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겉과속 - 2018년7월6일

▲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통일농구경기에 참가하는 허재 감독이 3일 오전 서울공항에서 군용 수송기(기종 C130H)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1. 군화물기 C-130H

7월 5일 열린 남북 농구대회에 참가하는 남측 선수들과 정부 인사들은 군수송기를 타고 평양으로 갔다.

풍계리 핵시험장 해체 취재를 위해 북측으로 들어간 기자단이 군수송기를 사용한 예가 있지만 남북교류행사 참가자들이 여객기가 아닌 군수송기를 타고 간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 비행기에 통일부장관을 비롯한 정부관리까지 타고 갔다.

농구선수들과 통일부장관이 이런 구차한 여행을 하게 된데에는 촉박한 일정에서 전세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등 여러 사정이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미국의 대북 제재때문이었다. 미국이 북측에 들어갔던 여객기의 미국내 취항을 6개월동안 금지하는 제재를 시행중에 있기 때문이다.

남북문제에 관해서는 덜떨어지기로 유명한 일부 보수언론들은 선수단들이 불편한 여행을 한 것을 두고 ‘사상최초로 남측 군용기가 북측으로 갔다’며 대서특필 했지만 제재에 얽매여 있는 구차한 속사정을 가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풍계리 취재단이 군용기를 이미 사용했으므로 ‘사상최초’라는 것은 명백한 오보였다.

미국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평양에 갈 때 미군 수송기를 사용했고, 농구선수들이 타고간 수송기는 여객수송용으로 개조된 것인데 큰 흠이 되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폼페이오가 사용한 군용기는 원래부터 주요인물 탑승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통일부장관과 농구선수단들이 타고 간 수송기 C-130H는 대테러작전 등에 쓰이는 공군의 전술수송기를 억지로 개조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화물기에 의자를 설치한 비행기였다. 뭐라고 설명하건 군수송기였던 것이다.

한시간여에 걸친 짧은 비행시간이었지만 창문도 없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선수단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남측 선수단과 통일부 장관이 군수송기를 타고 온다는 사실과 그 속사정을 모를 리 없는 북측 인사들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아니 왜 화물기를 타고 오셨어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장면이다.

2. 대북제재

국제사회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지난 몇 년동안 웬만한 종교적 신념보다 강한 믿음이 있었다. ‘제재를 더 강화하면 북이 손을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북이 제재 때문에 곧 붕괴할 거라는 노골적인 믿음도 상당하였다.

이 신앙에 따라 박근혜정부는 ‘사상최고의 제재’를 거듭 요구하였고 앞장서서 동참하였다. 이 상태는 현정부 들어서도, 판문점선언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북에 들어간 여객기에 대한 제재는 유엔안보리의 제제가 아니라 미국이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제제다. 그러데 정부당국은 헌법보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보다 이를 귀중히 모시고 있다. 이러다 보니 화물기에 대표단을 태워서 보내는 한심한 일까지 벌이게 되었다.

미국이 제재의 끈을 놓지 못하고, 한국정부가 미국의 제재를 어기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는 사정은 제나름대로 있다.

미국으로서는 군사대결에서 패배한 마당에 제재마저 철회하면 북에 대한 명목상의 수단이 남지 않는다. 한미동맹에 매여있는 한국정부가 미국이 그어놓은 선을 넘지 못하는 소심증에 시달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제재가 별 실효가 없다는데 있다.

북이 그렇게 가혹한 제재를 견뎌낸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북에 대해 가해진 무역금지, 경제제재, 금융차단 조치는 실로 엄청났다. 횟수로만 따져도 1990년 이후 12차례에 걸쳐 제재를 받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에 들어와서만 8번, 2017년도에만 4번의 제재를 받았다.

그런데 그 제재를 받으면서 북은 나라를 그냥 지탱한 것이 아니라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였다. 최근 북을 다녀온 사람들은 8, 9년전에 비해 평양에 고층빌딩이 많이 들어서고 도시가 화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언론은 평양을 벗어나면 다르다고 깍아 내리려고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북의 경제성장율은 세계불황을 비웃는 듯 7∼8%대를 기록하였다.

북이 제재를 견뎌내는 것을 두고 ‘중국이 도와주기 때문이라는’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년 중국이 미국의 제제에 ‘성실히’ 동참하자 이런 주장이 쑥 들어갔다.

3. 자력갱생

경제봉쇄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자립경제를 아무리 높은 수준에서 구축해도 무역과 금융거래가 차단당하면 국가경제를 운영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리비아와 이란도 결국 견뎌내지 못했고, 나라가 크고 자연부원이 풍부한 러시아도 경제제재를 받으면 매우 힘들어 한다.

제발 북중 국경무역이나 공해상 환적이 방법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런 것으로 국가경제의 숨통을 트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황당한 노릇이다.

북미핵대결이 한창이던 지난날 평양을 방문한 미국 인사에게 북측 관리가 말하였다. ‘우리에겐 원자탄보다 더 강력한 게 있다’ 귀가 솔깃해진 미국 사람이 물었다. ‘그게 대체 뭐냐? 나한테는 말해다오.’ 북측에서 대답이 돌와왔다. ‘지도자와 인민의 일심단결이다.’ 당사자인 미국사람을 비롯하여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허탈해했지만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제부문 현지지도가 화제로 된 적이 있다. 평안북도 신도군과 신의주의 생산현장을 잇달아 시찰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의주방직공장과 신의주화학섬유공장에서 일군들을 질책했다는 소식이었다. 질책의 요지는 ‘자력갱생할 생각을 않고 조건타령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력갱생은 멋진 말이다. 자금이나 자재, 노동력을 대주지 않아도 자체로 알아서 하는 것이니 정부는 부담이 얼마나 가벼워지고 팔자가 얼마나 편해지겠는가.

하지만 자력갱생을 구현하는 과정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신의주방직공장과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도 당과 국가의 방침이 알려져 있을 것이며 당원이 있고 일꾼들도 있을 것이다.

자력갱생은 말못할 고생을 해야 하며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난관들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DPRKorea는 자력갱생을 국가경제의 기둥으로 세우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 힘으로 제재를 이겨내고 미국과의 군사대결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이것이 DPRKorea가진 비결이다.

자력갱생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흉내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이 비법을 가질 수 없다. 자력갱생은 지도자와 당과 국가, 인민이 하나로 굳게 뭉쳐야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넘지 못할 것같은 난관을 빈손으로라도 헤쳐나가겠다는 정신은 당과 지도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없이는 발현될 수 없다.

4. 제재의 족쇄

아직도 북이 제재를 못이겨 대화에 나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최근 북을 방문한 사람들은 북측 사람들이 ‘자신감에 넘쳐있고 일을 매우 열심히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재로 북을 꺽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여전히 제재에 목을 매달고 있다. 한국정부는 미국의 제재에 충실히 복무하느라 나라와 정부의 위신과 체면도 포기한다. 화물기에 대표단을 태워보내는 구차한 일까지 벌인 것이다. 판문점선언의 시대에...

지금 제재는 북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선택과 결정을 제약하는 족쇄로 되고 있을 뿐이다

대북제재는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에 어긋나는 행위다. 정부는 효력도 없는, 자기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인 제재의 족쇄를 하루빨리 풀어버리려야 한다. 정부에게 판문점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대북제재 전면무효화와 철회부터 단행해야 한다.

진보진영과 통일운동은 제재 철회 무효화 요구운동을 강하게 벌여야 한다. 대북제재 철회 무효화는 판문점선언 이행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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