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호의 씨네마‘北’ (1)

본 연재는 북녘 땅 전역에서 방송되는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최근에 방영한 영화를 소개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북측 인민들이 느끼는 현재의 정서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 동안 70년 넘는 분단은 왕래는 물론 체제조차 서로 달리하며 살아온 탓에 남과 북은 실로 많은 것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다시 합쳐져야만 할 운명적 공동체이기에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통일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며 이 글이 그 것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이에 본 연재는 영화에 대한 필자의 특별한 평가나 분석을 되도록 자제하고 영화 속에 나오는 대화를 그대로 옮기면서 가장 현실감 있게 북의 민낯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참고로 개성공단지원재단 이사장 김진향의 “우리가 아는 북한(조선)은 없다”는 말과 “우리가 북한(조선)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미국 조지아대학교 교수 박한식의 말을 되새기며 북한(조선) 영화를 선입관 없이 그냥 우리와 다른, ‘또 다른 사회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필자 소개 : 연세대학교에서 북한(조선) 영화를 연구하며 박사과정을 수료하였고, <북한영화, 그리고 거짓말>, <하나를 위하여>,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서촌을 걷다>, <21세기 민족주의>(정수일 외 공저)등을 저술하였다. 한편 양심수후원회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통일운동을 하고 있다. 

 

▲ 예술영화 <우리는 묘향산에서 다시 만났다>(1983), 영화문학(리희찬, 윤진호), 연출(공훈 오병호)

예술영화 <우리는 묘향산에서 다시 만났다>는 1983년 창작된 것이지만 거의 매년 한번 정도는 상영하며, 올해는 지난 평양남북정상회담 직후인 9월말에 조선중앙텔레비죤을 통해 전국에 방영된 영화다. 또 이 영화는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4)에도 소개된 것이기에 비록 방영된 지 한 달이 넘은 것이지만 본 연재의 첫 번째 영화로 선택했다.

내용은 처음 불쾌하게 만났던 남녀가 묘향산에서 다시 만나 오해를 풀고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을 아름답게 형상한 영화이다. 남자주인공은 인민배우 김원이며, 특히 그를 사랑하게 되는 여자주인공은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특별상을 받은 <꽃파는 처녀>(1972)의 인민배우 홍영희이다.

화가인 정아(홍영희)의 가족이 묘향산 인민휴양소에 갔다가 그곳의 석공(바위에 글을 새기는 사람)과 벌어지는 일화를 극화한 것이다. 참고로 정아의 아버지는 역사학자며, 어머니는 시인이다.

묘향산에서 석공을 하던 주인공 성준은 묘향산의 아름다움을 시로 담아 유명시인인 정아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보려 했지만 처음에는 석공이라는 그의 직업에 대한 선입관으로 무시당하고 만다. 하지만 점차 성준의 묘향산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그의 문학재능에 반하며 가족 모두가 그를 받아들이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여기서는 간단히 몇 장면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석공 성준은 우연히 정아가 그리고 있는 묘향산의 인호대 폭포 그림을 보게 되는데 그의 그림이 묘향산의 아름다움을 다 못 담은 것 같아 그녀에게 묘향산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하여 깊은 산속으로 그를 데리러 가며, 뿐만 아니라 줄사다리를 타고 수십 미터의 험한 바위를 타고 내려가자고 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 줄사다리를 타고 묘향산 깊은 곳에 위치한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

▶석공, “자~ 따라 내려오시오.”
▷ 정아, ”어머나~, 거길 어떻게 내려가요?”
▶석공, “하~, 진짜 이노대 경치를 보자면 이 밧줄을 타고 저 밑에 내려가야 합니다.”
▷ 정아, ”아이고, 그 위험한 데를 어떻게 내려간다고….”
▶석공, “누구나 다 걸어 다닐 수 있는 안전하고 평탄한 길을 걸어서야 어떻게 남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욕심을 내겠습니까?”

 이후 정아는 석공의 안내로 묘향산의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한 뒤 그 동안 석공에 대해 오해했던 것을 사과하고, 이에 대해 석공은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또 시를 쓰게 된 이유 등을 설명해준다.

▲ 남녀 주인공의 오해가 풀리는 자리

▶ 정아, “용서하세요. 성준 동무. 우리 어머니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만~. 그 일은 없었던 걸로 다 잊어버리고, 이제라도 내게 글씨를 덜어주실 수 없겠어요?”
▷석공, “차라리 어머니에게 안보이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 정아, “이번에도 또 동무를 도와드리지 못하는 군요.”
▷석공, “아니, 달리 생각지 마십쇼. 지금도 난 꼭~ 그 무슨 전문시인이 돼보겠다고 시를 쓰는 건 아닙니다.”
▶ 정아, “(뜻밖이라며 놀란 듯이)네?”
▷석공, “난 그저 사람들에게 우리 묘향산을 자랑하고 싶은 심정에서 시를 써보는 거예요.…(중략)… 철이 들면서부터는 내가 나서 자란 이 묘향산이 어떤 곳인가를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아 동무~! 우리 묘향산에 와서 며칠씩 놀다가 돌아간 동무들은 이 돌과 물, 나무들을 수만 톤의 금과 바꿨다는 것을 모를 겁니다. 해방 직후 나라의 사정이 제일 어려웠던 때 저 하예놀(?) 골짜기에서 우리 아버지들이 요란한 금광을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밑에까지 온통 금덩어리인데. 그런데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이 보고를 받으시고 ‘우리 묘향산은 억만 톤의 금하고도 바꿀 수 없다’고 하시면서 그 금광을 도로 폐광시켜 주셨답니다. 이 아름다운 경치가 손상을 입을까봐.…(중략)…저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올라가는 저 등산길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등산길이 미끄럽지 않을까’, ‘벼랑이 위험하지 않을까’, 디딛개 홈을 파주고, 안전손잡이를 세워준 저 하나 하나에도 따사로운 보살핌이 깃들어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고마움을 가슴에 안고 저 바위에 사랑의 노래를 새기고, 조국의 귀중함도, 우리 제도의 고마움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정아는 동생에게 자신들이 그 동안 석공의 진심에 대해 오해했다고 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심리변화를 나타낸다.

▲ 정아(왼쪽)가 동생 은아와 이야기 나누는 장면

▶ 정아, “우린 그 동무에 대해서 너무도 시시한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그 동무는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이 깃든 이 묘향산의 아름다움이 깎일까봐, 그래서 내 그림을 도와주려고 그처럼 모든 성의를 다했는데 우린 그 성실성을 너무도 몰랐댔구나.”
▷동생, “언니는 지금 마음이 허전하겠구나.”
▶ 정아, “그건 무슨 소리니?”
▷동생, “그 사람이 언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아무래도 마음이….” ▶ 정아, “너 이따금 쓸데없는 소리를 잘 하더라.”
▷동생, “언니, 솔직히 말해봐. 언니가 오히려 그 동무에게 마음을 두고 있지?”
▶ 정아, “하하하~, 언니는 뭐 누구에게 마음을 두면 안 되니?”

 이렇게 이야기는 변해가며 역사학자인 정아의 아버지 조학수도 석공에게서 묘향산 보현사에 대한 안내를 받으며 그의 역사지식에 놀란다. 뿐만 아니라 묘향산에 대한 저서까지 낸 자신을 비판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감탄한 정아 아버지는 그 뒤 석공을 다시 찾아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 정아 아버지가 석공을 찾아와 이야기 나누는 장면

▶ 정아 아버지, “사실 난 오늘 동무와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자고 찾아왔소. 내가 바로 조학수고, 정아의 아버지요.”
▷석공, “그렇지 않은가 짐작은 했습니다.”
▶ 정아 아버지, “아니 어떻게?”
▷석공, “선생님이 그 저서에 대해서 하찮게 말씀하실 때….”
▶ 정아 아버지, “그런대도 그렇게 태연하게 사람을 앞에 놓고 비판했단 말이요?”
▷석공, “하하하~, 내친걸음에 냅다 밀었습니다.”
▶ 정아 아버지, “하하하~ 걸작이요. 아주 걸작이요. 하하하…. 동무는 그날 내게 참 좋은 말을 해주었소. 그래서 난 동무와 자주 이렇게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또 찾아왔소.”
▷석공, “선생님, 너무 지나친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무슨~.”
▶ 정아 아버지, “성준 동무, 다른 사람이 진정으로 말할 땐 진정으로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지.” 석공, “네~.”
▶ 정아 아버지, “그래 우리 정아가 어떻소?”
▷석공, “좋은 처녀라는 생각은 듭니다.”
▶ 정아 아버지, “뭘 보고?”
▷석공, “첫째로는 창작적 열정이 마음에 들었고, 그 다음엔 조국의 아름다움 앞에서 자신을 낮출 줄도 알고….”
▶ 정아 아버지, “하하하~ 아무튼 동무가 잘 도와주오.”

 마지막으로, 끝까지 자기 딸과 석공의 만남을 반대하던 정아의 어머니는 결국 석공의 묘향산에 대한 다음 같은 자작시에 그만 넘어가고 만다.

▲ 정아 아버지는 석공의 자작시를 적어 와서 부인 앞에서 마치 자신의 자작시처럼 낭독하다 기억이 안나 몰래 수첩을 훔쳐보는 모습.

“아 묘향산아

나는 너의 바위에, 너의 절벽에 영원한 노래를 새기는 석공.

아~ 세월이 흘러 우리가 옛사람으로 불리우는 그 때에 가서도

사람들은 우리의 구슬땀이 배인 그 바위 앞에서 묵묵히 생각해주리.

이름 없는 예술가. 이름 없는 조각가라고.”

북한(조선) 영화가 항상 해피엔딩이듯 이 영화 역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만 여기서는 설명되지 않은 또 다른 오해와 반전으로 그 흥미를 위해 이야기가 구성돼 있어 관객들의 즐거움을 더해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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