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이 필요하다(6)

한국경제에 다양한 적색경보가 울리고 있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간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논쟁도 가열되고, 노동과 진보진영에서는 정부가 친기업으로 돌아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단기 현안도 중요하지만 근본에는 경제패러다임 문제가 깔려있다.

그래서 다양한 진보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다. 앞으로 소개하는 글들이 현장언론 민플러스의 입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벌개혁을 포함한 한국경제 패러다임 형성과 관련하여 진보 내부의 시야와 안목을 넓히는데 기여하길 바란다.

먼저 페이스북에서 제조업 부흥‧진흥 전략을 강조해 온 정승일 박사의 해당 글들을 필자의 허락을 얻어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이 필요하다>

1.제조업을 부흥시켜야 경제가 산다
2.중국제조업전략, 남북경제협력과 제조업
3.무엇이 착한 기업인가? ‘흑묘 백묘' 정신
4.제조업 성장의 정체와 서비스 성장의 이면
5.주주자본주의 확산과 3세 경영의 함수관계
6.제조업에서 독일‧미국과 영국의 차이

<필자 정승일>

-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이사
- 저서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

 

• 영국 오너 패밀리 유지, 미국‧독일 오너 이선후퇴 특징 
• 영국 담배 등 산업 주력, 미국‧독일 제조업 주력 
• 영국 식민지 많음, 미국‧독일 식민지 취약 

미국‧세계의 기업 경영사 연구는 <챈들러 이전과 챈들러 이후>로 나뉜다고 이야기된다. 그 정도로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기업‧경영사 연구자인 알프레드 챈들러(Alfred Chandler)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근대‧현대적 대기업이 중소기업‧가족경영으로부터 성장하여 발전하였는지에 대해서였다. 

참고로, 챈들러와 그리고 그의 주요 제자들(오바마 행정부에서 '제조업 르네상스'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Pisano & Shih 교수를 포함)은 월스트릿 자본주의, ‘금융과 재무‧숫자, 계량’ 위주의 경영학‧경영기법 교육, 주주자본주의 등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유감스럽게도, 챈들러의 그 중요한 저작들 중 오직 한 권, "Visible Hand"(보이는 손 -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반대 테제로 제시된 책제목)만이 한글로 번역되었다. 세계적인 주요 저작의 미번역은 한국 경제‧경영학계의 척박한 지적 풍토의 궁극적 배경이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영국의 대기업과 미국‧독일의 대기업이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는 묘사와 설명이 나온다. 

요약하자면, 영국의 대기업에서는 20세기 들어서도 오너 패밀리(후계자들)가 지속적으로 경영에 직접 참여‧개입했다. 그에 반해, 미국‧독일의 대기업에서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오너 패밀리(후계자들)가 경영 일선에서 후퇴하여 단순한 관리자(이사 또는 이사장)로 물러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는 전자(영국)가 영위하는 사업‧업종과 후자(미국‧독일)가 영위하는 사업‧업종의 차이와 매우 밀접하게 결부되었다. 

즉 영국의 대기업+오너 패밀리(후계자들)이 영위하는 주된 업종은 예컨대 담배(던힐) 제조‧ 판매였다. 

이에 반해 미국‧독일의 대기업(오너 후계자가 아니라 전문 경영자가 경영 일선에서 뛰는)이 영위하는 주된 업종은 예컨대 전기‧발전(미국의 에디슨전기‧웨스팅하우스, 독일의 Siemens), 자동차(미국의 GM, 독일의 벤츠), 화학(미국의 듀폰, 독일의 바이엘) 같은 업종이었다. 

담배(던힐) 업종의 특징
1. 식민지 지배(플랜테이션 노예 노동)에, 독과점(담배 원료의 식민지 분할=독과점)에 의존한다. 즉 지대 추구(rent-seeking)에 의존한다. 
2. 기술‧생산성 혁신 (신제품 개발+제조공정 개선)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3. 따라서 평균 수준의 지적‧경영 능력만 가져도 사업을 경영할 CEO로 나설 수 있다. (오너 패밀리 후계자들이 경영 일선에서 활동) 

전기‧발전, 화학, 자동차‧항공기 등등 업종의 특징 
1. 치열한 (국제)시장 경쟁에 노출되어 있으며 (지대 추구가 거의 불가능) 
2. 그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CEO 등 최고경 영자들이 과학과 기술 지식을 가지고 수요자(주로 산업체)와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3. 따라서 그럴 능력 없는 오너 후계자는 자연스럽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20세기 초반에 대영제국, 즉 방대한 식민지를 가졌던 영국과 그렇지 못했던 미국‧독일. 영국은 식민지 경영(rent-seeking)으로 자신의 부와 소득을 키웠다. 반면에 (당시에만 해도)식민지를 갖지 못한 미국‧독일의 기업들은 기술‧품질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대기업(재벌그룹 포함)의 후계자들이, 주주자본주의 및 시장주의적 환경으로 더욱 부추김 당하면서, 안전하게 확실한 수익과 매출을 빠른 시간에 달성할 수 있는 (성과주의, 단기성과 주의)분야‧업종으로 확대한다. 

그것은 기술력과 품질이 중요하며, 치열한 국제시장 경쟁(product market pressure)에 노출된 고부가가치 수출 제조업보다는, 공무원‧정치인‧언론을 적당히 관리하고 주무르면서(정경유착) 규제완화, 민영화, 독과점화 등을 통해 쉽고 안전하고 빨리 수익‧매출을 낼 수 있는 분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기업‧재벌그룹에서 창업자 3세, 4세들이 경영 일선에서 (자연스럽게, 즉 스스로)물러나게끔 하는 방법 중 하나는 국가‧사회가 이들 대기업‧재벌그룹들에게 '고기술‧고부가가치 수출 제조업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과감하고 획기적인 '제조업 진흥‧부흥 전략'을 정부와 사회가 추진할 때,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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