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이 필요하다(5)
한국경제에 다양한 적색경보가 울리고 있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간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논쟁도 가열되고, 노동과 진보진영에서는 정부가 친기업으로 돌아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단기 현안도 중요하지만 근본에는 경제패러다임 문제가 깔려있다. 그래서 다양한 진보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다. 앞으로 소개하는 글들이 현장언론 민플러스의 입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벌개혁을 포함한 한국경제 패러다임 형성과 관련하여 진보 내부의 시야와 안목을 넓히는데 기여하길 바란다. 먼저 페이스북에서 제조업 부흥‧진흥 전략을 강조해 온 정승일 박사의 해당 글들을 필자의 허락을 얻어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이 필요하다> 1.제조업을 부흥시켜야 경제가 산다 <필자 정승일> -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
• 주주자본주의 확산에 따른 단기수익 추구
• 재벌 대기업 수출제조업이 아니라 주로 내수 서비스업 분야에서 다각화
• 재벌 2세, 3세 후계자들, 제조업, R&D 집약적인 수출제조업 다각화나 신규 진출 꺼려
오늘날 4대 이하의 하위 재벌그룹의 대다수는 R&D가 중요한 수출제조업으로의 신규 진출에 소극적이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자와 자동차, 조선, 게다가 항공기 제작 등의 수출제조업 분야로 과감하게 다각화하던 재벌그룹들이 오늘날에는 그것을 매우 꺼리면서 손쉽게 지대추구로 실적을 낼 수 있는 내수산업, 특히 내수 서비스업으로의 확장과 다각화에 주력하는 것일까?
그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지배력 확산이다. 1998년 이후 상법과 증권거래법 그리고 대기업집단 관련 법제도가 주주권 이론 또는 주주자본주의 이론에 따라 개혁되었다.
그 결과 상장 대기업들의 전략적 의사결정에서 단기수익을 추구하는 소수주주(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극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재벌그룹들만 아니라 일반적인 독립대기업들도 사업 다각화에 매우 신중하며 소극적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재벌그룹들은 그리고 재벌 2세, 3세 후계자들은 단기간 내에 성과와 수익을 낼 수 없는 제조업, 특히 R&D 집약적인 수출제조업으로의 다각화나 신규 진출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1960년대 공업화 개시 이래 한국경제와 대기업들에서는 3번의 사업 다각화 물결이 있었다.
첫 번째 다각화는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화 즉 국가주도의 수출제조업 지원전략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 시기에 오늘날 한국의 수출제조업의 토대가 구축되었다.
두 번째 다각화는 1990년대 중반 WTO, OECD가입과 함께 이루어진 산업진입 규제 부분 철폐에 기인했으며, 당시의 대기업 사업다각화는 수출제조업(가령 삼성그룹의 자동차‧항공기로 다각화)과 국내서비스업(특히 금융업-종금사 등)의 두 분야에서 진행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2000년대에 들어 일어난 세 번째 사업 다각화는 국가개입주의의 폐기와 신 자유주의적 규제완화라는 제도적 변화 환경에서 일어난다. 더구나 이 시기의 사업다각화의 방 향 역시 수출제조업이 아니라 주로 내수 서비스업 분야에서이다.
재벌그룹을 포함한 대기업들과 그것을 경영하는 재벌 2세, 3세 후계자들은 오늘날 규제완화와 이를 위한 정경유착으로 손쉽게 실적과 수익을 낼 수 있는 내수 서비스업으로 다각화하고 있 다.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에 포섭되고 오히려 그것에 따른 재산권과 수익을 기꺼이 즐기고 있는 재벌 후계자들의 지배체제 하에서 한국의 대기업과 재벌그룹들은 장기간의 '축적의 시간'(=기술혁신)에 매진해야 하는 고기술, 고부가가치 수출제조업으로 진출하다가 실패하여 비난 받고 더구나 경영권을 상실하는 위험을 무릅쓰느니, 차라리 내수시장에서 지대추구를 통해 안전하고 쉽게 수익과 매출을 창출하여 주주‧투자자들에게서 박수 받고, 자신들의 경영권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내수산업(특히 내수 서비스 산업)으로 진출‧다각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