사후 100여년에 걸친 운동과 이론의 성과를 담고 있으니 마르크스의 초기 생각과 비교해 보면 많이 다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그런 성과를 이미 많은 점에서 암시하고 예견했다. 주체철학은 이를 밝히고 드러내기는 했지만, 유물변증법의 측면에서는 주체철학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제 세계관에서 마지막 문제인 인간론을 다룰 차례이다. 인간론에 들어가면 주체철학은 그 이전 마르크스주의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독창성이 등장한다. 자주성, 품성 등의 말들은 그 이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문헌에서 발견하기 힘든 단어들이었다.

인간론의 차원에서 주체철학의 독창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에서 인간론을 다루는 논의의 틀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논의의 틀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용된 범주들을 혼동하면서 올바른 이해가 방해된다.

2) 구체적 인간과 일반적 인간

먼저 인간을 다룰 때 주체철학에서는 인간을 굳이 사람이라 표현한다. 그것은 철학적 용어를 우리말로 표현하자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일상어에서 인간이라 표현하거나 사람이라 표현할 때 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지!”라고 표현하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인간, 참 좋은 인간이지!”하면 왠지 어색하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인간이 하늘이다”, 두 표현을 비교해 보아도 아무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이 글에서는 사람 대신 인간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고자 한다. 때로 자연스럽게 사람이라는 표현이 좋을 때는 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하겠다.

표현이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인간을 다룰 때 구체적 인간과 일반적 인간의 차원이 구별된다는 점이다. 구체적 인간은 특정한 사회를 전제로 한다. 봉건시대 조선인, 자본주의 시대 미국인이 그런 구체적 인간이다. 일반적 인간이란 역사 사회를 통틀어서 추상화된 인간을 말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구체적 인간뿐이다. 철학에서는 인간을 일반적으로 다루지만 이는 실재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집합명사이다. 예를 들어 ‘역사는 인간 해방의 역사’라고 할 때, 이것은 일반화된 표현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노예나 농노, 노동자가 자기를 해방한다. 

▲ 사진 : 픽사베이(Pixabay.com) 무료 이미지

3) 두 인간론 

이런 틀 속에 본다면 오랫동안 논쟁되었던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마르크스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했다. 이 말은 인간이 구체적 인간, 즉 사회역사적으로 규정된 존재라는 의미이다.

반면 주체철학이 인간의 본성은 자주성이라 할 때 그것은 일반적 인간을 표현하는 철학적 표현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서 인간과 자주적 인간은 아무런 대립각을 이루지 않는다.

구체적 인간을 일반화하면서 마르크스 역시 자주 역사는 인간 해방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 말은 자주성의 실현이라는 말과 의미상 다를 바 없다. 또한 주체철학도 자주성(의식성, 창조성과 함께)은 역사 사회적으로 발전한다고 본다. 주체철학 역시 역사를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로 구분했으니, 마르크스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4) 의식성, 창조성, 자주성 

주체철학은 인간의 특성을 세 가지로 나눈다. 의식성, 창조성, 자주성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 가지가 다른 독자적 특성이라 생각한다. 마치 노란색과 파랑색, 그리고 빨강색이 서로 다른 색깔이듯 말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특성은 인간의 특성을 서로 다른 차원에서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자주성을 의식(자각)할 때도 있고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노예는 분명 자주적 인간이지만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노예에게 자주성은 무의식적 차원인 자연신앙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자주성의 의식은 앞서 역사를 설명할 때 보았듯이 역사적으로 발전한다. 봉건시대 예속농과 자본주의 시대 부르주아를 거쳐 가면서 그 의식, 즉 자각이 증대한다. 그러나 부르주아만 해도 개인의 자주성만을 자각할 뿐, 완전한 자각은 노동자에 이르러 비로소 이루어진다. 노동자는 객관적으로 사회를 해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자각한다.

창조성은 이런 자주성, 자각된 자주성이 세계나 사회에 대해 갖는 역할을 의미한다. 인간은 세계나 사회를 더욱 새롭게 개조한다. 물론 노동을 통하고 혁명을 통하여 개조한다. 그런 개조의 과정에서 과거의 세계나 사회는 새로운 세계나 사회로 변화한다.

이런 창조성도 역사적으로 변화한다. 인간의 자주성이 억압된 시대, 즉 노예, 봉건,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억압자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의 창조성은 소외되고 말았다. 그의 노동은 고역이었다.

요약하자면 의식성이나 창조성은 인간의 특성이 가지는 형식적 측면이다. 내용적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의 특성은 자주성이다. 따라서 자주성이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5) 노동 개념 

인간의 특성 가운데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있고 또 창조적 존재라는 주장 역시 이미 그동안 철학사의 발전에서 충분히 주장되어 왔던 내용이다. 인간이 의식적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철학은 아마 영미 행동주의 심리학 정도일 것이다.

인간이 창조적이라는 특성도 철학에서 오래 논의되어 왔다. 그 단서를 제공한 것이 칸트이고 그의 미학이 담긴 <판단력 비판>이다. 칸트의 미적 창조론을 이어서 헤겔, 마르크스에서 노동 개념이 제시된다. 이런 노동 개념이 인간의 창조성을 밝힌 것이다.

인간의 특성으로서 의식과 창조성은 이미 마르크스주의에 이르러 충분히 제시되었다. 이런 점에서도 역시 두 철학 사이에 차이는 없다.

그렇다면 주체철학의 인간론에 아무런 독창성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아직 남아 있는 한 가지 특성이 있다. 곧 자주성이다. 이제 인간의 특성 가운데 가장 핵심, 즉 그 내용에 해당되는 자주성 개념을 검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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