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노동자다] ④ 방송작가

매일 아침 7~9시 전파를 타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작가인 이미지씨. <뉴스공장> 제작팀 온라인 소통방은 자정까지도 활성화돼 있다. 다음날 아침방송 아이템과 출연진을 조율하는 일이 쉬이 끝나지 않는다. 매일 새벽 6시엔 당일 방송을 업데이트하고, 7~9시에 방송이 종료되면, 오후부터는 내일 방송 질문지를 작성하고, 출연진과 인터뷰를 조율한다. 오후에 시작한 일이 자정까지 이어지는 건 부지기수다. 

“속보가 떴는데 속보를 남보다 1초 늦게 확인할까봐 두려워 휴대폰을 손에서 떼놓지 못해요. 작가들이 가진 강박감이예요.” 아침 방송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에게 ‘마감시간’이란 게 없단 얘기다. 방송이 나가기까지 수차례 내용이 변경될 수도 있고 꾸준한 업데이트가 필요하기 때문에 노동하는데 밤, 낮 구분이 없다. 

▲ 이미지씨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작가다. [사진 :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지난 2003년부터 방송작가 일을 해온 이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바로 주중 라디오 청취율 1위인 <뉴스공장>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지금 신경 써서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잘 나가는 방송이기도 하고… 또 영광과 상처를 준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영광과 상처를 동시에 줬다는 건 무슨 뜻일까? <뉴스공장>은 지난 9월 한국방송대상 라디오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프로그램이 성공하기까지 작가들도 함께 기여했는데, 막상 시상식에선 손님이 된다는 것이다. “작가가 프로그램의 주요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상은 피디(PD)가 받고 ‘우린 꽃다발 준비해야겠네’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시상식의 풍경이 방송작가 직군의 모습을 상징성 있게 대변하는 느낌이라 씁쓸하다고 했다. 

방송사 관행이 된 ‘구두계약’ 

흔히 ‘프리랜서’라 불리는 방송작가는 방송사와 ‘구두계약’을 해왔다. 통상적으로 그랬다. “피디가 ‘오늘부터 같이 일하자, 돈은 얼마를 줄게’라고 하면 일을 시작해요.” 그런데 일의 시작과 끝은 매번 같지 않다. 지상파 방송사와 계약에선 원고료를 떼먹히는 사례는 없지만, 외주나 영세한 제작사와 작업하는 경우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작가들과 프로그램을 기획해놓고도 돈을 주지 않는, 상습적으로 사기를 쳐온 제작사도 있단다. 

그나마 올해 들어선, 계약관계라는 게 거의 없었던 ‘구두계약’에서 ‘서면계약’을 시행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외주제작사까지 확대된 단계는 아니며 KBS, MBC, SBS 같은 주요 지상파방송사에서 계약서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는 “긍정적인 변화임에는 분명하나 생각지도 못한 이슈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갑과 을의 계약관계에서 위계체계가 고착화돼 있어요. 방송사에서 계약서를 임의 작성해서 작가에게 서명하자고 내밀었을 때, 작가에게 불리한 내용이 계약조항에 있어도 서명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방송사 사정으로 계약이 변경될 수 있다’는 조항이 바로 그런 경우다. 방송사 사정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데, 임의 해고 등 계약변경이 당연시되는 내용이 서면계약에 담긴다는 것. ‘방송사 내의 불공정 관행’이 고착화돼 있어 나타나는 문제라고 이씨는 강조했다. 

이씨는 “계약서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라고 했다. 드라마를 쓰는 유명 드라마 작가들이 계약서를 써왔기 때문이다. “몇 월 며칠까지 원고를 줘야 하는 내용을 담아 계약서를 써왔어요. 유명 작가들이 쓴 극본이 기한 내에 나와야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으니까요.” 계약서를 써왔던 건 방송사 입장에서 ‘유명 작가들이 우리 방송사와 작업하는’ 계약관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란 뜻이다. 

▲ 회의 중인 작가들. 맨 오른쪽이 이미지씨. 

작가는 원고만 쓰는 프리랜서?

<뉴스공장>을 만들고 있는 이씨처럼 방송작가들 대부분은 ‘일’과 ‘쉼’의 구분이 없다. “일과 쉼의 구분이 없는 일상이 방송작가 직군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요인이 돼요. ‘근무지도 없고, 소속도 돼 있지 않고, 노동시간을 규정할 수 없는 프리랜서. 그래서 너흰 노동자가 아니야!’라는 인식을 확대하는 거죠.” 

“프로듀서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글만 쓰는 작가는 아주 극소수입니다.” 프로그램 제작 전반, 제작팀 운영의 전반을 함께 한다는 거다. 프로그램 구성, 섭외, 자료조사, 기획, 출연자와 정산, 심지어 주차배치까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데까지 개입돼 있지 않은 일이 없어요. 손이 가는 많은 일을 작가들이 합니다. 상상 이상의 일들이 많죠.” 이씨도 ‘작가’라는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스스로 생각할 때가 많단다. 

하는 일은 ‘다종다양’이며,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작가의 고료(원고료)는 제작비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고료 책정기준 역시 없다고 해도 무방해요. 피디가 ‘프로그램 같이 할래? 페이는 얼마야’라고 하면 ‘좀 적은데요, 조금 더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해도 인상될 여지가 많은 편은 아니에요.” 

제작비 역시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제작비가 축소되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게 작가의 고료라고 했다. “고료는 제작에 필요한 분필 한 자루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종합편성 채널이 늘어나고 적자를 보는 방송사가 많아지면서 제작비가 축소되는 일도 늘었다. “본사(방송사)로부터 외주제작사로 지급되는 제작비가 줄어들면 외주제작사가 협찬을 받아온 상품권으로 작가료를 주기도 합니다. ‘상품권페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거예요.” 

그뿐만 아니다. 제작이 중단되거나, 프로그램이 송출되지 않으면 제작비는 지급되지 않는다. 불방, 결방 등의 상황이 생기면 작가가 얼마나 일을 했는지와는 관계없이 일한 만큼의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방송사의 사정으로 방송이 순연됐을 때에도 작가들은 귀책사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한 대가를 뒤늦게 받게 된다. 작가는 ‘평균 노동시간, 평균 수입’에 대한 규정이 무색한 직군이다. 

‘직업이 작가여서…’

“작가들은 적게 벌고, 많이 벌고의 문제 이전에 내가 다음 달에도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요. 100만원을 벌어서 50만원을 쓰고, ‘50만원은 남겨둬야지’라는 생각은 해도, ‘50만원 적금을 넣어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이씨는 작가 일을 하면서 적금 한번을 넣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음달에 일을 못해 수입이 없을 수도 있고, 적금 역시 매달 꼬박꼬박 부을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시즌제 프로그램(시즌1, 시즌2…)을 맡게 되면 3~4개월 일하고 쉬고, 6개월을 일하고 두 달 쉬고… 이런 상황의 반복이에요.” 방송국 봄·가을 개편과 맞물리면 일거리가 없어지기도 한다. 

원하지 않던 ‘쉼’이 있기도 하지만 스스로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도 해야 한다. 이씨도 그랬다. “저만해도 출산 당일까지 원고를 썼고, 산후조리원에서도 원고를 쓰고 섭외도 했어요. 언제든 쉴 수 있고, 언제든 일할 수 있어서 방송작가는 여성이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얘기를 듣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여성노동자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임신, 출산, 육아 등과 관련된 ‘모성보호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애가 아프면 휴가를 낼 수 있고 정규직의 경우 당연한 건데 프리랜서 방송작가들은 휴가라는게 없어 종종거리게 되는 거죠. 다행히 지금 프로그램에선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어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업이 작가여서 둘째 낳는 건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또 작가들은 4대 보험 가입이 불가능해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보험과 연금에 가입한다. “연금은 65세 수령이고, 제가 제 인생에서 돈이 많이 필요할 때는 50~60세 사이일 것 같은데, 돈을 벌지 못할 때도 50~60세 사이가 될 것 같아요. 65세 연금 나오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에요.” 일이 있다가도 없는 상태인 지금보다, 50대가 되면 작가 일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제 50대의 작가들은 많지 않아요. 피디들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작가와는 일하고 싶은 마음이 적고, 그래서 작가들은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작가 일을 하면서 스스로 감당해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비용이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작가들은 ‘할부지옥’에 빠져요. 피디는 입사하는 순간 방송사에서 노트북이 지급되지만, 작가들은 개인이 사야 합니다. 할부가 끝날 때쯤이면 노트북이 망가져 새로 사야 하니까 또다시 할부지옥…. 작가들은 무제한 요금제를 씁니다. 해외인사를 섭외해야 하면 국제전화 비용이 들고, 전화로 한 시간 이상 취재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요.” 작가들의 고료 안에 이런 비용이 통틀어 지급된다고 보면 된다. “고료가 말 그대로 (원고에 대한)고료가 아닙니다.” 

“방송작가들도 감정노동을 합니다”

방송작가들의 노동환경도 여느 일터와 마찬가지다. “봄·가을 개편 시기, 방송사가 피디들 인사이동을 해서 프로그램 담당 피디가 바뀌면, 피디에 따라 작가가 교체되기도 합니다. 작가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죠. 상당수가 젊은 여성인 방송작가들은 일하면서 성희롱, 성폭력에 노출돼도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인지하고 고발하는 순간 일을 그만둬야 할 때가 많습니다. 특수고용 노동자, 일명 ‘프리랜서’여서 그렇습니다.” 

또 방송작가들은 ‘감정노동자’라고 했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고, 방송이 잘 되게끔 협조를 끌어내는 일을 하다 보니, 인터뷰에 응해달라고 사정도 해야 하고, 읍소도 해야 합니다. 같은 주제, 같은 영역의 전문가를 인터뷰하려 해도 외국에선 인터뷰에 합당한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에 읍소하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한 종편 시사프로그램에서 앞 출연자의 순간 시청율이 좋으면 담당 피디가 분장 마치고 대기하고 있는 다음 출연자를 출연시키지 않고 그냥 돌려보내는 경우가 있었어요. 이런 경우 그냥 돌아가야 하는 출연자에게 사과하고 읍소하는 일 역시 작가들의 몫입니다.” 감정노동에 떠밀리는 작가들의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노조의 이름으로 대응해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지난 11일 출범 1년을 맞았다. 이씨는 지난해 11월11일 출범한 방송작가지부 지부장이다. 지부장을 하면서 작가 일도 겸하고 있다. 

▲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지난 11일 출범 1년을 맞았다. 지난해 11월 지부 출범식 모습.

노조를 만드는 초기, 방송작가들의 노력과 헌신이 노조 출범의 큰 동력이었다고 이미지 지부장은 말했다. “한 방송사 안에서도 다른 프로그램을 하는 작가들은 서로 얼굴도 모를 정도로 개별화돼 일하고 있어요. 노조를 만든다고 하니 지방에서 올라와 서로 얼굴도 보고,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작가들도 출범식에 와서 ‘나도 노조 해야겠구나’하며 가입했어요.” ‘많은 동료가 작가들의 노조를 원하고 있었구나’하는 희망을 본 자리였단다. 

“어느 작가 한 분은 일한 돈을 떼먹힐 상황이었는데 언론노조 변호사와 상담하고, 회사에 가서 상담했다는 얘기만 했는데 돈을 받았습니다.” 노조가 있다는 것만으로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익명의 한 작가가 연락이 와서 퇴직금은 생각도 못 했는데, 우리도 퇴직금을 요구해도 되는지 묻기도 합니다.” 조금씩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하게 만든 변화다. 방송사에서도 ‘방송작가 직군의 얘기를 노조를 통해 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이씨는 방송사와 작가간 계약시 작가에게 불리한 계약서 조항에 대해 변경을 요구하는 일뿐만 아니라 KBS, MBC 등 지상파 방송사 외 개별 방송사들에서도 단체협약을 확대하는 게 노조의 주요 목표라고 했다. 노조 출범 1년, 그 사이 대구MBC와 안동MBC는 작가들과 원고료 산정·지급기준 협약을 체결했다. tbs에선 신입 작가 6명과 근로계약서를 체결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방송작가도 정규직이 가능하다는 모델을 만든 거예요.”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신입 작가들의 급여가 인상되고, 1년간 고용이 보장됐다. 

“선배 작가들이 소속된 한국방송작가협회의 우산 속에서 작가들의 고료가 조금씩 인상되었지만, 작가협회 가입조건(구성·다큐 분야- 메인작가 1년 포함 지상파/종합편성채널 4년, 라디오분야- 3년, 예능분야-5년 등)이 되지 않는 수많은 방송작가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노동조합이 절실했다”면서 이미지 지부장은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얘기하는 ‘권리’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라고 힘줘 말했다. “무엇보다 노조가 있다는 걸 몰라서 가입하지 못하는 작가들이 있다면 노조를 알리고 많은 조합원을 조직해 자주 대면하고 공유하고, 서로서로 이해하고, 힐링할 수 있는 노조를 만들어야죠.” 

연말 시상식 시즌이 오고 있다. 피디는 상을 받고, 작가는 꽃다발을 준비해 축하하는 모습, 흔하게 보게 될 풍경이다. ‘방송작가’ 노동자들에게 ‘상처’가 아닌 ‘영광’이 있는 시상식,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노동자 권리 찾기에 나선 방송작가들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프리랜서인 너희들은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 자체가 거짓 포장이에요.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무한도전’같은 예능프로그램을 만든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피디들의 경우 노동자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아요. 방송작가 직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직군이라고 해서 노동권과 근로기준법으로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노동권을 침해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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