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총련역사 연재를 맺으며

이제 글을 맺어야 한다. 얼마 전에 동남아시아의 어느 국립대학 교수가 만나자고 찾아왔다. 한 동포연구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 내용을 들으면서 그가 하는 소리가 “재일동포들은 이미 하나의 커미니티가 형성되여있다. 이것은 단숨에 생긴 것이 아니라 장기간의 축적과정이 있을 것이다”고 소감을 말했다. 

필자는 바로 그렇다고 동감을 표시했다. 해방이 되어 70여 년간을 경과했으나 재일동포들은 일본사회에 매몰되여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우리의 문화와 미풍양속을 이어가고 있으며 조선사람으로서 떳떳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기 총련이 추구한 것이란 일본 내정에 간섭함이 없이 동포들의 권익을 지키고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 나라와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일본 땅에 살면서도 기여할수 있게 활동하자는 것이었다.

▲ 3.1인민봉기 88주년, 일본당국의 총련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부당한 정치적 탄압과 인권유린 행위를 반대하는 재일본조선인중앙대회 모습. 2007년 3월3일

총련이 일본당국에 요구한 권리도 특혜국 국민대우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맞는 대우를 요구한 것이다. 재일동포 형성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일본당국은 재일동포에 대하여 다른 외국인보다 더 많은 혜택을 베풀었어야 한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당국은 재일동포를 눈에 든 가시처럼 취급하여 그 언제나 차별과 탄압의 대상으로만 여겨왔으며 혹독하게 탄압해왔다. 

총련의 첫째 자랑은 민족성의 유지, 민족교육사업

총련의 60여 년간의 활동 성과를 집약적으로 정리하면 필자는 3가지라고 본다.

첫째로 총련은 결성 이후 오늘까지 재일동포들의 민족성을 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에서 업적을 남겼다. 

필자의 추산에 의하면 2014년 12월말 현재로 재일동포 구성을 보면 통계상으로는 1세는 없고 2세는 39%, 3세는 47%, 4세는 14%이다. 

새벽에 옆 마을에서 닭이 울면 그 소리를 들어 자기 마을의 닭이 운다는 말을 들은 바 있는데 그러한 광경은 말로 밖에 모르는 세대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또 1세의 영향을 받은 2세도 39%인데 계속 감소 경향이다. 

▲ 민족교육의 최고 전당이며 민족성 고수의 보루인 조선대학교의 창립 60돐 행사의 한 장면.  2016년 5월29일

동포 사회의 주인은 3세, 4세로 전환되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민족성, 정체성을 확고히 가지면서도 거주국의 일본인과 나아가서 외국인들과 맞설 수 있는 국제인으로 준비해 나가는 것이다. 

총련은 동포들 속에서 우리 말과 글,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옳게 배우고 계승하나가는데 많은 힘을 두었다. 말이자 곧 민족이라는 것은 총련이 계속 들고 있는 구호의 하나다.

그중에서도 총련이 힘을 각별히 넣고온 것은 민족교육사업이다. 민족교육은 형태상 정규교육과 준정규교육이 있고 정규교육은 보통 조선학교 교육이고 준정규교육은 토요아동교실, 인터넷강좌, 개별 교수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성인교육제도를 세웠다. 지금 일본에서는 차별용어라고 해서 지탄을 받을 수 있는데 당시의 표현을 그대로 쓴다면 《문맹퇴치운동》을 벌렸고 그 형태로 성인학교, 청년학교사업을 추진했고 그를 위한 호별담당 형식, 개별담당 수업도 진행했다.

총련은 민족문화를 고수하고 보급하는데도 많은 역량을 돌렸다. 전문예술인 단체인 금강산가극단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방별로 활동하는 7개의 가무단도 있다. 그리고 각지에 요리교실, 서예교실, 민족풍습을 배우는 교실을 비롯한 1000여개의 교실이 꾸려져 활동하고 있으며 동포들 속에서는 치마저고리 입고 우리말과 글을 의식적으로 쓰기 위한 노력, 우리 노래를 일상적으로 부르자는 등의 민족적 기풍이 서가고 있다. 

또한 총련은 전문체육사업과 함께 각종 체육활동도 다양하게 벌리도록 하고 있으며 동포들의 유대를 강화고 민족적 긍지를 안겨주는 마당으로 되었다. 

조선학교를 지키고 잘 운영되도록 사업해 온 것은 총련의 업적 중에 업적일 것이다. 조선학교를 없애기 위해서 일본당국이 취한 조치만도 얼마나 많았던가, 좀 보면 48년 1월의 문부성 국장의 페쇄를 촉구한 통달, 49년 10월 의 조선학교 페쇄령, 민전 시기의 ‘공산교육’이라고 대대적으로 벌린 신문 캠페인을 비롯한 각종 방해, 65년 12월의 문부차관 통달, 외국인학교법안 조작책동, 반공화국 반총련 소동이 있을 때마다의 조선학교 학생에 대한 폭언 폭행 사건 그리고 경찰당국의 방치, 일본국립대학 수험자격 차별, 조선학교 조성금, 보조금의 삭감, 중지 조치 및 고교무상화 배제 등 해방 후부터 일관하게 조선학교를 탄압, 폐쇄하려고 하였다.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온갖 차별과 탄압책동에 그때마다 맞서 투쟁해왔고 지켜왔다. 동포들은 학교는 동포사회의 거점이고 중심이라는 인식에서 학교를 돕는 일에 선차적 관심을 돌려왔다. 양심적인 각계 일본사람들도 적극 협력해왔다. 총련은 동포들의 민족성을 고수하고 민족교육을 실시하도록 일관하게 사업해온 재일동포들의 유일한 단체이다. 

제한된 지면이나 이 부문에서 반드시 적어야 할 것은 이남의 동포들의 조선학교 지원사업이다. 영화 ‘우리 학교’의 상영 등을 통한 조선학교에 대한 인식변화, 도쿄제2학교, 에다가와조선학교 지원사업을 비롯하여 여러 시민단체들과 수많은 인사들의 적극적 지원은 조선학교에 대한 힘있는 고무로 되여있으며 그것은 날마다 확대되는 징조이다.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총련의 성과와 업적은 또한 권리옹호와 민족적 과업 수행

성과의 둘째는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 민족권리를 옹호하고 확대하기 위한 사업에서 이룩한 성과를 들 수 있다. 

해방 직후만 하여도 교활한 일본당국은 명목상 일본국적이었던 조선사람을 45년 12월, 중의원선거법을 개정할 때 의도적으로 제외하였으며 소위 신헌법을 제정할 때에도 초안에는 ‘피플’이라고 되어 있은 것을 ‘국민’으로 우겨대여 ‘국민조항’을 내걸어 조선사람에게는 납세의 의무를 제외하고 모든 초보적 권리도 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적대시 정책, 비우호 정책을 기본으로 대조선 정책을 집행해왔으며 행정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인 차별정책을 실시해 온 것이다. 

▲ 김정은시대의 총련의 전망을 명시한 총련 제24차 전체대회의 모습. 2018년 5월26~27일

거기에 일본사회, 일본사람들 속에 골수에 사무친 민족배타주의, 조선인 멸시사조가 뿌리깊게 남아있다는 사상심리적 배경이 있다. 역사수정주의의 영향 또는 일본교육 전반의 영향도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최근에 일본의 젊은이들은 일본이 과거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조선사람이 일본사람을 납치한 것이 조일관계의 기본처럼 여기며 지어는 가해자는 조선인이고 피해자가 일본인처럼 이해하고 있는 심각한 현상이 증가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총련은 재일동포들의 권리를 하나하나씩 쟁취하고 확대해왔다. 공화국에로의 귀국의 권리, 공화국에로 왕래의 권리, 제3국에로의 여행의 권리, 조선학교의 법인화, 조선학교에 대한 조성금, 보조금의 획득, 일본의 정부계 금융기관의 융자(국민금융공고 등), 공영주택(도도부현이나 시 등이 운영하는 주택, 일반 주택보다는 주택비가 눅다)의 입거권, 아동수당 등의 사회보장, 상대적으로 안정된 재류권의 확보, 일본의 국민연금에 가맹(82년에 국적조항은 페지되였으나 86년 시점에서 60살을 넘은 사람은 연금지불이 없음 등 상세한 것은 생략)등 점차로 확대되여가고 있으나 대단히 완만하고 조건부가 적지 않았다. 오늘 재일동포들이 획득한 권리는 동포 자신이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재정적 부담을 마다하지 않고 무로부터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당국은 재일조선인의 재류권을 비롯한 제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에 거주시켜주고 있다’는 불손한 자세이다. 

총련의 성과의 셋째는 나라와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일본이라는 입지조건에서 맞게 적극 사업해왔다는 것이다. 

총련의 이상과 같은 활동성과는 공화국의 최고영도자들의 탁월한 영도와 극진한 배려가 있었고 힘 있게 꾸려진 총련조직과 그 일군들, 그리고 동포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이후의 전망 

총련 앞에는 아직도 할 일이 대단히 많다. 동포들의 민족성, 정체성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동포사회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과제이다. 민족적 권리는 지금 확대 방향이 아니라 기존 권리마저도 박탈, 침해당하고 있는 위기적 상황이다. 동시에 나라와 민족의 통일을 위한 사업도 전민족적 과업으로서 당연히 하여야 할 사업이다. 

총련사업은 장기적으로 볼때는 밝은 전망이 펼쳐질 것이다.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6.12조미공동성명이 이행되여 나간다면 조일관계의 변화도 있을 수 있고 총련사업 환경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남 동포들의 총련사업에 대한 이해와 지지도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재일동포들은 자기 고향 땅, 선조의 무담이 있는 곳을 잊은 적이 없으며 총련은 공화국 동포들과 함께 이남의 진보세력, 통일세력과 그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다. 

총련은 장기적인 밝은 전망을 확신하면서 당면 목전의 애로와 난관에 굴함 없이 뚫고 전진해나갈 것이며 자주와 민주, 통일을 지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이 연재를 기획한 민플러스 편집부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짧은 연재로 60여성상을 이국의 찬바람 속에서 활동해온 총련의 발자취를 엮어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총련 활동을 리해하는데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였으면 필자로서는 마음이 놓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하시는 일의 성과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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