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저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2018, 사람과사상사)

이정훈 저 <주체사상 에세이>는 사실상 주체사상 전반을 다루고 있다. <주체사상 에세이> 1장 6에서는 철학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로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분기점’을 다루고 있다.

철학의 근본문제를 존재와 사유, 즉 ‘물질과 의식’ 문제로 다룬 것은 엥겔스의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1888)이 되겠다. 이런 식으로 철학의 근본문제를 다룬 것은 <공산당 선언> 발표를 전후한 1848년, 맑스주의 철학이 성립한 지 근 40년 만의 일이다.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전에는 맑스와 엥겔스가 유물론 입장에서 관념론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는 그 이전부터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의식 문제로 다루었으나, 책으로 정식화한 것이 엥겔스의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든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분류되겠다. 그래서 철학의 근본문제는 ‘물질이 먼저냐? 의식이 먼저냐?’의 문제가 된다. 물질과 의식문제는 철학에서만 대립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내에서 대립하는 두 계급간의 투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세상이 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물질적 조건이 변하는 것을 원할 것이고, 기득권자들은 특권을 누리는 세상이 변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즉 물질의 조건이 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물질의 선차성을 주장하는 유물론 입장에 설 것이고 세상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고통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식으로 의식의 선차성이나 유심론을 주장할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 세계관은 계급적이고 당파적인 성격을 갖는다 하겠다. 즉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은 본질적으로 사회 계급투쟁의 반영이 된다. 인간의 사유와 인식은 자연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절대자에 대한 관념론이 사라지면서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주관론에서 객관론으로, 유심론에서 유물론으로 진화 발전하여왔다고 한다.

철학의 근본문제가 제국주의 이전시대, 즉 자본주의 축적시기에는 자연과학의 발달로 중세 신학을 비판하는데 역점을 두며 사상싸움의 대상이 중세신학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의 <주체사상 에세이> 에 의하면 마르크스 당시 철학의 근본문제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후, 자본주의 최후단계라는 제국주의 이후, 사람들의 근본문제는 어떻게 제국주의를 타도하느냐? 특히 제3세계 식민지 민족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제국주의 압제에서 해방돼 민족해방을 쟁취하고 계급해방, 즉 민족해방과 노동해방 두 가지 문제라는 근본적 인간해방 문제를 떠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싸움에서는 철학의 근본문제도 중세신학과의 대결이 아니라, 즉 세계관에서 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이 아니라, 당연히 제국주의와의 싸움에서 실천과 주체 문제가 제기된다 하겠다. 즉 철학에서 실천의 문제가 중시되며 ‘누가 실천하느냐?’ 주체의 문제가 논의되며, 실천 주체는 사람이라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실천주체가 사람문제로 되기에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사람의 본질에 대해 논쟁을 하게 되며, 사람의 본질에 대한 논쟁에서, 그 결론은 사람은 자주적 존재며 창조적 존재며 목적의식적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사유와 인식은 자연과학의 발달로 신학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변해왔듯, 미‧영‧프 서구 제국주의 압제를 받는 피억압 민족들의 조건을 반영하여 철학사상의 근본문제가 관념론과 유물론의 쟁투가 아니라, 제3세계 식민지 인민들이라는 ‘사람’ 주체와 제국주의 제 세력이라는 ‘세계’와의 싸움문제가 철학의 근본문제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정리 요약하면, 제국주의 이전시대 철학의 근본문제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싸움이며, 제국주의 시대 이후의 철학싸움의 문제는 식민지 ‘사람’들과 제국주의 ‘세계’와의 싸움으로 철학사상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즉 이런 세계사적 조건으로 하여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근본문제는 ‘물질과 의식’ 문제에서 ‘사람주체와 세계’의 문제로 된다는 것이다. 

철학의 근본문제에 있어서 ‘사람주체와 세계’ 문제로의 전환은 철학발전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서, ‘물질–의식’ 문제에서 물질의 선차성이라는 유물론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철학의 근본문제를 ‘사람과 세계’의 문제로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시대가 변하면 철학의 사유인식도 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제국주의 약탈전쟁 시대에는 제국주의 해방에 맞는 시대의 철학적 요구에 응답하여 철학도 변할 것이다.

북의 주장에 의하면, 철학의 근본문제가 ‘물질-의식’ 문제에서 ‘사람-세계’ 문제로의 전환배경은 인민대중의 대중적 진출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1, 2차 제국주의전쟁 이후, 전세계적 규모에서 제3세계 인민들이 민족해방의 주체로 나서는 시대이기에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제국주의 시대에 혁명 주인으로서 세계인민, 즉 사람이 주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철학의 근본문제가 질적으로 발전 전환하였다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 표현하면 ‘세계’를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주체는 누구인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질-의식’ 문제에서 사람‘주체’와 ‘세계’해방 문제를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소련, 동구, 중국에서도 철학논쟁이 ‘사람과 세계’ 문제로 지속되어왔다고 한다. 소련에서는 1950~60년대 토대-상부구조 논쟁에서 상부구조에 인간의 의식문제를 집어넣으면서 고르바초프 시대까지 역사실천 주체로서 사람의 문제를 논쟁해오던 중 소련사회주의는 막을 내렸다. 동구 역시 마찬가지로, 동독의 자이델은 ‘물질-의식’ 문제에서 자연변증법 요소를 소거하고 물질-의식 문제를 ‘객체-주체’ 변증법으로 환원하면서, 물질 대신에 실천이 철학의 중심이라며 목적의식적 주관주의로 빠졌다고 한다. 유물론에서 물질이 빠지면 유물변증법이 아닌 것이 되고, 실천 문제를 집어넣으면 인간의식과 실천문제만 남기에 자연변증법 문제가 소거되는 것이다. 반면 코징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사회적 실천과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며, 철학은 실천적으로 해답을 주어야 한다면서 ‘물질-의식’ 문제를 ‘물질-의식-실천’ 3자의 문제로 나열하며 절충적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논의를 통하여 동구 철학계에서도 철학의 근본문제로 인간의 지위와 역할 문제가 맑스주의 철학의 근본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에서도 이런 논쟁은 있었다. 북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에서 차지하는 사람의 지위와 역할 문제에 대하여, 즉 사람-객관세계의 관계문제가 주체사상에서 철학의 근본문제로 정식화된 것은 1930년 김일성이 카륜에서 행한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사람주체 문제를 주체사상의 지도원칙으로 처음 제기하면서였다고 한다. 당시 항일투쟁의 역사적 상황은 항일 민족주의세력간의 파벌싸움과 사회주의 좌파세력들간의 파벌싸움에 대한 비판으로써, 새세대 사회주의자들은 ‘반제항일 반봉건’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사람을 내세우는 주체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42년 뒤인 1972년 김일성은 <우리당의 주체사상과 공화국정부의 대내외정책에 대하여> 소논문에서 철학의 근본원리로 ‘사람-세계’ 문제를 최초 정식화했다고 한다. 즉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기초”라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74년 김정일은 <주체철학 이해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소논문에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로서 철학의 근본문제가 최초로 정식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주체사상은 철학대회 논쟁과 논문 발표를 통하여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물질-의식’ 문제가 민족해방과 인간해방을 쟁취해야 하는 세계 민중의 요구를 반영하여 ‘사람-세계’ 문제로 전환되었다고, 저자는 <주체사상 에세이>에서 설명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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