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 도입으로 본 디지털시대의 과제 진단

조세 주권의 의의

조세는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조세의 원칙은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하여 국가 운영의 재원으로 쓰고, 사회보장 실시 등 소득재분배를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세를 제대로 거두지 못한 국가는 재원이 없어 국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으며 양극화가 심해진다.

세계화시대에선 국제무역이 일상화되므로 국제조세의 규모가 매우 크며, 조세회피를 하는 기업과 정상적으로 납세하는 기업 간 경쟁력의 차이가 발생한다. 나아가 국가 재정의 격차, 즉 국가 간 부의 이전이 발생한다. 식민지시대 원시적 착취가 있었다면 현대에는 주로 조세, 환율, 금리, 이전가격 조작 등의 방식으로 국가 간 부가 이전된다.

제조업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국제조세체제

현재의 조세제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UN과 OECD에서 그 틀이 정해졌고, 국가 간 힘의 논리에서 조금씩 수정되었다. 국제조세체제의 핵심은 외국기업의 수익에 대한 세금이 ‘고정사업장’을 기준으로 매겨진다는 것이다. 고정사업장이란 물리적 실체가 있는 공장, 사무소, 영업장 등이다. 기업이 외국에 나가 사업을 할 때, 맨 땅에서 숨어서 할 수는 없으므로 공장에서 생산하거나, 사무소에서 일하거나, 영업소에서 판매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수익이 발생하며 해당 국가는 그 고정사업장에서 발생한 일이 만들어낸 수익에 대해 과세한다. 한국이라면 법인세가 25%이므로 외국기업 고정사업장 수익(순이익)의 25%를 과세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고정사업장이 없이 사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아마존’이 미국에 있는 서버를 통해 전자상거래로 수익을 낼 수 있다. 온라인쇼핑도 비슷하다. 물론 물리적 상품이 세관을 거쳐 온다면 이 과정에선 관세를 내야하고, 부가가치세를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거래관계가 인터넷에서 끝나는 파일 다운로드라면, 앱을 통한 서비스 제공이라면, 또는 클라우드에 접속해 정보를 얻는 것이라면, 물리적 실체가 없으므로 과세가 불가능하며 매출액 또한 파악할 수 없다.

현재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이 한국에서 올리는 광고 수입, 컨텐츠 사용 수수료 등엔 거의 과세를 물리지 못하고 있다. 구글은 국내에서 연간 약 5조원의 매출을 내지만, 이에 따른 수익(순이익)은 파악도 못하고 있다. 법인세가 200억도 되지 않아 4,231억 원의 법인세를 내는 네이버와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 지난 9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세 도입 정책 토론회’ [사진 : 뉴시스]

디지털 기업의 조세회피

디지털 기업은 무형자산(지적재산권) 사용료, 클라우드 접속, 프로그램 다운로드, 정보이용 등으로 매출과 수익을 올린다. 그리고 현재의 조세제도를 회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고정사업장을 현지(영업하는 국가)에 두지 않는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버뮤다 등 조세피난처에 중간지주회사 등을 두고 현지에서 발생하는 매출 또는 수익을 이전한다. 그리고 복잡한 페이퍼 회사를 통해 경제적 실체를 알지 못하게 한다. 이는 론스타가 한국에서 조세를 회피했던 것과 유사한 방법이다.

문제는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은 이미 제조업이나 석유기업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기업들이라는데 있다.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이들이 세금은 내지 않고 있어 글로벌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세계적 디지털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기업이다. 따라서 조세주권이 있는 유럽에선 이를 방관할 수 없다. 유럽은 국가적 연구조사, 법적검토를 마치고 구글세, 디지털세 등으로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디지털 기업들에 대해 과세하는 방안을 고안해 냈다. 미국은 이를 ‘자국 기업에 대한 공격’이라며 대응하고 있지만, 세계적 여론은 디지털세에 열광적이다. 다른 나라들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EU 또는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은 구글세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미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에 수조원의 조세 또는 벌금을 부과했다.

‘디지털세’의 핵심 내용

EU 집행위에서 법인세 개혁을 통한 디지털세는 기존의 법인세 제도와 디지털 경제 하에서 비즈니스 모델과의 괴리를 지적하며,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을 반영한 법인세 법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 법안은 고정사업장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기존 법인세 체계에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될 수 있도록 ‘주요 디지털 사업장(significant digital presence)’ 개념을 추가함으로써 과세대상을 확대했다. 즉 EU 역내에 위치한, 주요 디지털 사업장이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 공급 수익, 사용자 수,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계약건수 등을 기준으로 디지털세를 부과한다.

EU 집행위는 역내에서 온라인 사업으로 700만 유로 이상의 수익을 올리거나, 1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거나, 3000개 이상의 온라인 비즈니스 계약을 맺은 기업에 과세할 계획이다. 아래 기준은 디지털 사업장 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요소이다. 즉 과거 고정사업장의 기준을 디지털사업장에 맞게 바꾼 것이다. EU는 이를 기준으로 순이익이 아니라 매출액의 3%를 법인세로 과세할 예정이다.

▲ 과세기준에 대한 주요 정의(자료 : European Commission(2018))

한편 EU 집행위는 법인세 개혁을 통한 디지털세가 도입될 때까지 공정과세 차원에서 3% 세율로 임시 ‘디지털 서비스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임시 ‘디지털 서비스세’를 통해 연간 50억 유로(6조 4,325억 원)의 추가 세수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세’ 국회 통과 의의

한국에서도 해외 IT기업들에게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이른바 ‘디지털세’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조세주권 차원에서 매우 환영할 일이다.

내년 7월부터 해당 기업들도 소비자 대상 서비스 매출에 대해 10%의 부가가치세를 내야하며, 세수효과는 연간 4천억 원 정도로 예상된다.

그러나 부가가치세는 B2C 거래(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간 전자거래)에만 부과되는 것이며(소비자에 부과), 매출 규모가 훨씬 큰 B2B(기업 간) 거래에는 부과되지 못한다. 즉 기업의 소득에 법인세를 부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부가가치세를 현지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것이므로 이는 한국 국민이 내는 것이다. 물론 판매를 위해 외국기업은 세금을 고려해 가격을 조정할 것이므로 일정한 손실을 입을 것이다. 문제는 법인세 과세인데, 외국 인터넷 기업은 서버를 기준으로 한 고정사업장이 국내에 없어 법인세 납부 의무가 없다. 따라서 법인세 부과를 위해서는 EU와 같은 세법 개정이 필요하다.

시사점

디지털세를 통해 조세회피와 불공정 정부보조에 대한 강력한 법집행 의사를 밝힌 EU 집행위에 대해 네덜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 조세회피처 역할을 해 온 일부 회원국들과 부자나라 클럽 OECD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미국은 강력한 반대 입장이다.

그러나 조세주권을 가진 EU와 대다수 회원국들은 2020년부터 디지털세를 시행할 것이다. 또한 호주, 중국, 인도 등 대다수 나라들도 이를 도입할 것이다. 반면, OECD, 미국 등의 눈치를 보는 한국 조세당국이나 국회가 EU 수준의 디지털세를 도입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제조업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시대가 바뀌면서 거대한 변화가 뒤따르고 있다. 기술과 사업모델이 달라지면서 새로운 주도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굴뚝산업은 범용화 되고 핵심 부가가치는 생산과정이 아니라 연구개발, 디자인, 인공지능(알고리즘), 소프트웨어 등 설계 등에서 창출된다. 테슬라와 구글, 그리고 네이버의 기업가치 상승과 추락하는 현대차의 기업가치가 이를 입증한다.

현재 디지털시대에 맞는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있다. 교통(자율주행), 교육(문제 해결형), 조세, 산업규제 관련(규제완화), 노동법 등의 대수술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자본가, 노동자, 국가, 자영업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치열한 이해다툼을 동반한다. 카플과 택시의 산업간 충돌로 택시노동자가 분신한 사건도 하나의 예이다. 특수고용노동, 플랫폼노동도 관련 제도 정비 과정에서 치열한 투쟁이 발생할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진보정당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디지털시대 계급·계층 간의 세력관계가 최초로 제도화되고 있는 치열한 대결에서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킬 진보적 제도, 새로운 노동법 등을 제출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디지털세도 그 중 하나이지만, 아직 진보정당이 이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진보의 역할이다.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진보의 분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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