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개인적인 "남북정상회담 환영 통일 골든벨" 도전기!
"긴장 안 해도 된다. 우리는 즐길라고 온거 아이가?" 거머쥔 내 손을 가만히 치우며 아이가 말했다.
"지금 떨고 있는 건 제가 아니라 엄만데요...?" 그랬다. 253번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사시나무처럼 덜덜덜 떨고 있는 건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딱히 상품들이 탐이 났던 건 아니었다. 다만, 소박한 1등 소감을 남몰래 품고 있었다.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우리팀은 너무나도 급하게 떨어졌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정상선언문들을 공부했는데 내 것인 줄만 알았던 그것들은 다 어디로 빠져나갔단 말인가.
오늘은 운이 없었다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고, 어디 가서 차마 꺼낼 수도 없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남과 북을 갈라 놓았던 경계만큼이나 높고, 살아남은 자들과는 멀~리 떨어진 차가운 스텐 차단봉 뒤에 탈락의 자리를 잡았다.
심신이 자유로워지니 그제서야 대회장의 모습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쪽의 대통령에게 보였던 북녘의 뜨거운 동포애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참가하고 있었다(무려 300팀이 넘었다!).
어린 초등학생부터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탈락자들과 긴 시간을 함께했다.
틀린 답으로 열띤 토론을 하고, 급기야 문제를 의심하는 동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문제가 뒤로 갈수록 급격히 말수가 줄어드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였다.
"제가 오늘 일을 좀 하고 있는데요, 떨어진 소감을..."
"떨어졌는데 소감이 어데 있노!"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하신 걸 보면, 문제를 끝까지 안 들으셨을 확률이 크다.
"떨어지고 계속 아는 문제만 나오네요. 휴우..."
"아침에 감기약을 먹었는데..."
오늘은 운이 없었다고 했다.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고도 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다'를 느끼는 순간의 뜨거움이란!
시상식을 보며 '부럽다'를 연신 외쳐대는 아이에게,
"대회라서 어쩔 수 없이 순위가 있는 거지. 통일을 공부하고 행동하는 우리 모두가 1등이란다." 이거면 됐다 싶었다. 중요한 역사 속 한 줄에 아이도 나도 함께 했으니 말이다.
"떨어진 사람들이 꼭 그렇게 말하던데요." 초등학생의 예리한 통찰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물었다. 어떻게 통일을 하냐고.
"6.15 남북공동선언 1항에서 보면, 주체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2항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그럴 줄 알았다. 질문만 던져놓고 대답을 안 듣고 있었다.
"오늘 우리처럼 남과 북이 한 팀이 되는 거. 틀린 답 아니냐고 서로 의심하고 싸웠지만 그래도 집에는 같이 손잡고 가는 거. 오늘 우리가 거기서 했던 모든 것들이 통일 아니었을까?"
그제서야 고개를 끄떡이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오늘 하루가 안심이 된다.
어느 날 홀연히 양문을 활짝 열고 밤낮으로 나를 유혹했던 통일 냉장고는 '다시는 뒤돌아가지 않겠다'며 내 곁을 떠나갔다.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주로 예상문제와 선언문 위주로 공부했고(중략)
마지막으로 추운 날씨에 고생하시는 풍산 노동자들에게 이 상을 바치겠습니다.'
품고 있던 1등 소감은 안타깝게도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지만, 나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평화의 골든벨, 통일의 골든벨이 한반도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그날까지 나의 도전기는 쭉 계속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지금의 대세는 통일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