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의 LP로 듣는 한국현대사(4) 아름다운 사람(1971)

90년대 김광석, 2000년대 안치환. 아마 이들이 가지고 있는 노래의 생명력은 현실에 대한 진단과 비판, 그리고 사회 참여의식에 있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폭압이 본격화되던 70년대 한국사회의 모순을 진단하고 이를 대중가요로 알려준 최초의 가수는 아마도 서유석일 것이다. 우리에게 서유석이란 이름은, 방송인이란 호칭과 약간은 어눌한 듯한 그의 음성을 흉내 내는 개그맨들의 성대모사를 통해 알려진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방송인이라 부르기엔 70년대 그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가 너무 강렬했다.

그가 종합편성채널인 JTBC의 전신이라고 할 70년대 민간방송 TBC의 대표적인 주말 가요프로그램인 ‘쇼쇼쇼’에서 불른 밥 딜런의 곡 ‘Blowing in the wind(이후 대학가에선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란 번안곡으로 불림)는 베트남 전쟁 반대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담은 곡이었다. 사소한 정부 비판 발언이라도 걸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으로 끌려가 고문당하기 일쑤였던 시절에 이런 반전 가요를 부른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당당히 이 노래를 불렀다. 이후 서유석은 한발 더 나아가 반전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불렀다. 그리고 노래 해설집에서 반전 평화를 말했다. “‘겨울비’는 전쟁을 가리키며 ‘누나’는 평화를 말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런 해석을 단 노래는 서유석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비야 비야’였다. 이스라엘 민요곡에 서유석이 개사한 가사를 붙였다.

72년 11월 나온 서유석의 2집은 ‘비야 비야’를 필두로 헤르만 헤세의 시를 노래한 ‘아름다운 사람’ 등을 담고 있다. 영어로 불렀던 ‘Blowing in the wind’는 서유석에 의해 ‘파란많은 세상’으로 바뀌어 세상에 나왔다.

가사는 바뀌었지만 세상에 대한 그의 시각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학교 앞에 책방은 하나요/ 대폿집은 열/ 이것이 우리 대학가에요/ 학교 앞에 책방은 하나요/ 양장점은 열이요” 아마 지금 서유석이 이 노래를 부른다면 “학교 앞에 책방은 없어요/ 술집은 수백이요/ 학교 앞에 책방은 없어요/ 커피 집만 열이요”라고 현 시류를 개탄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은 요지경’이란 곡에서 사회에 대한 그의 풍자는 더 날카로워진다. “일주일은 일곱 날이요/ 엿새 동안 죄를 짓고요/ 하루만 기도하면요/ 천당에 간다네.”

그런데 70년대는 그가 이렇게 가만히 앉아 노래만 부를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던 서유석은 73년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인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서 베트남전 종군기자의 기사를 여과 없이 내보내는 ‘사고’를 쳤다. 결국 베트남전의 문제점을 알렸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수배되어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에게 ‘긴급조치 9호’는 가수생활을 접어야 할 위기로 다가왔다. 당시 풍기문란이란 이유로 수많은 포크가수와 록가수에게 들씌워진 대마초 파동이 서유석에게도 밀려왔다.

그렇게 쫓기던 그는 76년, 지금은 국민가요가 된 ‘가는 세월’로 다시 주목을 받았고 이후 ‘그림자’ 등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90년대 초 일본에서 독도 망언이 이어질 때 서유석은 ‘홀로아리랑’(1989)을 불러 독도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환기시켜냈다. MB정권 시절 언론탄압의 시작이 됐던 시사저널 사태로 만들어진 ‘시사IN’ 창간 초기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서슬 퍼런 독재의 총칼 앞에서도 당당히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노래하던 가수 서유석.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지만 풍자와 비판의 노래와 가수는 여전히 필요한 거 같다.

 

* 최현진 담쟁이기자는 단국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매체인 ‘코리아포커스’ 기자로 일했으며 통일부 부설 통일교육원의 교육위원을 맡기도 한 DMZ 기행 전문해설사다. 저서는 <아하 DMZ>, <한국사의 중심 DMZ>, <DMZ는 살아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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