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경제적 관점만의 통일논의는 미국식 자본주의 관점

언론협동조합 담쟁이의 이사장이자 향린교회 담임목사인 조헌정 현장언론 민플러스 발행인의 칼럼을 싣는다. 조 발행인은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체류 중인데 최근 쿠바를 여행하고 있다. 이 땅의 정의와 평화, 생명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조 발행인의 칼럼은 매월 초에 게재된다.[편집자]
▲ 쿠바 산타클라라에 있는 체 게바라 기념관[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한달 최저 생계비 1만원. 이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논쟁 중인 노동자 한 시간 최저 임금을 잘못 말한 것이 아니다. 쿠바 정부가 정한 노동자 최저 생계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루도 아니고 한달이다. 의사의 한달 봉급은 6만원.

난 지금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13일째 민박 중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가장 싼 집이다. 처음에는 너무 누추해서 옮길까도 했지만, 독방에 아침저녁을 주면서 하루 2만5천원이라 이보다 더 좋은 집을 찾기는 힘들 것 같아 계속 머물고 있다. 난 스페니쉬를 못하고 주인 아낙네는 영어를 못해 소통에 어려움이 많지만,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음식을 잘 해주려고 애를 쓴다. 저녁에는 매번 다른 메뉴를 만들어준다. 식재료는 같다. 쌀밥에 고기이다. 쌀밥은 쌀밥이로되 우리가 먹는 쌀이 아닌 불면 날아가는 쌀이다. 그런데 이것도 살짝 덜 익혀서 준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니 그것도 쌀이 씹히니까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고기는 많이 준다. 돼지고기 혹은 닭고기로. 굽거나 양념을 해서 주는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너무 짜게 먹는다는 것이다. 날이 더우니 소금 섭취가 많은 것이다. 아침에 달걀 프라이도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주어 지금은 내가 직접 해먹는다.

그리고 저녁을 9시가 넘어 먹는다. 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이곳 사람들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자정이 훨씬 넘어도 길거리에서 사람들은 계속 떠든다. 자동차 소리에 사람들 떠드는 소리에 잠 못 이룰 때도 있지만, 그런대로 견디면서 지내고 있다. 밤늦게 고기를 먹고 자야 하니 너무 부담이 되어 이제는 아주 조금 먹거나 아예 먹지를 않는다.

의사의 한 달 봉급 6만원

교회의 안식년을 맞아 첫 번째로 찾은 나라이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로 유명한 나라이기에 한번 오고 싶었던 나라이다. 혁명의 기운을 배울까 하여 왔고, 오랜 기간 사회주의 국가로서 미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다가 최근 외교관계를 새로이 하였기에 북조선의 미래를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여겨 찾았다.

물론 며칠 머물고서야 어떻게 쿠바 사회의 내부를 알 수 있겠나? 그저 내가 느끼는 바를 좀 써볼까 한다. 스페니쉬를 못하니 민박집에서 만난 영어를 할 줄 아는 멕시코 친구들과 함께 다니곤 하였다. 물론 이 친구들은 며칠 있다가 간다.

한달 생계비 만원, 물론 노동자나 공무원들은 이것 가지고는 살 수 없어 과외로 다른 일들을 하거나 아니면 택시 운전수가 말하는 대로 부정한 방식으로 부수입을 올린다. 예를 들면 정부 소유의 차에서 기름을 빼서 팔아먹거나 또는 뇌물을 받아먹거나 쿠바 사회주의의 실패를 유감없이 비판하는 운전사의 얘기만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으나 미국의 스페니쉬 케이블 방송이 불법으로 성행하고 인터넷을 통해 서구의 실상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발을 하면서 만난 한 이발사(매우 드물게 그는 영어를 좀 했다. 반미국가라 영어를 아예 배우지 않는 것 같다. 21살인 민박집 아들은 컴퓨터공부를 한다는데, 영어 단어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런데 양키 모자와 셔츠를 입고 다닌다.)는 쿠바의 사회주의가 이념으로는 옳으나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고 그렇다고 미국의 자본주의는 인간을 하나의 기계 부품으로 보기에 이 또한 잘못된 체제라고 비판한다. 제3의 길로 북유럽의 사회복지주의 체제를 주장한다. 이발사가 우리나라의 웬만한 지식인보다 비판적 사고가 높다.

한달 만원이라고 하지만, 여기 사람들 몸이 마른 사람들은 없다. 오히려 서구 사람 못지않게 비정상적으로 살찐 사람들이 많다. 다른 영어는 몰라도 다이어트 단어는 안다. 우리 주인 아낙네도 살이 너무 쪄서 아침마다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을 한다. 가서 보니 운동기구들이 모두 기능은 비슷한데, 기구는 자기들 식대로 철근덩어리를 갖고 두들겨서 만들었다.

국가가 주택, 교육, 의료 등 보장

여기 굴러다니는 차들 대부분은 50년대 형이다. 내부는 일제, 소련제, 중국제 부품들을 사용하여 조립형이다. 공기정화법이 없다보니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은 엄청나다. 차가 많지 않아 다행이지 차가 많다면 이 또한 큰 문제가 되겠다. 물론 바닷가라 바람이 항상 부니까 매연이 곧 사라진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해 뭐든지 자가 생산을 해야 했으니 손재주가 많은 나라이다. 나도 70년 된 차들을 몇 번 타보았는데, 택시로 제일 오래된 차는 1919년형이란다. 10년만 되어도 고물로 내다버리는 우리나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고물차들 있으면 어딘가에 모셔두고 손질을 해두시라. 한 20년 후면 꽤 값이 나갈 테니까.

노동자 공무원 한달 생계비 만원이라고 할 때, 우리식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정부가 생활에 필요한 기본은 다 주기 때문이다. 주택, 교육, 의료, 최소한의 먹을 양식, 아이를 출산하면 우유를 비롯한 경비 보조. 우리나라처럼 돈 걱정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산아제한을 하는지 아이를 많이 낳지는 않는 것 같다. 민박 주인도 아들 하나이다.

가끔 여행객들이 지나갈 때 아이 우유를 사기 위해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여인들이 있다. 쿠바 친구가 말하길 거짓이란다. 우유는 정부가 준단다. 그 여인은 다른 것을 구입하기 위해 저렇게 말한단다.

지금 쿠바 사회는 요동치고 있다. 우리나라 6, 70년대 농촌에 티브이가 들어오면서 광고와 도시의 부잣집 가정이 배경이 되는 연속극을 보면서 도시로 공장으로 몰려들었듯이 여기에 젊은이들도 몰려들고 있는데, 일할 곳은 없다.

대낮에 도시 이곳저곳 골목을 거닐다 보면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냥 골목에 나앉아 있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흔히 우리는 한 나라의 경제를 그 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이나 한달에 버는 소득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한달 만원의 월급. 이것으로 평가한다면 이건 하루 1불의 가난한 아프리카 아시아의 나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엄청난 가난이다. 그러나 아까 말한 국가가 제공하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교육을 받은 경제학자들이 사회주의 국가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어떻게 계산할까? 난 경제학자가 아니니 잘 모른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는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수치는 엄청 달라질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 일인당 국민소득 계산법

주택으로 본다면 이 정도 아파트라면 낡고 좁으니 한 1억 정도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먹을 것 입을 것 또한 이렇게 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가 없다. 멀리 가야할 필요가 없으니 자동차가 굳이 필요 없고 교통비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우리가 따로 내야하는 전기세 물세 하수세 등등도 거의 없거나 매우 미미하다. 그래서 전기나 가스를 절약하는 모습이 보기 어렵다. 이런 것들은 생산이 아니니 수치에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쿠바의 의료 수준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 2년 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이곳에 와서 암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피델 카스트로 전 대통령도 그 나이에 수술을 여러 번 받고도 여전히 생존해 있는 것을 보면 의료수준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전에 어디선가 본 바에 의하면 쿠바의 의술은 서구식에 자신들의 방식이 결합된 형태이다.

그리고 아마도 체 게바라의 영향이겠지만, 의사들을 많이 양산해서 가까운 남미에 파송을 많이 하여 돕고 있다. 일종의 의료국가봉사자들이다. 몇 년 전 에볼라가 서부 아프리카에 창궐할 때, 우리나라에서 의료팀을 보낸다고 뒤늦게 법석을 떨었고, 그래서 몇 달간 다녀왔다.(그때 자원하여 다녀온 의사 한분이 향린교회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무슨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언론에 떠들었을 때, 이미 그곳에는 쿠바 의사 수십 명이 목숨을 걸고 에볼라와 싸우고 있었다. 미국 주도의 서구 언론은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었다. 지금 의료가 열악한 나라에 대한 쿠바의 의사 파견은 유명하다. 한 2천명이 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난 이런 것들이 사회주의의 장점이라고 여긴다. 북조선도 이런 점을 도용하여 많은 의사들을 길러내어 세계의 가난한 나라 곳곳에 파송함으로 민족 자부심을 키울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한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지만, 이미 돈 버는 일에 익숙해 있어 의사들의 지망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여간 국가가 제공하는 세계 수준의 공짜 의료비는 어떻게 계산해서 일인당 국민소득에 포함할 수 있을까? 기준을 미국인 부자들이 지출하는 평균 의료비로 계산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인들의 중산층 반이 의료보험이 없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한달 의료보험비 500불만 잡아도 1년이면 6000불, 웬만한 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보다 높다.

자본주의 경제 방식대로 세계 각국의 경제를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니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이라고 한다. 어떤 대통령은 이것을 3만불, 4만불로 올려주겠다고 거짓말을 해서 당선이 되기도 했지만, 현재 2만불이면 2200만원이다. 모든 국민이 아이든 노인이든 일인당 2200만원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면 평균 4인 가족 노동자, 노동자의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6인 가족이 된다. 4인 가족으로만 잡아도 1년에 평균 9천만 원씩은 벌어야 우리나라 경제 통계가 말하는 수치에 맞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불, 돈은 다 어디로?

나도 여기에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교인들 평균을 보면 여기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수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돈은 다 어디로 가있는 것인가? 소수의 부자들이 너무 많이 갖고 있고 또 벌긴 벌어도 무기 구입비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본주의식 경제수치 숫자놀음에 우리가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

앞으로 쿠바의 사회주의 정책이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와 만나 어떤 형태로 전개될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간 사회주의 교육을 받았기에 미국식 개인 욕망에 사로잡힌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심은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어떻게 각기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실천할는지가 관건이다.

하루는 내 나이 또래의 민박집 주인 아버지가 냄새를 피우며 하루 종일 통돼지를 오븐에 굽고 있다. 몇 시간이 지나 잘 익은 부분을 도려내더니 접시에 담는다. 그리고는 바로 옆집에 가져다준다. 그러자 얼마 있지 않아 옆집에서 요리 한 접시를 답례로 준다. 예전 우리나라 농촌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그러나 더 부자가 된 지금 이런 인정어린 인간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의 한 으슥한 골목길에서 누가 밤중에 쓰러져 있다고 할 때, 도와주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몇 년 전 뉴욕 브루클린에서 총격 사고가 있어 한 사람이 피를 흘리고 쓰러졌는데, 이 모습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았는데, 한 사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화를 걸면 증인으로 나서야 하는 게 귀찮을 수도 있고 때로 두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 가는데, 자기가 직접 내려와 도와주지는 못해도 경찰이나 병원에 전화 한 통하지 않는 세상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실상이다.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미국인가? 그렇다면 큰일이다. 아니 이미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살국가, 태어나면서부터 형제국가를 죽여 할 원수로 알고 살아온 나라. 지금도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형제나 자매가 제3국에서 만나 포옹을 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하는 나라이니 아무리 돈이 많은들 정신이 돌지 않겠는가?

인간 해방과 자유 추구, 물질로만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할까? 행복해지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할까? 거리에서 마주치는 평균의 쿠바인과 한국인의 얼굴에서 풍기는 삶의 만족도는 내가 그냥 보아도 쿠바인들이 훨씬 높아 보인다. 여러분이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천천히 살펴보라. 난 자주 그렇게 한다. 열심히 핸드폰은 들여다보고 있지만, 그 얼굴에 행복한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들다. 삶에 찌든 모습이 대부분이다.

삶은 누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누리지 못한다면 언제 누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미루는 것은 과연 현명한 일일까? 그 행복은 기다려주는 것일까?

사람들은 돈을 벌어 은퇴하면 외국 여행을 가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돈이 그렇게 생각만큼 벌리지도 않지만, 돈이 있어도 나이가 들면 여행에 대한 불편과 두려움이 많아져 포기하게 되고 잘못하여 병이라도 나면 여행은커녕 모은 돈은 모두 의료비로 나간다. 아니면 자식들 뒷바라지로 나가든지.

쿠바 여행 오는 멕시코 친구들 대부분 가난하다. 한 50대 친구는 자기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는 노동자인데, 지금까지 가족들 위해 고생했기에 이번에는 혼자 놀러 왔단다. 그러면서 싸구려 민박집에 와서도 맥주도 음식도 잘 사서 나눈다. 쿠바는 주로 스페인과 남미에서 온 여행객들이 많은데, 중산층 이상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없더라도 현재를 즐기면서 사는 멕시코 남미 그리고 쿠바인들이 현명할까? 아니면 우리와 같이 목표를 세우고 미래를 향해 계속 달려가는 것이 현명할까?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갖고 싶고 먹고 싶고 입고 싶고 바르고 싶은 이 욕망을 절제함으로 얻는 이익은 없을까? 왜 경제학자들의 논리에 쫓아 욕망을 키우기만 하려고 하는 것일까? 가습기 세척제 마냥 그게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그 말이 맞는 것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자본가들의 이익 추구에 이용만 당하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가습기 세균제거 남한에서만 통했다면 자본주의 이전에 남한인들이 갖고 있는 의식의 근본적인 결함은 무엇일까? 오늘 우리에게는 남한 사회 자체에 대한 냉철한 비판의식이 필요한 시대이다.

인간 해방과 자유 추구, 과연 이런 것들이 물질로만 가능한가? 오히려 욕망을 절제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방식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난 지금 쿠바에서 이런 물음을 묻고 있다. 그리고 이 물음은 앞으로의 남북통일의 과제를 다룰 때에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남쪽에서 진행되는 경제적 관점만의 통일논의는 인간의 고유한 감정을 수치로 환산하고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만 인식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관점이다. 인간을 삶의 주체로 보는 철학적 종교적 관점이 함께 고려되지 않는다면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얼마가지 않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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