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에 대하여 ③
1. 반복되는 대형 해난사고에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정부 당국
‘제3의 부표’ 위치에서 미7함대 잠수팀들이 작업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파사고 발생 즉시 저러한 인력과 장비를 사고현장에 투입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최소한 새벽 날 밝자마자 저러한 설비와 함께 구조인력들을 투입하였더라면 단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2010년 천안함 침몰사고의 비극을 교훈삼아 해난사고 발생시 최단시간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과 매뉴얼을 만들고 최신 설비와 장비들을 확충하여 전문인력 교육과 양성에 힘썼더라면 2014년 세월호의 비극을 우리는 최소화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2010년의 과오는 2014년 고스란히 반복되었으며, 2018년 현재 또 다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다고 해도 전혀 나아질 것이 없으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대형 해난사고를 4년 터울로 겪으면서도 그에 대해 어떠한 대책을 강구하는 움직임조차 없다는 것은 당국자들의 ‘직무유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저는 저 장비들이 왜 필요한 것인지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께 사진들을 보내 물어봤습니다. 답변은 매우 간결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여러 명에게 산소공급 가능하고 통신도 가능하니 해저에 가라앉은 밀폐된 구획에 들어가 긴 시간 작업하기 위한 설비들이구만.”
그랬습니다. 미7함대는 최신 설비를 총동원하여 제3의 부표 인근 해역에서 ‘매우 특별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극비리에.
2. 미7함대 ‘작업팀’의 디-데이는 ‘2010-04-14’
2010년 4월12일(월) 2010년 4월13일(화) 2010년 4월14일(수) 2010년 4월15일(목) 2010년 4월16일(금) |
천안함 함미와 크레인이 ‘제3의 부표’ 인근 위치에 머무는 닷새 가운데 미7함대 ‘작업팀’이 본격적으로 자신들만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였던 날은 닷새 가운데 중간인 ‘4월14일’입니다.
그 전날인 4월13일, 군 당국은 작업을 중단한다며 현장의 모든 한국인 작업자들을 대청도와 백령도로 내보냅니다. 즉 함미 인양 업체인 88수중개발과 바지선 업체인 현대해운 작업자들 모두 현장을 떠납니다.
군 당국이 작업자들을 외부로 내보낸 이유는 ‘기상악화’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 작업자들은 “이보다 더 나쁜 날도 얼마든지 작업하는데... 그리고 배에 있으면 되지 왜 나가라고 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냅니다.
당시 현장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88수중개발 현장소장 권만식씨를 1심 재판 증인으로 신청하여 신문을 하였습니다. 권 소장은 “대청도로 나가 처음으로 산에도 올라갔다”며 “현장에는 크레인 기사와 군인들만 남아 있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미7함대는 매우 바쁜 하루를 보였습니다. 위와 아래의 사진들은 한국 작업자들이 현장을 떠난 후인 4월14일 바쁘게 작업한 미7함대의 활동상황입니다(미7함대 홈페이지 캡처).
저는 항해를 전공했고 조선소에서 신조선 건조 감독을 하였으며 해군 장교 출신이라, 침몰 잠수함을 인양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추론하고 추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미7함대가 인양업체 현장 작업자들을 모두 내보내고 어떤 작업을 하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