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 “‘감세는 미덕’이란 신자유주의적 도그마 버릴 때”

조선일보가 ‘가진 자들’ 입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조세 개편안을 문제 삼자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가 정면으로 반박해 눈길을 끌었다. 재정개혁특위의 조세개편안은 외려 시민단체들이 “소득불평등 해소 의지가 있냐”고 질타할 정도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은 터였다. 

▲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준구 명예교수는 지난 4일 개인 홈페이지 개시판에 올린 <편 가르기 증세?>란 제목의 글에서 그날자 조선일보 사설 제목 <‘가진 자에겐 더 걷어도 된다’는 편 가르기 증세>을 거론하면서 “이 논리대로 한다면 과거 MB정부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부자감세’를 했을 때도 ‘편 가르기 증세’를 한 셈인데 내 기억으로 그 신문이 그때 그런 표현을 쓴 적은 전혀 없었다”고 꼬집곤 “부자들에게 감세 혜택을 주는 것은 편 가르기가 아니고, 조세 부담을 늘리는 것은 편 가르기라는 주장은 과연 어떤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가 차분하게 따져야 할 점은 과연 그와 같은 개편안이 가져올 귀결이 무엇인지이다. ‘편 가르기 증세’라는 감정적 표현이 개입되는 순간 차분한 논의는 불가능해진다”면서 “그 사설이 세제 개편안을 비판하는 구체적 내용을 봐도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많이 눈에 띈다”고 비판을 이어갔다.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이자·배당 등을 합친)금융소득이 1000만 원 이상이면 근로소득세와 합산해 최고 46.2%의 세율을 매기겠다는 내용”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 “물론 이 말에 한 마디의 틀림이 없지만, 얼핏 들으면 어느 정도 이상의 금융소득을 얻는 많은 사람들이 아주 무거운 세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면서 “금융소득에 이 최고세율이 적용되려면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 등 다른 소득이 1억 원 이상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다소간의 금융소득이 있는 많은 납세자들에게 적용될 세율은 그보다 훨씬 더 낮다”고 반박했다.

이어 조선일보가 46.2%의 세율을 적용 받는 납세자들을 ‘중산층’이라고 지칭한 것도 “분명 무리가 있다”며 아래와 같이 문제 삼았다.

“그 사설은 과세대상자가 4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고 적지 않은 중산층도 과세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자가 1600만 명 정도이고 사업소득자까지 포함하면 납세자 총수가 2000만 명이 넘을 텐데, 그렇다면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고작 2% 내외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을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건 어폐가 있지 않을까요? 이 세상에 상위 2%의 사람을 중산층으로 분류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요?”

또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금융종합과세 대상의 확대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증세가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가능성이 크다고 하자 “그런데 경제학자인 나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하나도 알 수 없다”고 일축하곤 “그 사설을 쓴 사람은 신자유주의적 감세정책이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신화를 믿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세율을 낮추면 노동 공급이 늘어나고 저축과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그와 같은 신화의 근거이지요. 바로 이 점에서 그 사설을 쓴 사람의 논리적 비일관성이 드러난다”고 통타했다,

즉 “신자유주의적 감세정책이 저축을 늘어나게 만든다면, 그 반대로 이자소득의 세율을 올리면 저축이 줄어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축이 줄어든다는 것은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인데, 어떻게 이자소득에 대한 증세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이자소득에 대한 증세가 소비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해야 마땅한 일”이라는 것.

이 명예교수는 “사실 이자소득에 대한 감세가 저축의 증가로 이어질지의 여부는 경제학자들도 잘 모른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정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자소득에 대한 감세에도 불구하고 저축은 크게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알리곤 “그렇다면 거꾸로 이자소득에 대한 증세를 해도 저축이나 소비에는 큰 영향이 오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리고 증세가 경기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균형재정승수’(balanced budget multiplier. 세금을 일정액 더 거둬 정부지출로 사용하면 국민소득이 바로 그 크기만큼 늘어난다는 의미) 개념을 “정부지출로 이어지는 증세는 경기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확장시키는 효과를 갖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곤 “그렇다면 증세가 경제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그 사설의 주장은 경제학원론에서 가르치는 기본원리를 무시한 것이 아닐까요?”라고 꼬집었다. 

그러곤 “여러 나라에서의 실험을 통해 감세정책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믿음은 허구임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들이 즐겨 부르짖는 ‘낙수효과’(trickle-down) 역시 한 점 신빙성도 없는 허구임이 의심의 나위 없이 밝혀졌다”면서 “이제는 ‘감세는 미덕, 증세는 악덕’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도그마를 헌신짝처럼 버릴 때가 됐다. 정부가 생각하기에 세금을 더 거둬야 할 필요가 있다면 당연히 증세의 길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 추가적 부담을 누가 져야 할지를 고려할 때 경제적 능력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능력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운다고 해서 무조건 이를 ‘편 가르기 증세’라고 몰아붙이는 건 합리성을 결여한 주장”이라고 비판한 이 명예교수는 “부자들의 경제적 능력에 비해 너무나도 무거운 부담을 지웠기 때문에 공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건전한 비판의 자세”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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