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성폭력 성차별 끝장집회’에 참가하고

8월18일 가을느낌 물씬 나는 토요일 오전 10시30분. 울산 북구 오토밸리복지센터 앞 도로에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오후 5시 서울에서 열리는 ‘성폭력 성차별 끝장집회’에 참여하기 위한 여성들이다.

무엇이 이 여성들을 6시간 버스를 타고 서울집회로 향하게 했는가.

8월14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에 의한 성폭력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무죄판결로 언론에서는 뉴스속보가 뜨고, 온갖 인터넷 포털검색어와 댓글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퉈 ‘꽃뱀’, ‘안희정에게 사과해라’, ‘왜 도망치지 않았냐’ 등 김지은씨에 대한 2차, 3차 가해가 벌어지고 있었다.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무죄판결부터, 김지은씨에 대한 온갖 악성 댓글과 기사를 지켜보던 여성들은 차오르는 분노와 국가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상실감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 

비가 쏟아지던 날 울산지방법원 앞에서는 분노한 여성들이 사법부 규탄 기자회견에 모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울에서 열리는 끝장집회에 가서 우리의 분노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끝장집회에 참여하면서 각자의 분노를 담은 피켓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함께 집회에 가지 못한 여성들은 간식을 준비하기로 했고, 참가비를 보태주는 등 뜨거운 자매애를 발휘하였다.

▲ 함께 집회에 가지 못한 여성들은 간식과 손 피켓을 준비했다.

오후 4시30분 서울역사박물관 앞.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무죄판결에 분노한 여성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정각 5시가 되자 1분의 망설임도 없이 집회가 시작되었다.

참가단체 소개, 대표자 인사, 의식 등을 다 생략하고, 무대에 올라온 연설자들은 함께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그 분노의 연설은 대회에 참여한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준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사회에서는 언제나 주변인으로 구석에 몰린 여성의 처지처럼 경찰들은 대회 참가자들을 1차선에 가둬놨지만 숫자가 점점 불어난 여성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폴리스라인을 옮겨 집회공간을 3차선으로 늘리면서 여성들의 힘을 확장해 나갔고 대회 참가자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갔다. 

▲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 끝장집회

김지은씨의 입장 전문이 발표되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저는 경찰과 법원의 집요한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안희정에게는 왜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쓰고 번복했는지 묻지 않나요? 왜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고, 제가 하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나요? 

저는 아는 유력 정치인도, 높은 언론인도, 고위 경찰도 없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던 노동자이자,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상사에게 받았던 위력, 폭력과 제가 받은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무수히 많은 폭력과 무엇이 다릅니까? 한번만 더 진실에 관심 가져 주십시오. 

강한 저들의 힘 앞에 대적할 수 있는 건 여러분들의 힘밖에 없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목이 메어 구호도 제대로 외칠 수가 없었다. 

김지은씨의 답답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호소문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 여성에게 국가는 없었다. 

국가와 언론, 경찰, 재판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결국에는 여성들끼리 뭉쳐서 싸울 수밖에 없었고, 

여성들을 억압하는 우리사회 모든 것을 박살내야 한다는 구호를 대회 참가자 모두가 절규하듯 외쳐댔다.

“안희정은 유죄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피해자다움 강요말라, 가해자나 처벌하라!” 
“더이상은 못참는다, 못살겠다 박살내자!” 
“더이상은 못 참는다, 강간문화 박살내자!” 

마지막 연설자(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대표)의 절규에 다들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람이 먼저라는 이 정부에서 여성은 사람이 아닙니까? 국민의 인권을 수호한다는 경찰과 검찰에서 실현하는 정의는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 여성들에게 국가는 없습니다.“

여성들이 직접 나서야했다. 

분노에 찬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7천명으로 시작된 끝장집회는 행진이 시작되면서 2만여명으로 늘어났다. 

1시간30분 동안 이어진 행진을 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를 외쳤다. 

“안희정이 무죄라면 사법부가 유죄다!”
“죄지은 놈 벌받아야 사법정의 실현된다!”
“피해자 옆에 우리가 있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미투는 끝나지 않는다!” 

▲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주최 끝장집회
▲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주최 끝장집회

‘편파수사, 편파판결, 피해자다움, 남성연대, 강간문화, 성폭력, 꽃뱀, 2차피해, 명예훼손’ 우리가 박살내고 싶은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찢고, 길고 긴 어둠의 장막을 거둬내는 횃불 퍼포먼스로 2부 행사가 시작되었다. 

▲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주최 끝장집회

아쉽지만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지는 순서가 될 때 울산으로 내려가야 해서 중간에 나와야했다.

울산 참가자들은 내려오는 전세버스 안에서 오늘 대회 참가 소감을 나누면서 노동운동으로 진보적인 것 같지만, 성평등 지수는 전국 최하위인 보수적인 울산에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할 수 있는 하루였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 2시....

모두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 하나씩 품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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