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여의도 농민대회 주요 요구사항들에 담긴 뜻

농민의길과 (사)전국쌀생산자협회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백남기 정신 계승, 문재인 정부 농정 규탄 전국농민대회’를 열었다. 가을 추수철을 맞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왜 농민들은 일손을 놓고 여의도에 집결한 걸까? 

▲ 10일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가한 피켓을 든 농민[사진 : 한국농정신문]

밥 한 공기, 300원!

여의도 농민대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구호는 “밥 한 공기, 300원”이었다. 현재는 200원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밥 한 공기가 커피값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올해는 5년마다 한 번씩 쌀 목표가격을 정하는 해이며,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정부는 올해 남은 기간 안에 2018∼2022년산(産) 쌀에 적용할 목표가격을 정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쌀 목표가격이란 생산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는 수매 가격과의 차이의 85%를 정부가 변동직불금으로 농가에 보전해주는데, 그 기준가격을 말한다. 정부는 수확기 산지 쌀값이 목표가격 이하로 떨어졌을 때 목표가격과 산지 쌀값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의 85% 범위에서 이미 지급한 고정직불금을 빼고 변동직불금을 따로 지급한다. 

* 변동직불금 = (목표가격 – 산지쌀값) × 0.85 – 고정직불금

김영동 (사)전국쌀생산자협회 회장은 “지난 13년간 쌀 목표 가격은 고작 10.6% 인상됐다. 2017년 수확기 산지 가격은 1997년 가격과 같다”면서 “정권이 네 번 바뀌는 동안 농민은 밥 한 공기 200원으로 버텼다. 이제 밥 한 공기 쌀값을 300원 하자는 거다. 이게 무리한 요구인가”고 따졌다. 

현재 쌀 가격은 18만8000원(80㎏ 기준)이다. 이는 1㎏당 2000원 수준인데 농민단체들은 1㎏당 3000원으로 인상(80㎏ 기준 24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5개월간의 수장 공백 끝에 이개호 신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0일 취임했는데, 연내 정할 쌀 목표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20만원을 넘게 될지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 9월 10일 여의도 농민대회 약 5천여명이 참석했다.

농업판 4대강! 스마트 팜 밸리

이날 “스마트 팜 밸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스마트 팜이란 유리온실 등과 농업생산 시설에 ICT기술을 접목해 농촌에서 융복합 첨단농업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일본 등의 사례가 있고, 스마트 팜을 이용한 청년 농부들의 창업 성공사례도 간간히 소개됐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6년 농식품부와 LG그룹 계열사인 LG CNS가 새만금에 약 76.2ha(23만평) 규모의 대규모 스마트 팜 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해 농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스마트 팜이 농업계와 농민을 주체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특혜와 농촌을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실체가 눈 앞에 드러난 때문이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무산된 스마트 팜 사업을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사업이란 이름 아래 4개의 대규모 스마트 팜 밸리(단지)를 광역도별 조성 방식으로 강행하려는데 있다. 

박흥식 전농 전북도연맹 의장은 “25만 하우스 재배 농가는 지난 3년간, 가격 하락으로 생산비를 건지지 못했다. 그런데 정부는 농민의 동의도 없이 스마트 팜 밸리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이것은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이는 정책이 아니라 다 같이 죽이는 떼 죽임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농민들은 스마트 팜 밸리 조성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금(1개 벨리당 약 1800억 원 이상)을 오히려 현재의 농업 추세대로 중소농을 살리고, 농업계가 주도하는 스마트 팜으로 전환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 연설하고 있는 김순애 전여농 회장

모든 농민에게 농민수당을! 

농민수당도 이날 농민대회의 중요 요구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농민수당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들이 등장했다. 그 결과 농민수당 실시를 결정한 해남군을 비롯해 순천·화순군은 이미 구체적 협의 단계에 들어갔으며 장흥·담양·영광군에선 전농 광전연맹과 정책협약을 맺은 상태이다. 

박형대 민중당 농민위원장(전 전농 정책위원장)은 전남지역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농민수당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보상을 해야한다는 세계적 흐름에 따를 뿐만 아니라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중소농·가족농을 육성해 농업의 붕괴를 막는 특단의 정책, 사람 중심의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농정신문은 지난 9일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상임연구원은 전남도의 예산현황을 바탕으로 농민수당 실현 가능성을 분석한 결과 현재 전남도가 농업계가 요구하는 수준의 농민수당제 시행을 뒷받침할 재정적 여력이 충분하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연구원은 “지난 10년 간 전남 본청 예산 증가율은 59.5%나 되는데 농업예산이 이 증가세를 따르면 약 1500억 원이 추가로 확보된다”고 분석했다. 

전농 광전연맹은 거주지 상권에서만 사용 가능한 ‘지역화폐’ 형태로 월 2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2016년 기준 전남의 농가 수를 15만1059가구로 볼 때 36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전남도에서 절반인 1800억원을 부담할 경우 나머지 절반은 각 시·군이 충분히 나눠서 부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회에서 김순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농민수당이 가구기준이 아니라 모든 농민 개개인에게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가단위로 지급할 경우 가주 대표가 여전히 남성 중심인 조건에서 대다수 농업노동력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 농민들이 소외,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농민조직이 과거 농가당 1명만 가입하다가 복수조합원제를 도입해 오늘에 이른 것처럼 농민수당 역시 지급대상을 모든 농민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농민대회 중에 농민 공연팀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통일 트랙터로, “통일들판 품앗이 운동본부”를 제안 

이날 농민대회에서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전봉준 트랙터’로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렸듯이, 이제는 ‘통일 트랙터’로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자고 뜨겁게 말했다.

박 의장은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데서 개성공단, 금강산, 철도연결이 진척되지 못한 조건에서 농민들 역시 <쌀부터 통일하자!>고 외치며 통일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미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미국이고, 통일당사자인 우리 민족이 갈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미국이라며, 종전선언을 이끌어내고 대북제재 해제하는데 농민들이 앞장서자고 호소했다. 

박 의장은 이어 밥 한 공기 쌀값 문제도, 스마트 팜 밸리 문제도, 농민수당 문제도, 농업예산 문제도 해결방법은 오직 통일농업, 통일 트랙터 운동에 길이 있다면서, ‘남북농민 추수 한마당’을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일 트랙터 품앗이 사업을 위해 “통일트렉터 품앗이 운동본부”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집회 참가 농민들은 “통일 트랙터로 분단의 선을 넘자”, “통일 트랙터로 대북제재 해제하자”는 구호를 연호했다. 

▲ 문재인 정부의 농업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농민대회 참가자들

문재인 정부의 농업정책 근본전환을!

김영재 농민의길 상임대표는 이날 대회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농정을 전면 비판했다. 
김 상임대표는 농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농업, 농민을 짓밟는 수입 농산물을 막아내고 안전하고 새로운 먹거리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 농민들의 희망이라고 전했다. 

또 생산자는 빚더미에 앉고 유통자본만 배불리는 농산물 유통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농업, 농촌에 협동의 정신을 말살하고, 오직 자본의 논리만 판치게 만드는 살농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고, 식량자급율을 높이는 통일농업시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상임대표는 이는 단순히 농민만의 요구가 아니라 먹거리를 지키지 못한 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이라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농업, 농민 무시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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