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사례①] 5700명 주민 만나 ‘정책제안운동’ 펼친 월계동 구의원 선거

지방선거를 마친 진보정당들의 전열 재정비가 한창이다. 진보정당들은 6.13지방선거에서 당의 인지도와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저마다 다양한 노력을 했다. 현 정치지형을 십분 활용해 선거공학적 접근을 한 경우도 있지만, 참신하고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마을일꾼으로서 헌신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진보정당만의 새로운 정치방식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경우 등 다양한 시도들이 회자되고 있다. 

현장언론 민플러스는 진보정당의 노력을 꾸준히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대리·위임정치를 끝내고 민중 스스로 정치하는 민중의 직접정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로 지방선거에 나선 민중당의 사례를 소개한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 구의원 후보로 출마해 ‘정책제안운동’을 매개로 마을에서 직접정치의 모델을 만드는 선거운동을 펼친 강미경 전 후보(민중당 노원구위원회 사무국장)를 만나 월계동 선거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

“○○아파트 산책로에서 만난 주민이십니다. 낡고 허름한 벤치를 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유치원에서 만난 엄마입니다. 보육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함께 찾고 있습니다.” “○○경로당에서 만난 어머님이 제안해주신 정책으로 강미경 후보의 공약을 만들었습니다.” 

지방선거 직전에 있은 선거대책본부(선본) 사무실 개소식부터 달랐다. 개소식의 주인공은 후보가 아닌 월계동 주민들이었다. 

개소식을 축하하러 온 주민 한 명, 한 명을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이 소개했다. ‘언제, 어느 곳에서 만나, 어떤 정책제안을 해준 주민인지’ 그리고 ‘주민의 정책제안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었는지’까지. 강미경 후보는 “그들이 월계동에서 주민직접정치를 만들어가는 ‘씨앗’이자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민중이다”, “민중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직접정치’의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로 지난해 10월 창당한 신생 진보정당 ‘민중당’. 

민중당은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2월 ‘100만 유권자 정책제안운동’을 선포했다. 마을, 공장, 캠퍼스 등 주민들의 생활공간, 노동현장 곳곳에서 만난 100만 유권자들의 제안 정책을 지방선거에서 의제화하고 정책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이었다.  

월계동에서 ‘주민직접정치’의 ‘씨앗’을 만드는 일.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책제안서와 볼펜 한 자루

“지난해 촛불항쟁과 정권교체를 통해 민중의 힘을 확인했다. 민중들의 직접 행동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정치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지방선거 역시 ‘덜 나쁜 사람 한명을 뽑는 선거’가 아닌, 촛불혁명을 경험한 주민들의 참여와 행동으로 마을의 정책을 만들고, 주민들이 직접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는 과정이다.” 강 전 후보가 정책제안운동에 발 벗고 나선 이유다. 

월계동에서 정책제안운동을 시작한 건 선거가 시작되기 한참 전이다. 후보와 당원들은 3월부터 정책제안서와 볼펜 한 자루를 들고 주민들을 만났다.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노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엄마와 여성이 행복한 노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정책제안서에 담긴 평이한 질문들이 후보의 공약이 되고, 주민 직접정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까지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10명 중 9명은 그냥 지나쳤다. 6월에 있을 지방선거 이야기를 3월부터 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꾸준함도 필요했지만 우리 스스로 ‘정책제안운동’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주민들을 만나 정책제안 설문을 받는 것이 흔히 하는 ‘앙케이트’ 조사가 되거나 혹은 단 한 번의 이벤트(기획)로 끝나는 것을 경계했다.” 제안서를 많이 받는 것보다, 한 명의 주민을 만나도 깊이 있게 마을 이야기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본격 선거기간에 돌입하기 전까지 3700여 주민을 만났고, 그들이 제안한 정책으로 공약을 만들어 선거공보물에 담았다. 후보등록을 마친 다음엔 정책제안서 대신 공보물을 들고 주민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대화를 나눈 주민은 5700명이 훌쩍 넘는다. 

▲ 강미경 후보가 3월부터 들고 다닌 ‘정책제안’ 수첩. 주민들과의 대화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정책제안을 대하는 자세1 - ‘민원처리왕’

“저기는 우리한테 말을 걸어 와. 혼자 얘기하지 않고 대화를 한다니까.” 후보가 수첩을 들고 나타나자 주민들이 먼저 알아차릴 정도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만남의 숫자가 늘어가면서 주민들의 관심사와 제안은 데이터로 차근차근 축적됐다. 주민들과 대화했던 내용들은 일자리, 돌봄, 건강 등 주민들의 관심분야별로, 연령별로, 아파트 별로 정리했다. 다음 단계는 주민이 제안해준 정책을 어떻게 반영하고, 해결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 

“‘듣는 선거’에 머물렀다면 주민들이 제안한 정책들을 후보공약에 넣고 끝냈을 것이다.”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구청에 직접 민원을 넣었다. 

“산책로에 설치된 나무 의자가 너무 낡아서 너덜너덜 해졌어요.”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교체해 달라는 민원을 넣었더니 며칠 후 의자가 교체됐다. “밤길이 너무 어두워요.” 민원을 넣자 가로등이 교체됐고 CCTV를 설치할 예정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렇게 주민들의 제안을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해결했다. 그리고 주민을 다시 만나 어떻게 해결됐는지 알렸다.

후보와 당원들은 모두 ‘민원처리왕’이 될 수밖에 없었다. 3월부터 선거 돌입 전까지, 정책제안을 받아온 사람이 직접 민원 해결까지 담당했다. 개소식을 찾은 주민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정책제안운동에서 만난 주민을 또 다른 주민에게 소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선본 사무실 개소식을 찾아준 주민들의 모습이 사진 속에 보인다.

정책제안을 대하는 자세2 - ‘답은 주민에게 있다’

민원을 처리하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후보도 낯설고 주민도 낯선 ‘정책제안운동’은 주민들의 생각, 주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듣는 선거’에서 어느새 ‘대화하는 선거’, 그 이상으로 발전해 갔다. 

강 후보가 주민들에게 말을 걸고, 대화에 나선 이유는, 정책제안운동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짝 진행하는 ‘주민 의견수렴’ 운동이 아닌, 대신 해결해주는 정치도 아닌, 마을의 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해결하겠다’는 의지였다. 

마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주민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월계동에는 묵은 현안이 있다. ‘시멘트 공장(유통기지)의 미세먼지와 소음문제 해결’이 정책제안으로 들어왔다. 2020년 공장이전이 결정된 상황이었지만 3년 동안은 먼지와 소음에 시달려야 할 판이었다. 공장이전 문제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먼지와 소음 문제의 해법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자료를 받아보니 공장이전 부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고, 마땅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방진시설이 있긴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주민들이 해답을 내놨다. 답은 간단했다. “물이라도 자주 뿌리면 먼지는 덜 할텐데….” 그래서 이를 위한 시설 확충을 요청했다. 지방선거 때마다 반복돼온 풀리지 않은 현안들이 주민들의 정책제안으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고 주민들은 스스로 답을 내고 풀어갔다. 

주민들 속으로 직접정치의 힘이 확장돼 가는 경험도 했다. “아파트단지 내 주차공간이 부족해 많은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었다. 주차장이 부족해 아파트 입구(큰 길) 갓길 주차가 많아졌다.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곳에 주차를 하다 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 갓길에 주차한 차를 빼서 다시 아파트단지 내 빈 주차공간을 찾아 주차하는 주민들이 태반이었다.” 주민들은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당장 주차장을 확장할 수는 없었고 장기적인 해법이 필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단기적인 해결방법을 고심했다. 서울시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을 찾아보니 ‘시간제주정차 구역’으로 지정되면 야간(지정시간) 갓길 주차가 가능해 과태료를 물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아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야간 갓길 주차 허용’을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반응도 뜨거웠다. 서명용지를 모아 두 차례 구청에 전달했다. 

주차장 문제에 앓고 있던 주민들이 한발 더 나서기 시작했다. “주차장 문제에 관심이 많던 한 청년은 서명용지를 집에 들고 가 어떤 방법이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법인지에 대해 가족들과 토론했다고 했다.”, “후보를 찾아와서는 이 정도 정책으로는 부족하다, ○○동 아파트단지에서는 녹지공간을 활용해 주차장을 만드는 정책이 있다고 하더라는 얘기도 해주고 갔다.” 

▲ 강미경 후보는 마을에서 ‘주민직접정치회의’를 운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직접정치 씨앗’ 두 개가 되고, 네 개가 되다

주민이 제안한 정책을 당선되고 나서 해결할 생각이었다면 구청에 민원을 넣거나, 정보공개를 청구하거나, 주차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까지 하진 않았을 터였다.

아파트별, 연령대별 주민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주민과 함께 답을 찾으면서 주민들 역시 자신의 제안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관심사가 같은 주변 지인들을 소개해주는 주민들이 늘어갔다. ‘정책제안’을 받은 한 개의 씨앗이 두 개로, 네 개로 불어났다.  

당장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들은 선거공보물에 공약으로 담았다. 본 선거가 시작되고 나선 정책제안서 대신 공보물을 들고 주민을 만났다. ‘주민들이 정책입안자’였다는 것을 알렸다. 이미 사전투표를 마쳤다는 주민들에게도 말을 걸고 대화했다. 마을의 문제를 듣고, 해결방법에 대한 의견을 묻고, 주민 직접정치에 함께 하자고 호소했다. 

강 전 후보는 “정책제안운동이 앞으로 마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줬다”고 했다. 낙선했지만 공약으로 제시했던 마을의 문제를 주민들의 직접정치 방식으로 풀어나갈 결심을 하고 있다. 

“정책제안운동을 하면서 보육문제가 걱정인 엄마들과 간담회 자리를 가졌다. 엄마들의 다양한 고민을 풀어놓다보니 보육문제로 힘든 엄마의 고민, 경력 단절 여성들의 고민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맘(MOM)편한 센터’를 만들자는 의견을 모았다. 앞으로도 꾸준히 모임을 갖고 여성 일자리와 보육문제를 함께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 가기로 했다. 월계동에서 직접정치를 실현하는 모임 중 하나가 됐다.” 

강 전 후보는 선거공약이던 ‘주민직접정치회의’를 마을에서 운영해나가기 위한 준비와 구청에 민원을 넣었던 사안들이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 점검하는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직접정치, 가능성을 보다

강 전 후보와 월계동에서 그의 선거를 도운 당원들은 입을 모아 “‘정책제안운동’을 통해 ‘민중들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고, 직접정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마을 안에 묵혀있던 현안들이 주민들의 입을 통해 의제가 됐다. 주민들과 함께 여론을 만들고, 주민들이 스스로 주인이 돼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민중 속에 답이 있다’는 진리를 확인했다”는 게 강 전 후보의 말이다. 

당원들도 마찬가지. “나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를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월계동 주민들을 봤다.” “듣는 것까지는 우리의 몫으로 할 수 있지만, 해결하는 과정은 주민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주민들과 더 많은 것을 해결하고 만들 수 있었을 것.” ‘주민 직접정치’의 싹을 월계동에서 틔웠다는 확신에 넘쳤다.

또 하나, 정책제안운동이 신생 진보정당인 민중당의 정체성을 주민들과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지지자와 연고자를 만들었다.” “당 인지도가 없으니, 아무리 마이크를 잡고 유세를 벌여도 ‘지지’로 까지 연결되진 않는다. 주민들을 만나 정책제안을 받고 주민들과 같이 해결해 나가면서 민중당이 하고자 하는 주민직접정치가 무엇인지 알릴 수 있었다.” 서울지역 내에서 민중당의 지지율이 다른 어떤 마을보다 많이 나온 곳이 월계동이다. 

그들은 “직접정치의 시작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도 강조했다. “직접정치의 시작은 주민들의 문제와 주민들의 고통에 민감해지는 것이다. 마을마다, 지역마다 현안문제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수면 아래 가라앉은 문제들을 끄집어내는 것이 시작이다. 주민들의 고통에 민감했기 때문에 작은 문제라도 놓치지 않고 주요 현안으로 만들 수 있었다.” 

지방선거를 치르며 ‘민중 직접정치’의 가능성을 확신했다는, 그들이 찾은 ‘씨앗’이 어떤 새싹과 결과로 피어날지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