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연극 ‘미씽 미쓰리’를 보고

복잡하고 소란스럽거나 활기차고 화려하거나, 서울 동숭동 대학로는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신비로운 장소다. 대한민국 연극의 대명사이자 연극인들의 꿈의 아지트. 하지만 꿈의 벽을 오르고 오르다 애벌레들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정상을 향해 서로의 머리와 몸을 밟고 기어오르는 애벌레기둥들이 곳곳에 서있는 듯한. 때론 애벌레에서 나비로 화려하게 변신한 배우들을 볼 때마다 설레는 곳이 또한 대학로다.

연극 ‘미씽 미쓰리’는 대학로의 뒷골목에서 얼굴을 빠끔히 내민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이달 1일부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모든 공연은 표를 구매하고 들어가는 선불제인데 반해 ‘미쓰리’의 당돌함처럼 후불제를 당당하게 내걸었다. 그것도 ‘나눔 후불제’라니. 그저 호기심을 자극하겠다는 이유만으로 무모한 선택을 할 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만약 재미없다면 연극을 보는데 들인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청구할 기세로 극장에 들어섰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의자와 바닥 정도로 좁은 극장이었고 곳곳에 빈 좌석이 보였지만 그렇다고 아예 썰렁할 만큼 관객이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불제라는 떡밥(?)에도 일요일 오후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놀랍기도 하고 서운한 감정도 들었다. 하나의 연극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긴 시간과 여러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기에.

* 미씽(missing)미쓰리

극장 안의 조명이 꺼지고 흘러나오는 추억의 노래 비지스의 ‘Holiday.’ 순간, 어둠 위로 그려지는 머리 속 영상은 뜬금없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장면이라니, 개인적 취향의 틀에 박힌 상상을 바로 접어버렸다.

무대 위에는 수은등 느낌을 지닌 붉은 기운의 조명 아래에서 오래된 미싱을 돌리고 있는 여자와 호루라기소리, 경찰차 사이렌소리, 쫓기는 남자가 버무려지고 두 남녀의 묘한 만남이 시작된다.

여자는 수선집 주인 연정이고 남자는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아 누명을 쓰고 쫓기는 태호. 태호의 다친 다리를 직접 깁스하고 간호하는 연정. 그들은 팍팍한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난 인연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재개발 논란으로 시끄러워진, 한적한 동네 달정삼거리에서 가족처럼 살아가는 동장아줌마와 슈퍼주인, 외국인 노동자, 미혼모, 택배기사. 세상의 일들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운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들을 개미들처럼 꼬박꼬박 해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자본과 결탁한 도시재생의 붐이 달동네인 이곳에도 불면서 개발 찬성파와 반대파간의 갈등이 주민간, 가족간 갈등으로 비화된다.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이 돈이라는 절대권력 앞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불우한 상황.

세상의 일에서 한 발 떨어진 듯 보이던 슈퍼주인이 개발 반대시위에서 자신의 오래된 자동차를 불 지르며 힘없는 달동네 사람들의 권리를 주장하다 주동자로 몰려 체포된다. 그런 상황을 선정적으로 취재하기 위해 달려드는 언론사들. 마치 우리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슈퍼주인이 한 대사가 가슴에 박힌다.

“요즘 언론은 말이야, ‘돈키호테 같은 사람들을 찾아내서 풍차를 가리키면서 네가 싸워야 할 거인이 저기 있다’ 고 부추기는 거 같아.”

“돈키호테는 풍차를 보고 거대한 거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지. 거인을 무찌르면 자신의 기사도와 자신의 용기를 증명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풍차를 향해 돌격하지만 매번 풍차 날개에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되거든. 독무! 그렇게 하라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말이야.”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아무리 풍차를 불태워도 풍차는 또 다시 나타납니다.”

그는 그러면서 더 많은 돈키호테들이 생겨나야 한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생기는 풍차와 맞서는 돈키호테들이 끊임없이 생겨나야 하는 세상. 어쩌면 지구가 둥근 이유도 끊임없이 돌고 도는 돈키호테와 풍차의 대결처럼 느껴졌다. 슈퍼주인이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처럼 보이다니...

연극 안에서의 결말은 슈퍼주인이 잡혀가고 모두가 다시 팍팍한 일상 안에서 먹고 살기 위한 자신의 일들을 버릇처럼 해나간다. 다만, 주인공 연정이 자신이 꿈꾸던 도시 ‘헤라피스’에 태호랑 갈 수 있다는 결말을 작은 선물처럼 전해준다. 진범이 잡히면서 패륜아의 굴레를 벗은 태호가 연정의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안에서의 재개발사업은 현실에서처럼 자본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슬픔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현실에서 돈키호테로 싸워낼 것인가 선택을 묻는다. 그 결론은 관객 스스로가 내리는 일이다.

연극 ‘미씽 미쓰리’는 ‘미씽(missing)’의 뜻처럼 ‘실종됐거나 없어진’ 또는 ‘놓치거나 부족한’, 그러기에 ‘그리운’ 가족과 이웃 간의 소통, 자본의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는 듯했다. 가장 상식적이어서 별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희박해지는 것들인 ‘어둡거나 붉은 달정삼거리들의 이야기’를 잘 배치해낸 수작이다.

* 연극집단 ‘반’

대학로의 연극판에서 20년을 견뎌온 연극집단 ‘반(反)’의 연극은 재미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진중한 연극이 대부분이다. 보이는 것들이 자꾸만 천박해지고 가벼워지는 시대에 ‘반’의 연극은 가끔씩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어두운 시대, 정곡을 찌르는 내용들이 분명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이면과 본질을 돌이켜 본다, 가난한 연극의 정신으로 미래를 채워나간다, 창조를 위한 파괴의 정신으로 현실을 반대한다, 사람다운 사람과 연극다운 연극으로 아름답다'는 정신은 기가 막히게 멋지다. 자본의 입맛에 맞게 획일적으로 길들여지고 여린 감성만 파고드는 상업적인 연극판에서 척박한 시멘트 더미 위, 피어나는 노란 민들레처럼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연극집단 ‘반’의 대표이자 상임연출인 박장렬씨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서울연극협회 3, 4대 회장이자 극장나무 협동조합 이사장,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3기 동인이기도 하다.

각자의 역을 군더더기 없이 소화해낸 권남희, 김담희, 문창완, 송현섭, 이가을, 한필수, 정종훈, 이창익, 김 천 등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말 하나하나 나비 같은 배우들이다. 눈물까지 흘리며 봉투에 넣은 후불 5만원이 아깝지 않은 ‘미씽 미쓰리’는 오는 10일까지 나눔후불제로 계속된다.

* 후속작 ‘집을 떠나며’

한편 연극집단 ‘반’은 후속작으로 블랙리얼리즘 3탄, 연극 ‘집을 떠나며’를 오는 16일부터 24일까지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공연한다.

‘전쟁의 반대는 평화가 아니라 예술이다’라는 대사를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를 연극에 담았다. 가족들을 비극적 나락으로 내몰고 폭력을 행사하는 주인공 남자를 국가와 사회의 폭력으로 상징하고 정의를 지켜내지 못한 국가와 사회가, 약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부조리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 속에서 우리가 찾고자하는 진실은 사랑이고 평화의 발현이 예술이라는 것을 말한다.

“연극집단 ‘반’의 연극행위는 어두움과 이면을 먼저 들추어 보여주고, 그 어둠의 내용과 형식으로 만드는 연극”이라는 박 연출가는 “이런 연극을 블랙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며 1탄 ‘신발’, 2탄인 ‘이혈’에 이어 ‘집을 떠나며‘가 3탄이라고 한다. 다만 ’집을 떠나며‘는 후불제가 아닌 예매 가능한 선불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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