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73주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지난 4~9일 6일 간 열렸다. 대회는 두 피폭 도시에서 국제평화행진과 개회총회, 분과 토론회와 부문별 교류회, 평화공원 위령제와 마무리 집회 등으로 각각 진행되었다.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 손미희 공동대표와 류경완 운영위원장이 평화포럼의 초청을 받아 대회 전 일정에 참가한 이번 대회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돌아본다.
애초 미국의 핵무기 개발 비밀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목표였던 독일은 1945년 7월 핵실험 성공 이전에 항복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 상륙작전에서의 미군 피해와 일본 본토의 1억 옥쇄작전에 대한 부담, 천황제 존속 등 전후처리 조건을 둘러싼 항복협상 지체, 소련의 극동전선 참전, 막대한 개발비가 투입된 원폭의 기술적 검증 유혹과 종전 후 동북아 패권 확장의 필요성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미국은 일본에 대한 원폭 사용을 결행한다.
“한여름에 미국 정부는 일본의 비타협성에 참을성을 잃고는 굉장하고 장엄하고 뭐라고 항의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_ 존 키건, <2차 세계대전사>
그 후과는 소련의 남진을 저지한 3.8선에서 전범국 일본이 아닌 조선의 분단으로 이어졌고, 9일 아침 현지 상공의 기상악화로 원래 목표였던 코쿠라(현재의 키타큐슈) 대신 원폭을 맞아 17만 명의 희생자를 낸 나가사키는 역사의 우연이 빚어낸 비극적 참화의 사례로 남게 된다.
그로부터 73년, 미중 수교와 소비에트의 붕괴, 북의 전략국가 등장과 미 일극 패권의 쇠퇴를 거치며 동북아는 조미정상회담에 이은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배태한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종언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