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6만의 젊은 분노를 들어라!
혜화역이 궁금했다. 이미 1,2차 집회에서 3만여 명의 여성들이 참여하면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던 혜화역!
왜 여성들이 이곳으로 모인 것일까.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무엇을 주장하며 어떤 변화를 열망하고 있을까.
많은 질문을 안고 혜화로 향하는 붉은 물결에 몸을 던졌다.
혜화역은 젊었다. 말할 수 없이 뜨거웠다. 그리고 6만의 젊은 여성들의 외침은 강렬했다.
도대체 누가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분노케 하고 있는가?
혜화역 시위의 정식명칭은 <불법촬영(일명 ‘몰카’) 편파수사 규탄 시위>다.
이 시위는 표면적으로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몰카)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별 편파수사에 대한 대응에서 비롯되었다. 본질적으로는 6만의 집회가 말해주듯 한국사회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 무차별한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성들의 분노가 혜화역으로 결집된 것이다.
혜화역 3차 시위 이후 정현백, 김부겸 장관 등이 정부차원의 대책 수립을 발표했지만 시위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혜화역은 정치적 상징성을 획득해가고 있다.
혜화역 이전 서울의 한복판 강남역에서 20대 여성이 한 남성으로부터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강남역을 포스트잇으로 채우며 추모의 물결을 만들었다. 여성들의 추모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내가 죽었을 수도 있었다.(니가 곧 나다.)” “여성혐오가 죽였다”
이는 현재의 젊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의 수위가 얼마나 높은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여성에게 안전의 문제는 곧 생존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2년이 지난 지금 강남역의 공포는 여전히 여성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젠더폭력은 더 잔인해지고 치밀해져가고 있으며 젠더격차지수 세계 최하위라는 불명예가 보여주듯 성차별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혜화역 시위의 배경은 ‘더 이상 국가가 여성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절박함과 “살아남은 우리가 바꾸겠다”는 여성 주체성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페미니즘으로 의식화되고 여성연대로 강해진 새로운 세대의 등장
혜화역 3차 시위이후 논쟁이 뜨겁다. 시위에서의 발언을 문제 삼는 것에서부터 시위 주동자(?)에 대한 혐오와 비판은 도를 넘고 있다. 수많은 언설은 시위의 본질을 비껴가고 남혐과 여혐의 성대결을 부추기며 분열의 정치를 조장하고 있다.
근원적으로 중요한 ‘이들은 누구이며 왜 이러한 시위를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은 없다. 분열과 혐오의 정치로는 6만의 분노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해야 할 것은 6만의 분노와 소통하고 더 나은 사회로 가기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이 촛불항쟁이라는 불멸의 역사를 만들어온 민주시민으로서의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
혜화역 시위 참여자의 대부분은 10~20대의 젊은 여성들이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사적공간에서는 비교적 평등한 유년시절을 보낸 세대이다. 평등을 경험해본 이들에게 학교와 사회 등 조직에서의 차별과 불평등은 큰 자괴감과 절망감을 안겨준다. 또한 이들이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한국사회의 대 사건인 세월호 사건과 그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사회를 열어낸 촛불항쟁의 경험은 기성세대처럼 ‘참거나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문제의식과 ‘우리가 주체가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직접정치의식을 심어주었다.
변하지 않는 사회구조에서 이들의 문제의식과 분노는 온라인 공간으로 모아졌다. 이들을 여성계 일부에서는 ‘넷페미’ 라 지칭하기도 하고 이들의 여성주의적 흐름을 ‘사이버 페미니즘’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방식의 커뮤니티이며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운동방식이다.
이들은 대사회적 발언을 ‘미러링’과 같은 ‘남성에게 당한만큼 돌려준다’는 방식으로 표출한다.
이번 혜화역 시위의 이슈의 중심인 몰래카메라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일상이 디지털화된 사회에서 몰카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는 여성들에게 정부의 미온적이며 편파적인 수사방식은 매우 큰 분노를 안겨준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주지 않는 사회에서 이들이 택한 저항의 방식은 ‘성체 훼손’의 예처럼 매우 자극적이며 논란을 일으키는 방식이었다.
그 방식이 맞냐, 아니냐 라는 논쟁 이전에 이들이 왜 이러한 저항방식을 표출하고 있는가를 질문해보는 것이 먼저다. 지금껏 ‘미러링’ 등 이들의 저항방식은 사회의 도덕적 근간을 흔드는 것일수록 강력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비로소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귀를 기울여 주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저항방식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지금 젊은 여성들은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는 여성운동의 정언명령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시위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혜화역 시위, 진보진영은 여성 연대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87세대가 사회민주화를 위해 거리를 점령했듯 지금은 젊은 여성들이 성평등한 세상을 위해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혜화역 시위의 놀라운 점은 10~20대의 젊은 여성이 한국사회의 가장 오래된 억압인 성별억압체제를 전복하는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강남역에서 혜화역으로 향하는 여성들의 행진은 수천 년 동안 억압당해온 여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는 정치성과 역사성을 띈다.
이 시점에서 직접정치와 사회적 약자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꾸는 진보진영은 무엇을 할 것인가.
사회변혁에는 늘 강력한 백래시가 있어왔다. 혜화역 시위를 비롯 페미니즘 시위가 기존의 정치사안과 다른 점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아닌 남녀 입장의 차이, 즉 성별 대결이 매우 거세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젠더격차, 남녀임금격차, 유리천장지수가 최하위인 나라이다. 반면 여성의 교육수준은 세계 1~2위이다. 여성들이 느끼는 성차별지수는 매우 높은데 반해 남성들은 성차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매우 큰 문제다.(가 될 것이다.)
‘세계 최초 출산율 0명’, 여성들이 출산파업을 선언한 사회가 정상사회인가.
한국사회의 전망을 고민하고 대안을 열어가는 진보진영에서 여성문제는 여전히 여성들만의 문제일까. 6만의 젊은 여성들이 거리를 점령하는데도 여전히 여성문제는 사소한 문제인가.
진보진영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질문하고 학습하고 토론하며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지금은 혜화역의 분노를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분노에 귀를 기울이고 갈등을 조정하는 민주시민다운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우리는 2년여 전 1700만의 촛불로 평화와 민주를 민중의 손으로 쟁취한 자랑스러운 경험이 있다. 가장 극단적인 정치이념 대결이 촛불이라는 평화의 물결로 정화되고 낡은 체제가 걷히고 새로운 체제가 창조되는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었다. 지금의 혜화역 시위의 반목과 갈등 또한 민중의 지혜로 자정능력을 키우고 새것이 창조되는 역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진보진영은 더 나은 민주주의와 평등을 창조하는 길에 함께 연대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