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뉴시스]

천지개벽이다. 남북정상이 파격적으로 사흘간 9차례 17시간을 같이하며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논한 것도 처음이지만, 남쪽 대통령이 15만 북쪽 인민 앞에서 공개연설을 하고, 남북정상이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올라 민족의 하나됨을 보여준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정녕 ‘역사에 길이 남을 화폭’이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는 감동적 연설은 비단 북쪽 동포만이 아닌 남과 해외에 있는 우리민족 모두에게 왜 통일이 돼야 하고 통일을 이뤄야만 하는지에 명징한 답변이었다. 평양공동선언은 바로 그 통일을 실현해 나가는 이정표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평양공동선언’의 가장 큰 의의는 ‘판문점 선언’이 제시한 민족자주, 민족자결 원칙에 의거한 통일 실현을 명확한 목표로 재확인하였다는 점이다. 즉 “민족적 화해와 협력, 확고한 평화와 공동번영”의 귀결은 온 겨레의 여망인 통일 실현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이를 문재인 대통령은 15만 북측 인민 앞에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 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고 약속”했다고 확인했다. 이로써 진보적 지식인을 자처하며 일각에서 제기해온 소위 ‘양국체제론’이나 ‘국가연합론’ 등 분단을 고착화시키려는 모든 주장은 설 땅을 잃게 됐다. 이런 주장은 갈라져 살아온 70년을 절대시하고 5천년 역사의 바다를 얕잡아 본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소리이자 분단이데올로기의 변종일 뿐이다.

평양공동선언은 그 서두에서 밝혔듯이 “남북관계를 새로운 높은 단계로 진전시켜 나가기 위한” 판문점선언 이행방안이자 “실천적 대책”이다. 앞서 6.15공동선언과 그의 실천적 대책으로 합의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의 관계와 유사하다. 그럼에도 평양공동선언이 10.4선언과 구별되는 획기적인 점은 처음으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와 더불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설치하여 남북이 일상적으로 사회경제교류와 군사적 적대 종식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한 점과 ▲남북이 먼저 한반도에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이른바 ‘비핵평화지대’와 그 실천적 대책을 합의하고 한반도 핵문제의 직접적 당사자인 미국에게 동의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새로운 구도다. 과거 한미동맹을 축으로 북과 대립했던 구도가 남북이 하나가 돼 미국에 요구하는 구도로 바뀐 것이다. 물론 아직은 공고할 수 없겠지만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변화의 시작이라 할 만하다. 

평양공동선언에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이행합의서)'를 부속합의서로 채택한 것은 남북 군축의 구체적 형태이자 세계에 천명한 “실질적 전쟁위협 제거”란 점에서 역사적, 사변(事變)적이다. 한국전쟁의 직접적 당사자인 남북미 가운데 남북이 먼저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일체의 무력사용을 금지’한다는 불가침, 사실상의 “종전”을 선언한 것이다. 실로 65년만이다. 특히 이런 군사적 적대 종식 합의는 모두 주한미군의 동의는 물론 주한미군이 책임지는 유엔사의 실질적 지위와 권한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사실 남북은 지난 13~14일 열린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이행합의서를 작성했고, 그 과정에 남쪽은 주한미군과 긴밀히 사전협의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미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동맹인 한국과 철저하게 검토 및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유엔사의 지위, 역할 변화가 예상됨에도 미국이 사전에 남북의 합의를 수용했다면 이행합의서는 예상되는 한반도 종전선언이 가져올 군사적 지형변화에 대비한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국내외 모든 언론이 가장 크게 다룬 한반도 비핵화와 핵위협 제거 합의는 ▲남북이 처음으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실천대책을 논의, 합의하였다는 점과 ▲ 남북미 정상간 핫라인을 통해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속도감 있게 진전시켜 나가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거대한 의의를 갖는다. 

주지하듯 남북이 핵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무엇보다 남북관계 발전을 제약하는 핵문제를 남북이 단합해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비핵화만이 아니라 핵위협 제거를 남북이 먼저 논의하고 그 방안을 미국에 요구하는 구도는 ‘우리민족끼리’의 한층 높은 발전이다. 이렇듯 남북은 일정한 검증과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한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한 단계 더 진전된 비핵화 대책과 남북간 전쟁위협 제거라는 평화적 환경 마련에 합의해 미국이 종전선언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 종전선언 실현에 더할 수 없는 명분이다. 

다른 한편 드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교착상태인 북미합의 이행을 위해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미 양쪽을 대표하는 수석협상가”가 돼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미 조야의 반 트럼프-대북적대세력의 방해와 반대를 배제하고 이해를 같이하는 남북미 정상간 핫라인을 통해 합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런 지지가 미 의회와 이른바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문 대통령이 담대하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룬 배경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정상선언이 나오자 적극 지지를 표명하고, 25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문대통령의 설명과 김 국무위원장의 비공개 전달사항을 듣고 2차 북미정상회담을 공식화한 데서 확인된다. 여기엔 물론 김 국무위원장의 연이은 친서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남북 합의에 기초한 남쪽의 설득과 북의 친서가 북미합의 이행의 동력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써 조만간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곧(quiet soon)”열릴 것이라고 공언한 만큼 회담은 대부분 언론이 예측하는 것처럼 10월 중에 개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된다는 것은 미국이 종전선언에 동의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와 더불어 제재 완화, 연락사무소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인가의 여부다. 특히 평양공동선언의 원활한 합의 이행을 위해서는 청와대 발표대로 일정 정도의 제재 완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미 관영 미국의 소리(VOA)는 “평양공동선언, 제재 위반 가능성 내포”(20일), “종전선언은 미국 배제 첫 단추”(22일)등 남북, 북미간 합의 이행에 제동을 걸려는 여러 반대의견을 두드러지게 보도했다. 철도, 도로연결은 물론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모두 제재 위반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미국 내 대북적대세력은 아직 제재 해제(완화)는커녕 종전선언도 동의할 뜻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진전에 따른 단계적 제재해제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지난 6월 대북제재 완화 안보리 성명을 요구한 이래 18일 유엔 안보리에서도 대북제재 해제(완화)를 주장하며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대북제재는 사실상 이미 무너지고 있다. 미국은 중러의 비협조로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는 제재에 계속 매달릴 것이 아니라 북이 취하는 과감한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여 제재를 해제하는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예상컨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2차 북미정상회담과 남북미 종전선언 이후 실현될 것이다. 이미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환영 준비를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소간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대세는 정해졌다. 이제 한반도는 “민족의 화해단합, 평화번영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는” 길에 들어섰다. 천지개벽의 시작이다. 

▲ 문 대통령이 지난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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