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호의 시네마北 (3)

▲ 이 영화는 자료로써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고속도로 공사의 완료 시기(2000년)와 영화 창작 시기(2001년)로 보아 고속도로 건설공사에 있어서 실재한 이야기를 핵심 소재로 삼은 듯하다. [사진 : 유튜브 갈무리]

이 영화는 1998년 11월에 착공하여 2000년 10월에 완공된 평양-남포고속도로 건설 당시 시멘트공급을 책임진 공장 지배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이다. 당 정책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노동자들에게 강한 요구성을 부여하며 끝내 일을 성과적으로 이루는 지배인과 관료주의와 보신주의에 물든 기사장을 대비시키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또한 당정책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그런 관료주의와 보수주의자들은 ‘길을 비켜라’는 것이다.

또 이야기의 시점은 평양-남포고속도로 건설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것이기에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조선) 노동자들의 경제적 곤란 문제도 엿볼 수 있으며, 공장 내에서 자신의 지위와 관계없이 당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노동자가 행정일군들에게 대들며, 자기 주장을 관철하는 모습 등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논쟁의 핵심은 바로 ‘자력갱생’의 실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북은 1948년 공화국 창건 이후에도 공장을 운영하는데 있어 한동안 일제강점기 잔재였던 지배인 중심 사업체계를 지속하였다. 하지만 이런 경영방식이 가져오는 문제점은 남포시에 위치한 ‘대안전기공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났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1961년 12월 김일성 주석이 현지지도하면서 새롭게 창립한 공장운영방식이 ‘대안의 사업체계’이다. 여기서 핵심은 공장 당위원회를 최고지도기관으로 하는 집체적 지도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 한편으로 그 시스템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길을 비켜라》에서도 공장 당위원회가 개최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서 대안의 사업체계가 현실에서 어떻게 운영되지 엿볼 수 있다.

참고로 북의 공장은 그 지휘부가 당비서, 지배인, 기사장 3자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당비서는 공장 전체의 정치적 운명을 책임지며, 지배인과 기사장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CEO와 CTO쯤 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영화 《길을 비켜라》에서는 지배인이 주인공이며, 기사장은 관료주의와 보신주의에 물든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기사장의 역할이 무척 작아 보이지만 제대로 된 기사장이라면 지배인 못지않은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다. 

▲ 텔레비죤련속소설 《분수령》(6부작)

대안의 사업체계가 만들어진 배경을 영화로 담은 작품은, 림재성의 장편소설 《분수령》(1989)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텔레비죤련속소설’ 《분수령》(6부작)이다. 이 영화의 창작 시기는 확인 못했지만 지난 2000년대 초반 자료에서 확인 안 되는 것으로 보아 최근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영화는 첫 화면에서 “이 작품은 1960년대 초 대안 땅에서 있은 실재 사실에 기초하여 쓴 작품”이라며 대안의 사업체계가 이루어지게 된 역사적 장소인 대안전기공장에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또 영화는 대안의 사업체계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이를 계기로 그러한 과오를 바로잡아주는 김일성 주석의 현지지도 방문을 통해 끝을 맺는다.

“전 간부 동지들이 이렇게까지 관료주의와 보신주의를 부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 새로운 연구자료를 들고 찾아가 시멘트 생산의 자력갱생을 제안하는 준기사 림훈철(좌)과 그것은 아직 위험하다며 이를 거부하는 기사장.

공장의 준기사는 현재 시멘트를 생산하기 위하여 석고 원료를 수입해 오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체의 석고 광산을 찾아내어 자력갱생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제안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고 계속 연구하여 기사장에게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다.

○기사장, “동무는 네가 전번에도 말했는데 왜 또 시끄럽게 이런 것을 들고 다니면서 그래?”

●준기사, “기사장 동지! 그 OO중석광산에서는 경석고뿐만 아니라 이 OO도 많이 채취했습니다. 기사장 동지는 어째서 무턱대고 안 된다고만 합니까?”

○기사장, “허허 이 동무가 점점~, 동무! 지배인 동무가 동무와 같은 준기사의 말만 믿고 숱한 노력과 자금을 들여 광산을 개발하자고 할 것 같은가? 가뜩이나 공장이 복잡한데.”

●준기사, “전 간부동지들이 이렇게까지 관료주의와 보신주의를 부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기사장, “허~참! 왜 더 붙일 감투가 없나?”

●준기사, “좋습니다. 모두가 반대해도 저는 꼭 우리나라 석고를 가지고 시멘트 생산의 열쇠를 찾아내고야 말겠습니다.”

○기사장, “동무! 더 소란을 피웠다가는 실험실에서 현장으로 옮겨 놓고 말겠소.”

준기사 림훈철은 그 뒤 당비서를 통해 자기의 연구 내용을 알고 연구실을 찾아온 지배인에 대해서도 관료주의자로 오해를 하며 자료제출 요구를 거절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직급상 사장의 요구를 일개 연구원이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지배인, “내 앞에 모든 걸 가져다 놔! 실험 분석한 거랑 연구한 거 모든 걸 다. 어서!”

●준기사, “못 드리겠습니다. 지배인 동지라고 이걸 다 빼앗을 권리가 있습니까? 지배인 동지는 반대하지만 저는 우리나라 석고로 꼭 시멘트를 만들고야 말겠습니다.”

지배인 아들을 앞에 두고 지배인을 비판하는 노동자

▲ 시멘트 생산에 필요한 석고 확보를 위해 공장 각 조직의 ‘석고수집 경쟁도표’를 게시하여 경쟁적으로 좀 더 많은 석고를 확보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석고 수집을 ‘이삭줍기’라며 반대하는 준기사 림훈철(좌)과 지배인 아들의 논쟁 장면. 

아래는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로 석고원료의 수입이 원활하지 못한 현실 속에서 지배인은 공장 단위조직을 통해 석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각 단위의 경쟁을 독려하자 준기사 림훈철이 문제는 새로운 광산 개발을 통해 자력갱생으로 풀어야 한다며 그 경쟁도포를 비웃자 지배인의 아들 윤명근이 임훈철에게 따지는 대화 내용이다.

○림훈철, “그까짓 이삭 줍는 놀음이나 해서는 뭐해. 괜히 사람 눈이나 피곤하게 만들지.”

●윤명근, “그게 무슨 소리요?”

○림훈철, “이렇게 이삭줍기 장난에 춤춰가지고는 석고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말이야.”

(돌아가는 림훈철을 윤명근이 따라가 발길을 멈추게 하며 말을 건다)

●윤명근, “형님! 말 좀 합시다.”

○림훈철, “하자는 말이 뭐야?”

●윤명근, “그래~ 지배인이 어쨌다고 험담이요.”

○림훈철, “어~ 동무(가) 지배인 아들이야? 그러니 제 아버지 역성 들자고 달려왔나? 야~ 부끄럽지도 않아?”

●윤명근, “뭐라구요? 좀 서라구요! 난 아버지의 역성을 들자는 게 아니라 형님같이 생사람의 뒤시비질이나 하는 그런 비열한 행동이 참을 수 없어 그러는 거요.”

○림훈철, “허~ 정당한 말도 뒤시비질이라?”

●윤명근, “뭐가 정당해요?”

○림훈철, “석고광산을 개발하자는 의견을 묵살해 버리고 땅에 떨어진 석고나 주으라고 하는게 옳다고 봐?”

●윤명근, “석고개발? 체~, 그래~ 우리나라에 석고가 있어요?”

○림훈철, “그야 물론. 내가 동무아버지한테 본때를 보이기 위해서도 내가 우리나라 석고로 시멘트를 만들 테니 결판은 그때 가서 보자.”

“자식은 열백이 있어도 어머니만큼 아버지 생각을 못한다”

▲ 지배인의 생일상을 차려주러 온 조카가 지배인 아들들에게 아빠의 재혼을 설득하는 모습.

지배인은 건강이 무척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은 돌보지 않고 공장일에만 매달리는데, 그의 건강을 책임진 의사는 바로 지배인의 여조카이다. 이에 삼촌 생일상을 차려주러 지배인집에 들렸다가 지배인의 건강을 위해 그의 아들들에게 재혼을 돕도록 권유한다.

○큰아들, “누이! 오늘 왔던 김에 우리 아버지 병치료를 좀 잘해주고 가라요. 요즘은 도무지 식사를 못하고 이상해요.”

◐작은아들, “나는 밤마다 아버지 앓은 소리에 자꾸 깨는데, 뭐.”

●사촌누나, “그렇게 걱정을 하는 얘들이 효자 구실할 생각은 왜 못하니? 자식은 열백이 있어도 어머니만큼 아버지 생각을 못한단다. 삼촌어머니 돌아간 지도 3년이 됐는데 이젠 새어머니 모셔올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니?”

◐작은아들, “난 그런 소리 듣기 싫어요. 씨~”

●사촌누나, “싫어도 해야겠다. 밤낮을 잊고 지배인 사업을 하는 아버지인데 삼시 밥이라도 따끈히 대접해야 할 게 아니냐.”

◐작은아들, “어쨌든 나는 싫어. 누나는 자꾸 그런 소리하려면 돌아가라요 우쒸~!”

●사촌누나, “명일아! 너는 지금 아버지의 병이 어떤 상태인줄 아니? 내가 오죽했으면 그런 말까지 하겠냐 말이다. 이 철없는 것아!”

행정일꾼에 대한 당일꾼의 연대책임

▲ 법무위원회에 지배인 대신 당비서가 올라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

지배인이 지시한 일에서 사고가 발생하여 법무위원회에서 그를 호출하자 당비서가 대신 책벌 받는 과정에서 나온 대화 내용이다.

○법무위원회, “지배인 동무를 보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해서 동무가 나타났소?”

●당비서, “우리 지배인 동무는 설사 과오를 범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에서 주는 과업을 무조건 해내고야 마는 진짜배기 충신입니다. 아랫사람들을 호되게 욕질하고 추궁해서 관료주의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요구성을 높이지만 일단 문제가 제기되고 사고가 생겼을 때에는 모든 책임을 자신이 걸머지곤 하는 참된 인간입니다. 이번에 일어난 차 사고로 말하면 지배인 동무의 잘못만도 아닙니다.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치고 당비서가 모르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 책벌을 주든, 제재를 가하든 당비서인 저에게 주십시요.”

○법무위원회, “그러니 이번 사고의 모든 책임을 동무가 지겠다는 거겠소?”

(법무위원회에 갔다 책벌을 받고 돌아온 당비서와 지배인의 대화)

○지배인, “비서 동무! 이건 뭐 사람을 동정하자는 겁니까, 아니면 모욕하자는 겁니까? 그래 이 지배인이 졸장부로 보이는가 말입니다. 난 공장을 위해서는 그 어떤 책임도 질 각오가 돼있단 말입니다.”

●당비서, “왜 또 이러십니까? 지배인 동무는 공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당일군은 옆에서 구경만 하고 매를 맞아야 할 사람은 행정일군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까? 저~ 제발 공장의 주인은 자기 혼자뿐이고, 다른 사람은 다 손님으로 여기는 그런 생각은 버리십시오. 공장에서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서야 응당 당위원회가 책임져야 할 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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