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예술로 읽다(32)

▲ 도라지꽃의 오미란;사진 : 동영상 캡처]

4·27 선언 이후 기대와 달리 민간 부문에서 문화예술의 교류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다만 제3국을 경유한 물적 교류와 국제행사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영화’이다. 

지난 7월 15일 저녁 부천시청 앞 야외 상영장에서는 ‘우리집 이야기’가 최초 공개 상영이 되었다. 스무살 아가씨가 고아 7명을 키워내 ‘처녀 어머니’란 칭호를 받은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이 외에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장편영화 ‘불가사리’와 ‘김동무 하늘을 날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교통질서를 잘 지키자요’를 과거와 달리 일반 상영했다. 지난 시기 특수자료로 묶여서 제한적으로 상영한 것과는 달리 최초로 일반 대중들에게 상영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 

9월6일부터 (사)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가 개최하는 申필름예술영화제 개막식에서는 고 신상옥 감독 연출에 고 최은희 주연의 조선영화 ‘소금’이 국내 최초로 공개상영을 했다. 이 영화로 최 배우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 북측은 최초로 조선영화 <춘향전>(1959)이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했으며, <꽃파는처녀>(1972)가 체코에서 열린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9월7일 열린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는 ‘북한영화 특별전: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을 노래하다’를 마련했다. 하와이국제영화제와 루체른국제영화제 등에서 소개된 북미합작 영화인 ‘산너머 마을’과 북측 애니메이션인 ‘향기골에 온 감자’, ‘농부와 얼룩이’, ‘참외를 굴린 개미’, ‘나무할아버지가 준 선물’을 상영했다. 

14차 평양국제영화제 포스터[사진 : 노동신문]

북측에서도 국제영화제가 있다. 북측의 대외 이념이기도 한 ‘자주, 친선, 평화를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87년 9월 1일 개막한 <제1차 쁠럭불(비동맹) 가담 및 기타 발전도상 나라들의 평양영화축전(이하 ‘평양국제영화축전)>이 그것으로, 다분히 정치적인 배경과 의도에서 출발했다. 1983년 10월 2일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의원연맹(IPU) 제70차 총회 불참을 선언한 동기간에 진행된 ‘비동맹 및 개발도상국들의 교육·문화장관 회의’ 평양 합의이기 때문이다. 이후 1986년 9월 제8차 비동맹정상회의에서 평양 개최를 결정했다. 

1987년 9월 1일에 시작한 제1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는 예술영화 46편, 기록영화 42편, 만화영화 22편이 출품되었다. 예술영화 부문에서는 북측의 <도라지꽃>이 영예의 ‘횃불금상’을, 리비아의 <파편>과 이집트의 <죄없는 사람>이 ‘횃불은상’을 수상하였다. <도적을 쳐부신 소년>이 ‘만화영화 부문’ 최우수상을, 기록영화 <조선의 사시절>이 기술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은 살펴보면 예술영화 부문은 이승환 영화인동맹 부위원장이자 영화작품국가심의위원회 위원장이, 단편 및 만화영화 부문은 이하규 과학교육영화촬영소 총장이 맡았다.

여기서 탄생한 스타가 바로 최우수 여자배우상을 수상한 오미란이다. 북측 최고의 인기 여배우이자 인민배우인 오미란은 특히 고향이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으로 알려져 남측에서도 주목을 끌기도 했다. 본인은 평양에서 출생을 했지만 인민배우이기도 한 부친 오향문이 전곡 출신으로, 한국 전쟁 시기 북행한 후, 국립연극단과 조선번역영화제작단 등에서 연극배우 겸 화술배우(성우)로 활동을 하였다. 1992년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를 받고 2000년 10월 사망했다. 

‘소박하며 진실하고 화술이 여성적’이라고 평가받은 오미란(1954~2006)은 1972년 평양예술단 무용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 조선4.25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자리를 옮긴 후 1980년 <축포가 오른다>의 주인공으로 데뷔했다. 1984년 ‘노력영웅’과 ‘공훈배우’의 칭호를 받았고, 1987년 ‘인민배우’가 되었다. 대표작은 <도라지꽃> 외에 <생의 흔적> <민족과 운명: 6~10부> 등이 있다. 

1990년 9월에 평양국제영화회관에서 열린 제2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의 마지막 날 시상식에서는  이란영화 <행복의 작은새>가 예술영화 부문에서 횃불금상을 수상했다. 기록영화 부문에서는 임수경의 북측 활동을 담은 <통일의 꽃>이 횃불금상과 촬영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오미란은 1차에 이어 2차에서도 <생의 흔적>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제3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은 1992년 9월 6일에 열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바로 불멸의 영화로 칭송되고 있는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이 예술영화 부문에서 횃불금상을 받은 것이다. 이 작품은 1992년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50회 생일을 기념해 제작이 되었다. 시리즈의 1부와 2부에 해당하는 최덕신을 다룬 작품으로, “개인의 운명은 결국 민족의 운명 속에 귀속 된다”는 점을 모티브로 하였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영화제는 이어져 4차 5차 행사는 계속되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해에도 제4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은 9월 26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렸다. 지도자를 추모하는 분위기에서 개최된 영화제에서 북측은 역대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예술영화 부문에서 <고마운 처녀>의 김경애가 연기상을, 기록영화 부문에서 <평양의 사계절>이 촬영상을 받는 데 그쳤다. 1996년 9월16일부터 24일까지 개최한 제5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는, <그는 오늘도 대오에 서있다>가 기록영화 부문 횃불금상과 연출상을 수상했다.  

제6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은 1998년 9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렸다. 여기서 북측은 <먼 후날의 나의 모습>으로 예술영화 부문에서 횃불금상과 여자배우연기상을, <천하제일봉>으로 기록영화 부문’에서 횃불금상과 촬영상을 받아 영화제 개최국으로서의 자존심을 만회하였다. 영화제 직전인 8월31일 광명성 1호를 발사하고, 9월5일 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제를 폐지하면서 ‘김정일 시대“를 축하하는 의미가 강했다. 

▲ 15차 평양국제영화제 포스터[사진 : 조선의 오늘]

2000년 9월 13일부터 21일까지 열린 7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은 지난 시기의 고난을 극복하고, 특히 6.15 공동선언의 분위기 등 대외관계의 순풍에 힘입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였다. 출품 작 수도 대폭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학교>, <남자는 괴로워> 등 6편의 일본영화가 최초로 상영이 되었다. 횃불금상은 이란영화 <잃어버린 사랑>에 돌아갔지만, 북측은 재일조선인의 차별을 다룬 <사랑의 대지>가 여우주연상과 심사위원회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제7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함으로써 체육인 최초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정성옥 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조선의 훌륭한 딸>이 기록 및 단편영화 부문에서 영화문학상을 받았다.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된 2002년에도 북은 예외없이 8차 영화제를 개최했다. 이 해에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초연하기도 해서 체제의 건재함을 만방에 알리도 했다. 러시아영화인 <별>이 횃불금상을 받았고, 북측은 <살아있는 영혼들>로 횃불은상과 남자배우연기상을 수상했다. 이색적인 것은 특별상을 받은 영국의 기록영화 <삶의 경기 : The game of their lives>로, 1966년 월드컵대회에서 8강 신화를 달성한 북측의 축구를 소재로 하고 있다. 대니얼 고든이 제작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는 <천리마축구단>으로 소개가 되었으며, 북측에서 처음으로 촬영된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로 의의가 있다.

북의 영화사적으로 주목할 것은 <살아있는 영혼들>이다. 광복을 맞아 귀국길에 오른 5천명의 강제 징용 노동자들을 일본이 폭침으로 고의 수장시킨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의 침몰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이제까지 제작된 조선영화 중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들었으며, 컴퓨터그래픽(CG)을 본격적으로 이용한 최초의 영화이고, ‘반일’을 주제로 하면서도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을 소재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2002년 4월 개봉 당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후 평양국제영화축전은 2006년 영화상에서 ‘횃불’이라는 명칭이 사라진 것을 제외하고는 국제영화제의 면모를 유지하면서 순항을 하고 있다. 짝수년도에 열리는 격년제로 양각도에 있는 국제영화회관을 본 상영관으로 하여 인민문화궁전, 대동문영화관, 개선영화관 등에서 열리고 있다. 8차 영화제 이후 금상을 받은 작품은 아래와 같다.

2004년 제9차 <어머니의 딸, 중국>, 2006년 제10차 <나폴리 학교, 독일>. 2008년 제11차 <집결호, 중국>, 2010년 제12차 <걸어서 학교로 가다, 중국>, 2012년 제13차 <큰 희망, 독일>, 2014년 제14차 <나의 아름다운 나라, 독일>, 그리고 2016년 제15차 영화제에서 북측은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되었던 <우리집이야기>로 최우수 작품상인 금상을 거머쥐었다.

조선영화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바로 스토리이며, 이것을 담은 ‘영화문학’(시나리오)을 기초로 하여 영화 제작이 이루어진다. 김승구-백인준-리종순-리춘구로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영화문학은 작품 창작계획에 따라 각 영화촬영소에 소속된 영화문학창작실에서 창작하며, 작품 심의와 선정은 각 촬영소의 심의위원회에서 이루어지는데, 해당 촬영소의 부총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연출대본은 감독과 촬영감독, 미술가, 작곡가 등 주요 예술가들이 참여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채택이 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감독은 제작 스텝을 구성하고 제작을 한다. 

완성대본은 해당 촬영소에서 당중앙위원회에 영화의 첫 필름을 보낼 때 함께 보낸다. 이것은 마지막 수정을 위한 편집을 고려한 조치이다. 완성대본을 만드는 책임은 부연출가가 맡는다. 이와 같은 단계를 거친 뒤에도 촬영소에서는 영화를 프린트해서 먼저 내부 시사회를 하고 이어 다른 촬영소와 문화성 영화관리국에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영화문학창작사는 영화대본을 전문적으로 창작하는 기관으로 1948년 6월 '시나리오창작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주제의 대본을 창작해 왔는데, 한국 전쟁시기에는 <소년빨치산> 등을, 천리마운동 시기에는 <뜨거운 이름> 등을 창작했다. 최근에는 선군과 강성을 ‘종자’로 한 예술영화 <이어가는 참된 삶>, <한 장의 사진> 등을 선 보였다. 대표작으로 1992년부터 시리즈물로 제작이 이어오고 있는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이다.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 가사를 중시하는 북측 경향에 따라 ‘가사창작실’을 따로 두어 OST 제작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창작실의 초연작품으로는 영화 <한 의학자의 길>의 주제곡인 ‘석류꽃의 노래’로 가수 남희가 불렀다고 알려졌다. 주요 작품으로는 `동지애의 노래`(영화 `조선의 별`), `나는 알았네`(영화 `월미도`),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영화 `우리를 기다리지 말라`) 등이 있다.

대표적인 작사가로는 전동우가 있다. 함경남도 금야군의 빈농에서 출생한 그는, 195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마치고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 ‘청춘’(1961년) 발간 등 200여 편의 서정시를 발표했다. 시인이 작사하는 것이 일반화 된 북측에서 그 역시 ‘나의 조국’ ‘종다리’ 등의 명작을 남겼다. 1972년 조선영화문화창작사 가사창작실 실장을 맡아 ‘기쁨의 노래안고 함께 가리라’(1976) 등 영화주제가와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1989) 등을 작사했다. 쉬우면서도 깊은 철학을 담은 그의 작풍은 서정성이 풍부해서 널리 사랑을 받았다. 1986년 김일성상 계관인을 수여한 그는 1999년 10월 애국열사릉에 영면하였다.

▲ 16차 평양국제영화제 포스터[사진 : 노동신문]

영화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으로는 ‘평양연극영화대학’이 있다. 1953년 11월1일 평양종합예술학교로 문을 연 이 학교는 56년 8월 `국립연극학교`로, 59년 9월 `평양연극영화대학`으로, 72년에는 `평양영화대학`으로 교명을 달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기, 연출, 이론 등 관련학과 외에 2008년부터는 특수촬영 분야 전문가를 양성하는 화상기교학과, 영화음향학과, 영상가공학과 등을 신설했다. 산하에 연극영화예술연구소와 박사원(대학원), 청소년영화창작단 등을 두고 있다. 북측 영화계 인사 대부분이 이 학교 출신으로, <꽃파는 처녀>의 홍영희, <도라지꽃>의 오미란 등의 스타를 배출하였다. 

2018년 제16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은 9월 19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평양특별시 태송군 영흥2동에 소재한 영화제조직위원회(www.korfilm.com.kp) 안내에 따르면, 영화제 시상은 장편영화 경쟁, 기록영화와 단편 및 애니메이션 경쟁, 조직위원회 특별상, 국제심사위원회상, 기타 특별상으로 구분이 되었다. 출품작의 경우 동영상 자료는 HD 기준으로 하여 avi, mp4, mkv 중 택일한 파일로 제출하면 된다. 영화제 측에서는 “독립, 평화와 우정과 함께 세계 영화 제작자들 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영화예술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이번 행사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4.27선언의 실천적 이행을 위해 남측의 관련 단체에서도 영화제 참관을 신청하였으나, 역시나 참관은 실현되지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7월 문성근 배우를 공동위원장으로 한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를 발족해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영화교류를 의제화 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부천국제영화제 측도 참관 신청과 지속적인 교류를 제안했고, 부산국제영화제는 참관에 더해 10월 부산에 북측 영화인 초청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영진위에서는 북측에 남아 있다고 알려진 이만희 감독의 걸작 <만추>(1966) 등의 지난 영화 프린트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사업을 제안하였다. 

2019년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대중적 전파력이 강한 영화 부문의 교류가 순항하기를 소망한다.  


나의 사랑 나의 행복 - 예술영화 <나의 행복>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W-Y8itaSqD4

봄을 먼저 알리는 꽃이 되리라 - 예술영화 <열네번째 겨울>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YYoF-5MB2jk

기쁨의 노래 안고 함께 가리라 -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G0e8JmAL9Wk

아, 내 조국 - 예술영화 <은비녀>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2XhPjXcoxxo

동지애의 노래 - 예술영화 <조선의 별>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VSRtw0pfG5Q

사랑의 별 - 예술영화 <봄날의 눈석이>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lW_3JCnXtVs

예술영화 <평양날파람> 
https://www.youtube.com/watch?v=6X7TrJnyH6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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