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조선산업 구조조정, 그것이 알고싶다(3)
“구조조정이라 쓰고 정리해고라 읽는다.” 지난 4월26일 정부가 발표한 ‘기업 구조조정 추진 계획’에 대한 노동계의 반응이다. 법률적 의미를 보면, 구조조정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공정거래법 제10조)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인력감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위기가 발생하면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관행은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부터 생겼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이유로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을 때’ 정리해고 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악했고, 그래서 기업은 경영위기를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늘려왔다.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그랬고, 2016년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들은 위기의 원인에 대해 노동자들이 납득할만한 진단과 분석은 내놓지 않는다.
현재 조선산업의 위기가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기업의 부실경영에서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관성처럼 또 일자리를 줄여 노동자를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해 위기를 넘기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엔 문제가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인다.
숙련노동 담보돼야 조선산업 유지
허민영 경성대 교수(경제학)는 지난달 1일 열린 ‘조선소 위기와 대량해고, 무엇을 할 것인가?’란 제목의 긴급토론회에서 “숙련노동력 유지는 조선산업의 필수 요소”라고 강조하곤 “조선산업이 국가와 지역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략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량감원은 사회 전반에 심각할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며 섣부른 인력 조정에 반대했다.
조선산업은 숙련된 전문인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설계와 용접분야 기술자는 적어도 15년 이상의 숙련을 요한다. 이런 인적 자원이 유실되면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조선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 70년대 유럽, 80년대 일본의 구조조정에서 각각 20만과 15만 명이 대량 감원되면서 주요 조선산업 국가에서 급격히 쇠퇴한 바 있다. 사실 조선산업은 하청체제가 고착화되면서 잦은 이직과 업무 이동으로 인해 기술력 축적과 숙련인력 확보가 이미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대량감원까지 겹친다면 조선산업은 인위적인 사양화로 갈 수밖에 없다.
조선, 국가경제 좌우할 전략산업
어떤 산업이건 없애기는 쉬워도 새로 만들어 성장시키기는 어렵다. 가령 7~80년대 부산지역의 전략산업이던 신발산업이 구조조정되면서 무려 17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 뒤 20년 동안 부산지역은 변변한 전략산업 하나 없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부의 ‘사양산업론’이 일시적 위기에 처한 조선산업을 회생이 아닌 퇴출로 유도한다면 그 파장은 어느 한 지역이나 한 개 산업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조선산업은 고용규모, 국가경제 기여도, 철강과 에너지 등 유관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인 국가 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분포된 지역을 보더라도 울산, 창원, 거제, 통영, 순천, 여수, 목포까지 영호남 거의 전 지역에 걸쳐 폭넓게 포진돼 있다.
조선 인력구조조정 사회적 재앙될 것
‘고용 없는 성장’이 일반화된 현실에서 정리해고는 지역사회 전반을 뒤흔들어 놓는다.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평택시가 그랬고, 2011년 한진중공업 구조조정 이후 부산 영도구가 같은 처지를 겪었다. 2013년 중소조선소들이 도미노 폐업에 이르자 58%(334개)가 밀집한 거제와 통영시 일대 경제가 마비되다시피 침체됐다. 하물며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진행된 인력구조조정이 이런 파장을 일으키는데 조선산업 전체에 대량해고 광풍이 분다면, 이것은 위기를 넘어 사회적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인력구조조정은 조선산업뿐 아니라 국가경제의 회생으로 귀결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김성혁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상임원장은 “조선산업 위기의 해법은 ‘노동자 구조조정’이 아니라 ‘재벌 구조조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