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노동자다] ② 야쿠르트 판매원

“야쿠르트 판매 노동자 관련 기사가 나오면 두 가지 유형의 댓글이 달려요. 하나는 ‘아 이분들이 노동자가 아니었구나, 4대 보험도 안 되는구나’하는 애처로움이 묻어나거나, ‘전동카트 내 가게 앞에 세워두지 마라, 불법주차 하지 마라’는 항의 글이에요.” 

서울에서 야쿠르트 판매원으로 일하는 이연성(가명)씨가 고객과 국민들의 눈에서 바라본 야쿠르트 판매 노동자들의 현실을 기사 댓글에 빗대어 말했다. 

고객의 집 앞까지 야쿠르트를 배달하고, 출퇴근길과 동네 골목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쿠르트 판매 노동자들은 전국에 1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야쿠르트 배달·판매를 시작한 ‘판매노동자’의 대표선수다. 다른 말로 4대 보험, 연차수당, 휴가, 퇴직금이 없는 개인사업자, ‘특수고용 노동자’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씨는 8년 전 큰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학원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한국야쿠르트 일을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야쿠르트 아주머니 만나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 거리에서 만난 야쿠르트 판매 노동자. 참고사진.

‘갑’과 ‘을’이 바뀌었다

대리점에 찾아가 일을 시작했지만 처음엔 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희망임금, 집 주소, 연락처를 적으라고 해서 적었고, 지점에 가서 며칠간 교육을 받았어요.” 일하던 8년 사이, 1년에 한 번씩 계약서를 쓰게 됐는데 한국야쿠르트였던 ‘갑’이, 어느 순간부터 이씨 이름으로 바뀌고 한국야쿠르트는 ‘을’이 됐다고 했다.

‘갑’과 ‘을’의 관계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야쿠르트 노동자들은 한국야쿠르트 대리점에서 정해놓은 구역에서 배달과 판매 일을 한다. 유산균 음료는 1병당 판매 금액의 24%, 이제 막 시작한 간편식은 25%, 그리고 우유는 26%의 수수료가 정해져 있다. 거의 모든 제품이 24%에 맞춰져 있다. 이에 해당하는 판매 수수료가 이씨의 월 수입이 된다. 자신의 배달고객이 많을수록, 거리에서 판매하는 유동판매가 늘어날수록 수입이 느는 셈이다.

일은 대리점으로 출근해, 대리점에서 퇴근하는 구조다. 이씨의 경우 아침 7시 전에 대리점에 출근해 전날 제품대장에 적어놓은 제품을 담아서 나온다. 오전엔 고객의 집으로 배달을 하고 12시 반~1시부터는 자신이 정한 위치에서 유동판매를 한다. 이씨가 매달 정기적으로 제품을 배달하고 있는 고객은 140여 명. 거리를 오가는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유동판매 수입은 매일매일이 다르기 때문에 수입을 높이기 위해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다.

“몇 시까지 출근하고, 몇 시까지 퇴근하라는 말은 없어도, ‘추운데 그만하고 들어가세요’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제 스스로 정한 시간까지는 자리를 지키는 편이에요. 판매수수료가 어느 정도 높은 편이라면 그렇게 안하겠죠.” 저녁 6시가 다 돼서야 대리점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날 필요한 제품 목록과 수량을 제품대장에 적어 놓고 퇴근한다.

가을은 추수를 위한 계절?

기본적인 하루 업무에 추가되는 일은 제품 판촉, 홍보다. “해마다 겨울을 앞두고 대리점에선 ‘추수를 해야 한다’며 고객 확보, 신규고객 증가를 위한 홍보를 시켜요. 10월엔 포스터, 스티커도 붙이러 다녔고… ‘○○지구는 이만큼 신규증가구 했다’면서 홍보 독려 문구가 대리점에 붙어 있고…. 저는 화요일, 목요일 아침마다 홍보하는 일에 시간을 보냅니다.” 누구의 홍보를 보고 신청했는지, 누구에게 신규접수를 했는지와 관계없이 홍보를 통해 증가된 신규고객은 각 해당지구 담당자에게 연결되는 구조다. 

“다른 기업들을 보면, 마트에만 가도 협력업체에서 판촉사원을 고용해 돈을 지불하고 일을 시키는데 우린 비용 지불도 않고 홍보를 하라고 시키는 거예요.” 이씨가 휴대폰을 열더니 대리점과 야쿠르트 노동자간의 ‘공지방’을 보여준다. 쌍방소통이 아닌 일방만 올릴 수 있는 채널이다. 신제품 소개 링크가 올라오기도 하고, 새로운 간편식 제품이 나온 뒤엔 홍보글로 넘쳐났단다. 

“우리한테 ‘갑’이라고 하며 계약서를 쓰면서… 이런 소통방만 봐도 회사는 우리를 소비자로 보고 있다는 게 보여요. 회사에겐 우리가 1차 ‘소비자’이기도 하고, 빨리 제품을 홍보해서 판매하라는 거죠.” 신제품이 자주 나온 지난해와 올해엔 신제품 교육도 잦았다. 저녁에 대리점으로 일찍 퇴근해 교육을 받으라는 지시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꼴로 교육을 받았다. 회사가 말하는 건 “교육을 받으면 제품 홍보를 잘 할 수 있고, 그래야 수수료를 더 많이 받아갈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논리다. 

“제품 배달에 판매, 홍보까지. 일을 시작할 때 받은 한국야쿠르트 유니폼을 입고, 야쿠르트 제품을 들고 다니면서 고객을 만나고 있으니, 고객들도 당연히 우릴 한국야쿠르트 직원으로 봐요. 한국야쿠르트에서도 ‘야쿠르트 여사님들이 매출의 90%를 담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니까요.” 

‘노동자’ 인정이 아닌, 야쿠르트 ‘VIP고객’이 되다 

매출 90%를 책임지고 있다는 야쿠르트 노동자들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이씨가 다시 휴대폰 열어 ‘10월 매출과 수수료 명세서’를 보여준다. 10월 이씨가 제품을 판매한 전체금액(매출)은 약 890만원, 그 중 이씨에게 판매 수수료로 들어오는 월급은 200여만 원이다. 이씨가 휴대폰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200만 원이 들어와도 온전한 수입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듯 했다. 

가장 먼저 20만 원을 제한다. “거의 20만 원 정도는 내 돈 내고 한국야쿠르트 제품을 사는데 드는 비용이에요. 대리점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들을 받을 때면, 배달 고객에게 넣을 수도 없고, 유동판매도 거의 없는 날엔 제품을 받아오고도 유통기한을 흘려보내게 되잖아요. 가끔 고객에게서 ‘며칠간 집에 없으니 제품을 넣지 말아 달라’는 연락이라도 오면 또 제품이 남게 되는 거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들은 고객에서 서비스로 주거나 집으로 가져와 가족들과 먹는다. 판매 노동자들이 대리점에서 한번 받아 나온 제품은 반품을 할 수 없고 모두 자신이 소비해야 하는 것. 

“우리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을 가져가서 판매하면 대리점에겐 좋은 거죠. 회사는 고정판매(배달)분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런 제품을 주고….” 이씨는 자신이 하루하루 마시는 한국야쿠르트 커피음료 값만 계산해봐도 ‘VIP고객’이 된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제하는 금액은 이뿐이 아니다. 코코라고 불리는-콜드앤쿨(Cold and Cool)의 약자- 탑승카트 사용료가 월 3만 원이다. 또, 한국야쿠르트가 매월 저축이란 명목으로 10만 원을 적립한다며 자동으로 공제한다. 몇 십년을 일해도 퇴직금이 없으니, 퇴직금 형태로 노동자가 10만 원을 적립하면 한국야쿠르트가 5만 원을 지원하는 형태다. 

식대도 받지 못한다. 아무리 아끼려고 해도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한 달 점심식사비도 20만 원에 가깝다. 뿐만 아니다. 역시 ‘특수고용직’이라 4대 보험 가입이 안 돼 개인 의료보험료에 가입했는데 그것도 약 10만 원. 국민연금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휴대폰 비용도 모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다. 고객응대 전화를 비롯해 하루하루 배달 물량을 조정하는 고객과의 1대1 대화, 매월 초 이뤄지는 수금에 대한 공지도 수차례 반복 연락해야 한다. 

“회사는 보수언론들에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은 하루 4~5시간 일하고 월 170만 원이라는 꿀시급을 가져간다’고 말해요. 4~5시간 일한다는 건 점심시간까지만 일한다는 건데,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주60시간 이상 일하는데, 이것저것 제하기도 전에 200만 원을 받는다는 건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는 거 아닌가요?” 

배달과 판매가 줄어드는 겨울엔 수입도 줄어든다. 매달 지출되는 생활비는 일정한데 여름철만큼 수입이 보장이 되지 않아 이씨도 2년8개월 동안 밤에 우유대리점 배달까지 해봤다. 일이 힘들어 한국야쿠르트 일을 그만둘까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쉽지 않다. 내년 가을엔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 한국야쿠르트에서 판매하는 발효유 제품 [사진 : 뉴시스]

‘손 안대고 코푸는’ 한국야쿠르트 

한 달에 한 번, 매월 11일께 고객들에게 수금한 돈을 대리점으로 보낸다. 몇백 원부터 몇만 원까지 푼돈을 모아서 월 1회 일괄적으로 입금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계산이 맞지 않은 경우도 생겨 노동자들은 ‘금액이 맞지 않으면 채워 넣어야 할’ 대비용 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정해진 날짜에 입금이 안 되는 고객들이 종종 있어 내 돈을 미리 대리점에 넣어놓고, 고객이 늦게 입금해 준 돈으로 내 통장을 채우는 순서에요.” 

수금을 하려면 고객과 1대1 문자, SNS 대화를 여러번 해야 한다. “금액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매번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요. 회사는 수금하는 데서도 손 하나 안 대고 돈을 버는 거예요.”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라는 소리다. 

‘매출의 90%를 책임져주고 있다는 야쿠르트 여사님들’에게 한국야쿠르트는 ‘복지혜택’이라며 장기근속자 또는 판매왕에게 해외여행 기회를 제공한다. 이씨는 여기에도 할 말이 있다. “회사에서 경비를 지출해 여행을 보내주는 ‘선물’인건데, 여행에 들어가는 경비가 우리 ‘매출’ 금액으로 잡혀요.” 1년에 한 번씩 제공되는 20만 원 쇼핑몰 상품권도 역시 판매 매출에 포함된다. “결국 매출이 많으니 수입이 올라가는 거고, 우린 보험료가 오르는 결과가 나오는 거죠….” 

“야쿠르트 아줌마도 ‘노동자’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기사가 많지만 우린 전형적으로 한국야쿠르트에 종속돼 일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이런 얘기를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회사에서 판매증진을 위해 만든 스마트폰 ‘앱’이 하나 있었어요. 여기도 신제품을 소개하고 고객응대 매뉴얼을 올리고, 판매사례 등이 올라오는 곳이었어요. 2014년경 야쿠르트 아줌마의 퇴직금 소송 기사가 떴을 때, 아줌마들이 그 앱에 퇴직금 관련해 많은 글을 올리니까 회사 입장에선 일이 커진 거죠. 일반 관리자, 판매 노동자 등 8000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있는 앱에 퇴직금 얘기, 수수료 인상 얘기가 넘쳐나니까 앱을 닫아버렸어요.” 

앱은 닫혔지만 공지사항이 하나 내려왔다. 제품마다 다양했던 수수료를 24%대로 맞추겠다(간편식 등 제외)는 것이다. “우리가 한목소리를 내니 수수료가 달라졌어요. 근데 누구는 수수료가 올라서 좋다고 말하지만, 올라간 게 아니라 지금까지 받지 못했던 것을 원위치시킨 거죠.”

“어느 날, 한 노동자가 ‘난 주말에도 고객 집에 가서 놀고, 야쿠르트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어요. 그 얘기가 있은 뒤 회사에서 포스터를 만들어서 붙였어요. ‘토요일은 고객만나는 날’이라는 포스터를. 대부분은 특별한 일이 있지는 않은 이상 주말에도 일을 합니다.” 이젠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아예 없어졌다. 

야쿠르트 판매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없는 상태다. 그래서 이씨는 개인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개별 개별로, 점과 점으로 나누어져 일하는 사람들이 ‘지역과 업체’를 떠나 하나둘 모여서 노동자로서 권리를 찾아보자는 마음에서다. 

“야쿠르트 판매 노동자들 한 명, 한 명이 개별화돼 일하고, 노점화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들도 ‘노동자’라는 것을 알리는 기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최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장갑질이 언론을 통해 더 여론화돼 사회에서 공분을 산 것처럼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야쿠르트 판매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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