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백문백답(37)

신자유주의시대 노동자 앞에는 사파티스타나 산디니스타와 차베스, 사회주의와 민중주의 두 길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브라질의 룰라가 나갔던 길입니다.

1) 브라질과 멕시코

브라질은 포르투갈 식민지였으나, 20세기 초반까지 역사적 과정은 다른 라틴 국가와 대개 유사합니다. 16세기 식민지화를 겪고, 19세기 초 독립을 거쳐, 19세기 말에는 자유주의자가 외국자본을 이용해 자원 수출을 시작하였습니다.

점차 유럽 이주민이 들어오고 노동자가 성장하여 사회주의 세력이 대두했습니다. 대공황 시기 1935년 공산당의 봉기가 있었고, 이에 반발하여 1938년 자유주의 군부의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그 뒤는 쿠데타의 연속이었지요.

그 뒤로 지배 군부의 성격에 따라서 정책적으로 자유무역 정책과 보호주의 정책을, 자원 수출과 산업개발을 교대로 실시했어요. 한때(50년대) 브라질은 국가자본주의를 강화하고 보호무역 정책을 실시하며 다른 때(60년대)는 외국자본의 도입을 강화하여 자유무역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국가자본주의로 외채가 증가하면 안정화 계획으로 외국자본을 도입했습니다.

브라질은 20세기 후반의 역사에서 멕시코와 매우 흡사합니다. 멕시코가 이런 과정을 통해 느리게나마 자원수출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발전했듯이 브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라질은 자원수출국이자 동시에 산업국가입니다.

두 나라가 어떻게 산업국가로 들어섰는지는 더 연구해야 할 문제로 보입니다. 저는 두 나라 군부가 미국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고 그 덕분에 보호무역 정책을 실시할 수 있었던 게 주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 브라질 공산당

그 어느 시대나 노동자의 처지는 동일했습니다. 보호무역 시대에는 군부의 억압으로, 자유무역 시대에는 자본의 노골적 착취로 노동자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군부의 지속적인 지배 아래, 절망한 민중 사이에서 저항이 강화되었습니다. 1922년 브라질 공산당이 창당되었습니다. 공산당이 주축이 되어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공산당은 군부의 탄압 아래 분열되었습니다. 1956년 트로츠키파가 당을 장악하자 정통 레닌파는 1962년 분리 독립했습니다(브라질인 공산당). 다시 이 가운데 마오파가 분리되어 1968년 공산주의 혁명당을 창당했습니다.

60년대 마오파는 농촌에서 게릴라전을 펼쳤고 정통파는 도시에서 게릴라전을 펼쳤습니다. 이와 같은 게릴라전은 70년대 초 군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으로 소멸되었습니다. 잔존한 마오주의자는 ‘혁명적 공산당’을 창당했고 레닌파 잔존 세력 역시 ‘브라질 공산당’을 재건하여 1978년경을 전후로 모두 게릴라전을 포기하고 합법운동으로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 영향력은 취약했습니다.

3) 자유노조

80년대 이후 새로운 운동이 출현했습니다. 산업화와 더불어 중산층이 등장해 도시에서 새로운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와 더불어 새로운 민중운동도 출현했습니다. 이 민중운동은 기존의 사회주의 정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자율적인 운동이었습니다.

우선 무토지 농민의 운동이 있었습니다. 3%의 대농장주가 모든 토지를 소유한 현실 속에서 무토지 농민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운동이었다. 이들은 1981년 황폐화된 토지를 자발적으로 점유하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도시에서도 산업화된 지역을 중심으로 기존의 정당 산하 노조로부터 벗어난 자율적인 노동조합이 전개되었습니다. 유럽에 자율노조가 등장하고 폴란드에 바웬사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노조가 등장할 때와 거의 같은 시기죠. 이런 자율적 노동조합 운동은 곧 민주화 이후 정치 참여운동으로 전환했고 이 운동 속에서 룰라가 성장했습니다.

룰라는 1945년 농촌 소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상파울로로 먼저 이주했고 곧 뒤에 그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에게로 왔습니다만, 이때 아버지는 자기의 사촌누이와 다른 살림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룰라와 그 어머니는 내버려졌죠.

룰라는 도시 빈민촌에서 빈곤 속에 살았습니다. 이미 12세 구두닦이로 나섰으며, 간신히 기술을 배워 자동차 부품 공장 프레스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고로 손가락을 절단한 후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75년 그는 금속노동조합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상파울로 주변 자동차 공장 지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노조활동으로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1980년 중산층의 민주화 운동 이후 민중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자는 주장에 따라 노동자당을 결성했습니다. 합법활동을 전개하던 마오주의자가 먼저 노동자당에 결합했습니다.

5) 룰라의 당선

룰라는 1982년 상파울로주의 주지사에 출마했으나 실패했습니다. 1984년 직선제 운동이 전개되자 이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1986년 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었지요. 1988년 민주화가 되면서 새로운 헌법이 제정될 때 그는 신헌법을 반민중적이라고 해서 반대했습니다. 그는 토지개혁과 은행과 광산의 국유화, 외채 디폴트 선언을 주장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아주 강력한 사회주의적 정책을 지지했습니다.

브라질 최초의 민주선거인 1989년 대선에서 그는 노동자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이때 합법활동 중인 레닌파 공산당도 그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좌파의 단결이 이루어졌지요. 하지만 이 선거에서는 자유주의자가 승리했습니다. 87년 12월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된 것과 같습니다.

그는 94년 선거에도 출마했습니다. 이 선거에서는 종속이론가이며 민중주의자인 카르도소가 당선되었으나, 그는 당선된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전환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김영삼의 배반이죠. 이런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나 브라질이나 너무 비슷해서 누군가 뒤에서 이런 민주화 과정을 전반적으로 기획, 조종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002년 선거에서 룰라는 변신했습니다. 그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했어요. 그는 사회주의 정책의 기본인 기업과 은행의 국유화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부통령 후보로 기업가를 선택했습니다. 외채 상환을 공개적으로 약속했으며, 전임 카르도소 정부의 IMF식 안정화 정책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변신의 덕분으로 선거에서 61.3%라는 압도적인 표로 당선되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김대중 정부와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6) 룰라와 김대중

당선 이후 그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속 추진했습니다. 브라질을 신자유주의 국제 분업체제에서 자원수출국보다는 산업국가로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이제 브라질은 자원 가격의 부침에 더는 시달리지 않습니다. 산업개발 덕분에 내적인 축적이 이루어지고, 외채 부담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부의 지출을 부분적으로 확대했습니다. 이것으로 빈민의 상당수를 축소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복지 부담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라틴아메리카처럼 외채 위기에 빠지지는 않았고 복지도 확대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덕분에 그는 2010년 87%의 압도적 표로 재선되었습니다.

브라질 룰라 정부를 보면 우리나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너무나 유사합니다. 민주세력이 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 노동자의 당이 산업개발에 나선다는 것, 아마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 또는 리버럴이라면 브라질의 현재를 놀라운 경이의 눈으로 보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아마 룰라가 엄청 인기를 끌고 또 현재의 문재인 정부도 롤 모델을 룰라에서 찾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5) 룰라의 한계

그러나 룰라의 노동자당 앞에 꽃길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그는 대의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소수파 정당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브라질의 경우 군부정권 이후 정당의 역사가 일천하므로 소규모 정당이 분산되었습니다. 그는 불가피하게 범민주세력에 속하는 다양한 정당과 연합하였습니다. 이런 연합은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협상을 통한 것이므로, 그 사이에 부패의 연결고리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인기 덕분에 정권을 승계한 지우마 호세프(도시게릴라 출신)는 부패 혐의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룰라 역시 부패 혐의로 기소를 당했습니다. 곧 재판이 내려진다고 하더군요. 나는 이런 부패를 개인적인 부패로 보지 않습니다. 이런 부패는 브라질의 정당체제의 구조적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역시 경제문제입니다. 브라질이 처한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모릅니다. 브라질은 아마 중국처럼 산업을 고도화하여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노리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럴수록 치열한 경쟁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과연 여기서 브라질이 버틸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중국은 자체 내 거대 시장이 있습니다. 브라질은 거대한 국가이지만 거의 대부분이 밀림이고 인구가 중국처럼 크지 않으니 국내시장이 좁습니다. 과연 닥쳐온 위기를 브라질이 넘어설 수 있을까요? 현재 브라질의 정치적 혼란은 이런 브라질의 경제적 고민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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