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좌초’에 대하여⑤
지난달 13일 평택2함대에서 열렸던 천안함 선체 및 어뢰에 대한 검증절차를 기점으로 천안함 사건 관련 항소심 재판이 후반부로 진입했다. 하여 지난 8년간 분석하고 재판을 통해 확인되었거나 문제가 제기된 내용들을 총정리하여 주제별로 연재한다.[필자주] |
1. 좌초시 그대로 두어야 하는 이유
천안함 사건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쉽고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천안함 항해당직사관이 저수심에서 ‘최초 좌초’하였을 때 배를 무리하게 빼지 말고 좌초된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2함대에 구조요청을 했더라면 단 한 사람도 다치거나 희생될 일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 만약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할 경우 당장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한 응급차량과 전문구조원을 불러서 부목을 대거나 들것으로 옮겨 병원에 이송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보편적 상식이 되었습니다. 모두 홍보와 교육의 효과입니다.
급한 마음에 아무나 환자를 일으켜 세우거나 이동하는 경우 척추신경 손상과 같은 2차적 손상이 발생하여 평생 불구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박도 다르지 않습니다. 좌초한 선박은 절대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항해사의 철칙입니다.
위 사진처럼 아주 운좋게 휴양지 백사장에 좌초한 경우이거나 ‘머드팩’하기 좋을 만큼 부드러운 뻘 밭에 좌초한 경우가 아닌 한, 선박이 좌초로 해저 바닥을 파고 들거나 돌, 자갈 등을 짓누르는 경우 반드시 선저하부 외판이 찢어지거나(크랙), 구멍이 나는(파공) 등의 손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누누이 말씀드립니다만, 선박이 쇠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강할 것이라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 선박은 구조역학적으로 매우 약한 구조물입니다. 물에 떠있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악천후에 견딜 수 있으며 목적(화물, 여객, 운송, 전투 등)에 부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철판만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선저외판의 손상은 즉시 ‘침수’를 유발하며 선박의 가장 낮은 곳부터 해수로 채워나가게 됩니다. 선박의 가장 낮은 곳에는 엔진룸이 있고 그곳에 해수가 차게 되면 엔진이 정지되어 기동력을 상실합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좌초한 배를 무리하게 빼는 행위는 거의 ‘자살행위’입니다.
‘좌초’의 사전적 의미는 ‘배가 암초에 부딪침’인데, 암초뿐만 아니라 모래든 뻘이든 선박이 땅(Ground)에 닿는 모든 상황을 좌초라고 합니다. 배가 암초든 땅이든 닿았다는 것은 어쨌거나 수심이 얕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대로 두면 기껏해야 기관실과 하부 구획들만 침수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면 구조를 요청한 뒤 전 대원을 안전한 상부갑판으로 이동시키고 구조선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랬더라면 천안함에는 단 한 사람도 다치거나 희생을 당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안함 항해당직사관은 무리하게 배를 후진으로 뺐습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추정해 보건데, ‘좌초’나 ‘충돌’을 경험하지 못한 초급장교가 운항 중 합선의 기동력에 문제가 생기니 ‘좌초’라는 생각에 미치지 못하고 혹시 그물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여 후진엔진을 썼던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실제 후진엔진을 써서 배가 빠져나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습니다. 선저하부가 찢어지고, 가스터빈실 하부에 10cm×10cm 파공이 발생하여 침수가 시작되고 프로펠러가 휘어지는 등 심각한 일이 벌어지지만 그 모두 수면 아래에서 발생하는 일이라 정작 함교의 당직사관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합니다.
2. 무리한 이초(離礁, 좌초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것)
그 결과는 심각했습니다. 최저수심 4m인 곳에서 좌초를 한 천안함을 후진으로 빼내 수심 47m 지점까지 이동하는 동안 엄청난 침수를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함교 당직사관이 함장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작 함교에서는 침수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관실은 난리가 났습니다. 가스터빈실 하부 선저하부 파공 부위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줄기는 엄청났을 것입니다. 1200톤 선체가 짓누르는 압력으로 뿜어져 들어오는 해수는 마치 화재시 소방호스 물줄기 같았을 것입니다.
파공이든 크랙이든 침수를 막기 위한 1차적 조치는 널빤지를 대고 침목으로 받침대를 만들어 해머로 내리쳐 일단 침수를 줄이는 방법 외에 없습니다. 널빤지와 침목, 그리고 해머는 후타실과 보수공작실에 있습니다. 김종헌 중사와 김동진 하사가 후타실로 즉각 달려갔던 이유입니다.
당시 후타실에는 대원 두 명이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종헌 중사와 김동진 하사, 그리고 대원 2명 포함 모두 4명의 승조원들은 후타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곧 이어 발생한 ‘충돌’로 선체가 반파됩니다.(추후 게재될 ‘충돌에 대하여’ 글에서 상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최초 좌초 시각은?
‘21시15분’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천안함이 최초 좌초한 시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몇시 몇분’이라고 확정한 적이 없습니다. ‘좌초 후 충돌’이라는 원인을 밝힌 이후에도 그 시각을 확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오랜 시간 분석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검증과 확인을 무수히 거듭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천안함 침몰사고에 대한 국가기관의 공식발표는 단 하나 - 사고도 단 한 번뿐이고, 그것은 폭발이며 폭발 시간은 21시21분58초. 그 근거는 지자연(지질자원연구소)의 지진파. 그로부터 폭발원점의 방위각을 산출하여 ‘피격지점’ 확정.
정부가 ‘최초 좌초’사실을 은폐하였으니 그 시각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일 천안함의 항적과 238초소에서 촬영한 TOD 영상들을 복기하고 압축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매우 유의미한 결론, ‘좌초 후 충돌’의 시각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좌초시각 21시15분, 충돌시각 밤 21시22~24분 사이. 이것이 제가 결론내린 좌초 및 충돌 시각입니다. 좌초시각은 21시15분이라 확정하면서 충돌시각을 21시22~24분으로 범위를 넓게 설정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좌초 시각은 구체적 정황과 여러 데이터가 존재합니다. 사고 순간 전후의 상황을 압축하여 시간을 확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충돌의 경우 그 시각을 확정할 수 있는 정황의 범위를 좁히는 게 쉽지가 않았고, 무엇보다 충돌은 발생 순간부터 선체가 완전히 반파될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선체가 충격과 무게 중심에 의해 순서대로 뜯겨져 나가는 동안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TOD 영상 속에 사고 순간의 영상은 존재하지 않지만, 사고 직후의 천안함 모습이 잡힙니다. 실제 그 모습은 ‘폭발 즉시 반파’라는 국방부 주장과는 달리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는’ 천안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령도 여섯 군데 초소에서 모두 TOD를 촬영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유일하게 238초소 영상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군사기밀’이라는 명목으로 공개를 거부하였습니다. 국방부가 238초소 영상만 공개한 이유는 ‘사고 순간’의 영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분석합니다.)
분석과정에서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은, 좌초시각(21시15분)과 충돌시각(21시22~24분)이 겨우 7~9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좌초한 배가 이초한 후 충돌하기까지 겨우 7~9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게 말이 돼? 이것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데에는 많은 데이터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국방부가 확정한 사고시각 21시21분58초는 지자연(지질자원연구소)의 지진파 발생시각을 기준으로 하여 확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피폭 지점(폭발 원점)’ 역시 지자연의 지진파로부터 얻은 데이터 값을 기준으로 확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국방부의 발표가 정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국방부가 발표한 피폭지점(폭발원점)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은 238초소에서 촬영된 TOD 영상만으로도 간단하게 입증이 가능하며 이 또한 앞으로 게재될 ‘충돌에 대하여’ 부분에서 집중 다루게 될 것입니다.
4. 최초 좌초 시각 – 처음부터 보도되었다
사실 지나놓고 보면 ‘진실은 가까운데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천안함 사건 초기에 언론들은 ‘좌초, 파공, 침수’를 집중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방부가 모든 발표를 장악하고 통제하기 시작한 이후 사고원인은 ‘폭발’로 둔갑하기 시작하였고, 이른바 ‘1번을 쓴 어뢰’를 등장시켜 군 장성들이 높은 의자에 기대고 앉아 낭독하듯 선언하며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결국 최초 보도된 내용들이 모두 진실이었습니다. 국가 권력기관이 주도하며 조작과 왜곡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초기 상황, 언론사 기자들이 해군 관계자들을 직접 취재하여 보도된 내용 속에 진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방부의 거짓을 세상에 고발하고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내부자들의 숨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군 관계자가 언론에 익명으로 제보한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최초 상황일지’입니다. 군관계자 한 분이 천안함 사고시각과 관련, 군 당국의 발표인 밤 9시22분보다 빠른 밤 9시15분에 ‘최초 상황이 발생했다’며 ‘최초 상황일지’를 MBC에 제보, 보도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던 내용입니다.
익명의 군 관계자가 MBC에 제보한 최초 상황일지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MBC의 보도 기사 마지막 부분에 천안함 사건의 개요와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한 ‘진실 덩어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문건에 따르면 천안함은 9시15분에 1차 충격이 있었고, 6-7분뒤 2차 충격으로 3분만에 가라앉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군이 발표한 최초 발생 시간 9시 22분까지는 천안함에 뭔가 급박한 일이 벌어졌을 걸로 추정됩니다. -출처 : http://imnews.imbc.com |
바로 이 부분입니다. 천안함은 9시15분에 1차 충격, 6∼7분뒤 2차 충격으로 3분만에 가라앉았다... 이것이 진실이었습니다. 다만 1차 충격은 ‘좌초’이며 2차 충격은 ‘충돌’이라는 구체성이 빠져있긴 하지만 사건의 개요와 사실관계를 대단히 정확하게 짚었던 특종보도였습니다.
저는 이 보도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으며 누가 제보했을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이에 대한 당시 ‘동아닷컴’의 기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동아닷컴은 국방부의 ‘거짓 해명’을 문제삼으면서도 ‘문건의 유출’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동아다운 보도입니다.
언젠가는 ‘최초 상황일지’를 MBC에 제보한 군 관계자가 누구인지 본인이든 MBC든 밝혀질 날이 오겠지요. 그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언
천안함은 2010년 3월26일 21시15분에 ‘최초 좌초’하였습니다. 그러나 항해당직사관이 무리하게 후진으로 빠져나온 후 7∼9분 뒤 수심 47m 해역에서 21시22∼24분경 ‘충돌’로 반파되어 침몰하였습니다.
다음 편의 글은 ‘천안함 프로펠러의 손상’에 대한 분석글을 올려 드리고 이어서 ‘충돌에 대하여’ 시리즈 글들이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