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도 명예교수 “생산력·경쟁력 지상주의 벗어나 농업 다원적 기능 인정해야”

여소야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적 입법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농업 분야도 마찬가지. 그 동안 별러 온 여러 과제들을 실현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원내야당과 농민단체들이 28일 오후 연 ‘20대 국회가 꼭 해야 할 농업개혁 과제’ 토론회는 장소인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이 농민과 관련단체 인사들로 가득 찰 만큼 높은 관심 속에서 진행됐다.

토론회에선 현장 농민의 고충 토로와 원내 야당들의 농정과제 등 다양한 발표가 이어졌다. 이들 가운데 기존의 농정 패러다임의 획기적 전환을 주문한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의 발표를 소개한다.

스위스의 농식품 예산 80%가 직불금인 이유는?

스위스의 전체 농식품 예산 가운데 직불금 비중은 1999년 51.7%에서 2014년 81.5%로 증가한다. 박 이사장은 “이를 통해 스위스 농업을 친환경적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변화시켰다.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능력도 동시에 향상됐다”고 평가했다. EU 전체로 봐도 직불금 예산의 비중은 2001년 68%에서 2011년 79.5%로 증가했다.

농정 패러다임 전환론의 핵심적 근거는 농업이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보장은 물론 환경보호 등 다양한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시장만능의 논리론 이런 고유 역할을 하기 어렵다. 생산성만을 고려하는 농업은 과도한 화석에너지와 화학 제초제 사용 등으로 환경파괴를 증가시키고 이윤만능의 논리는 안정적 식량 수급체계에 교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 대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농민의 소득보전이다. 농민들이 직불금을 포함해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같은 제도 도입을 최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이사장도 이날 발표에서 “10년 내에 농업예산에서 직불제 예산의 비중을 현행 12% 수준에서 50% 수준으로 높이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미국 농가도 평균적으로 소득의 70%가 보조금으로 이뤄져 있다. 이른바 선진국들은 이미 농업을 시장의 관점에서 보지 않은 지 오래다. 하지만 세계화·선진국화를 입에 달고 사는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농업에 끊임없이 시장논리만을 강요하고 있다.

‘국민총생산’ 아닌 ‘국민총행복’ 증진 위한 농정패러다임

박 이사장은 “농정이념을 국제경쟁력 지상주의에서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의 증진에 기여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실현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복은 물질적 조건 외에 환경, 건강, 문화, 공동체, 여가 등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므로 국가가 이런 개념들의 균형 있는 발전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국민총행복의 도입 목적이다.

박 이사장은 이 관점에서 3대 농정목표를 제안했다. △모든 국민은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소비할 권리를 가진다 △농산어촌 주민은 도시민 못지않은 경제적 소득과 복지, 교육, 문화 등의 서비스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농어촌을 단순한 생산공간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개방된 다양한 경제, 환경,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킬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정을 부문 정책에서 농업·지역·환경을 포괄하는 통합적 농촌정책으로 전환하고 농업, 농촌, 식품정책의 상호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장이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농정에 있어서 지방정부의 역할과 도농 상생의 강화다. 그는 “오늘날 도시가 안고 있는 먹거리, 일자리 등의 문제는 도시 자체로 해결할 수 없고 동시에 농촌의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며 “도시의 혁신적 에너지가 농촌 자원과 결합돼야만 하며 이를 위해 ‘도농상생’ 혹은 ‘지역상생’의 관점에서 농업과 농촌이 지니는 다원적 기능을 극대화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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