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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복지국가를 잘 만들면 성장에도 좋다”<세계경제 대전환과 한국경제-복지국가와 산업정책> 포럼서 ‘복지국가’ 강조

‘촛불혁명’ 덕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우리사회의 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 내지 완화하려면 무엇에 힘을 쏟아야 할까?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는 “더 과감한 정책들이 필요하다”면서 “산업정책의 부활과 복지국가의 획기적인 확대” 두 가지를 꼽았다. 새경제규칙포럼(준) 등이 지난 24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연 <세계경제 대전환과 한국경제-복지국가와 산업정책, 경제민주화> 포럼에서 한 주제발표에서다. 특히 이날은 복지정책을 더 많이 강조했다.

이명박 국방부가 불온도서로 지정해 외려 판매부수가 급증했던 <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 소개행사 때는 물론, 초청대담과 여러 언론 인터뷰 등에서 신자유주의 비판과 국가 산업정책의 중요성을 부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가 지난 24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연 <세계경제 대전환과 한국경제-복지국가와 산업정책, 경제민주화> 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사진 : 한겨레TV 화면 갈무리]

“복지정책에 있어서는, 복지국가를 단순히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해 ‘형편에 맞게 늘린다’고 하는 소극적인 접근을 버려야 합니다.”

복지정책이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경제민주화와 장기적으론 경제의 활력을 증대시키는 수단,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 때문이다. 그래서 장 교수는 거듭 “최대한 빨리, 적극적으로 복지국가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복지국가에 대한 편견이 많은 우리나라에선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이 19세기말엔 유럽에서 가장 작은 정부를 뒀고, 영국보다는 90년, 미국보다도 20년 늦은 1932년에야 소득세를 도입했음을 알린 장 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건설하려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장 교수는 이를 위해선 다른 무엇보다 ‘사회복지’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진보진영에 필요한 인식 전환 과제. “우리나라 진보세력에선 사회복지를 자꾸 ‘무상복지’라 부릅니다. 그러나 무상복지는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내니까 복지가 ‘공짜’는 아닙니다. ‘공짜’가 아니라 ‘공구’, 즉 공동구매인데 그걸 자꾸 ‘공짜’라고 하니까, 상대적으로 복지혜택을 많이 받는 가난한 사람들은 기대만 높아지고, 세금을 상대적으로 많이 내야 하는 부자들은 반발심만 생깁니다.”

이런 ‘공구’의 장점 한 가지 더. 공동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복지국가를 통하면 복지서비스들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바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영화 ‘식코’를 통해 유명해진 미국의 의료서비스다. 미국엔 공공 의료보험이 없어 의료서비스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국민소득의 17%에 이른다. OECD 평균인 9%에 2배 가깝다. 그런데도 미국의 건강지표는 선진국들 중 최하위 수준이다. ‘공구’인 공공의료보험이 있고 없고가 하늘과 땅의 차이인 셈이다.

다음은 보수세력의 ‘선별적 복지론’이다.

“선별적 복지는 단기적으로는 더 필요한 사람을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이 떨어집니다.”

왜냐면 중산층 이상은 세금만 내고 혜택은 거의 받지 못한다고 불만을 품게 되고, 반대로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혀 ‘2등 시민’ 취급을 받게 된다. 결국 대부분 국민이 복지국가에 불만만 품게 된다.

그래서 장 교수는 “아주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만 도와주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가 진정한 사회복지이고, 보편적 복지를 해야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계몽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보편 복지’를 위해 모두가 세금을 더 내고 복지혜택을 모두가 더 많이 누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주로는 누진소득세를 인상해야 하지만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도 올릴 필요가 있단다. 사회복지가 잘 된 유럽 나라들은 대부분 부가가치세가 20~25% 수준이라고 한다.

장 교수는 또 “복지국가를 잘 만들면 성장에도 좋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예로 들면, 단기적으로 복지확대를 통해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면 소득대비 소비지출이 높은 저소득층이 안정적으로 소비를 늘릴 수 있어 내수가 진작되고 성장에 보탬이 된다. 복지확대의 단기적 효과이다.

복지확대는 중장기적으로도 성장에 도움이 된다. 많은 복지지출이 ‘투자’의 요소를 갖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탁아, 방과후교육, 학교급식 등을 잘하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이 더 지식을 잘 흡수할 수 있게 돼 장기적으론 노동력의 질이 올라간다.

특히 복지제도를 통해 최저생활을 보장해주고 실업보험과 재교육 등을 확대하면 직장이나 사업에서 실패해도 재기할 기회를 줘 성장에 도움이 된다.

신기술 도입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으로 실직한다 해도 복지제도를 통해 재기가 가능하면 노동자들이 신기술 도입에 크게 반대할 이유도 없다. 스웨덴과 핀란드 등의 노조조직률이 70%에 이르는데 구조조정에 반발한 파업이 거의 없는 이유라고 한다.

노동자들이 재기가 가능하면 직업 선택도 더 진취적일 수 있다. 그럼 또 구조조정이 신속해지고 신산업 창출이 쉬워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미국보다 1.5배가량 큰 복지국가(지출) 규모를 가진 스웨덴, 핀란드 등이 미국보다 경제성장이 빠른 이유가 바로 복지국가가 생산지향적이고 노동자들이 진취적이기 때문이란다.

장하준 교수가 말하는 세금에 관한 3가지 오해

“물론 복지국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 합니다.”

장하준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이렇게 증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재 우리의 복지지출은 국민소득 대비 10% 수준으로 미국의 절반, 유럽 복지국가들의 3분의 1에 그친단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필요한 게 조세에 대한 3가지 ‘오해’를 해소하는 거라고 장 교수는 말했다.

첫째, ‘조세부담’이란 말이다. 장 교수는 “세금을 ‘부담’으로 보는 것인데, 이게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세금이 곧 고속도로, 학교, 경찰, 소방서, 국책연구소에서 나오는 신기술이고 하다못해 길에 심어져 있는 꽃들이란 얘기다.

그래서 장 교수는 “세금은 정부서비스에 대한 ‘구독료’라고 보면 된다. 만약 세금이 진짜 부담이고, 따라서 낮을수록 좋은 것이라면 모든 부자는 소득세 최고률 10%인 파라과이에 가서 살고, 모든 기업은 법인세 10%인 마케도니아에 가서 사업을 할 것”이라며 “(부자와 기업들이)그러지 않는 건 파라과이가 세금은 낮은 대신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낮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부 서비스의 ‘가성비’가 낮단 얘기다.

반면 정부 서비스의 가성비가 좋아 소득세 최고률이 60%인 스웨덴에도 부자들이 많이 살고, 법인세가 30%인 독일에서 기업이 잘 된단다.

둘째, 중상류층에선 ‘우리나라는 세금을 안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는데 틀린 말이다.

세상에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가난해도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낸다. 그리고 국내 세수에서 간접세 비중(50% 이상)은 OECD 평균(40%대) 이상으로 우리 저소득층은 다른 나라 저소득층에 비해 세금을 많이 낸다.

셋째, 적자재정은 나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너무 뿌리 깊다. 적자재정은 나쁜 게 아니다.

단기적으론 정부가 적자를 내는 게 경제 상황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경기가 안 좋을 때 정부가 수요 진작을 위해 적자재정을 하고, 경제가 호황일 때는 정부가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흑자재정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건 케인스경제학의 기본.

장 교수는 “재정 균형은 경기순환 사이클에 걸쳐 이루면 되는 것이지, 매년 달성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며 “매년 재정 균형을 맞추는 것이 좋다면 왜 매달 균형을 안 맞추고, 왜 매주 균형을 안 맞추냐”고 비꼬기까지 했다. 경제학에서 ‘1년’이란 기간은 큰 의미가 없는 단위란다.

재정적자가 좋은지 아닌지는 장기적으로 정부가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정부가 적자재정을 통해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돕는 사회간접자본, 연구개발, 교육, 직업훈련 등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성장이 더 잘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세수가 늘어 적자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가 안 좋을 때 몇 년 적자재정을 해도, 나중에 경기가 좋아졌을 때 그만큼 흑자재정을 하면 국채가 늘어날 이유도 없다.

일부에선 적자재정을 두고 ‘다음세대 부담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장 교수는 국채는 보유자에겐 부담이 아니라 혜택이라고 반박했다. 국채로 이자를 받을 수 있어서다.

물론 국채가 급증해 경제위기가 온다면 미래세대에 피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현실화되지도 않은 터에 ‘다음세대 부담론’은 어불성설이란 것.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국채는 국민소득 대비 43%로 국제기준에서 보면 매우 낮다고 한다. 정부가 빚을 내 적극적으로 생산적인 투자를 할 여력이 크다는 얘기다.

네덜란드, 핀란드, 독일이 60%대이고, 미국은 77%, 오스트리아는 82%, 싱가포르 115% 등 국민소득 대비 국채 비율이 우리의 2~3배이면서도 경제가 잘 되는 선진국들이 많다. 장 교수는 “잘 관리만 하면 빚이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순 없다”고 말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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