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경제수석 3명을 전격 경질했다. 소득주도성장의 이론가인 홍장표 경제수석과 반장식 일자리수석이 교체된 것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유임됨으로써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큰 틀은 유지될 것이고, 홍장표 수석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재정비해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일정한 균열이 발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고용은 더 악화되고, 빈곤계층의 소득 역시 더욱 열악해졌다. 벌써부터 재계와 보수언론들은 소득주도성장론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열악한 민생을 자기들이 대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형국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속도조절이나 후퇴, 폐기가 아니라 더 강력한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재구성해 강도 높게 밀고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그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행 방향과 방식에 대해서는 더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우선 일자리와 소득지표가 악화되고 있는 원인과 관련해 보다 명확하게 짚고 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 일자리와 소득이 악화된 근본요인은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재벌특혜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지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해 전북지역에 GM정규직 공장에서부터 하청부품계열사, 동네 상점들에 이르기까지 초토화된 것이 왜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단축 문제인가? 울산, 거제, 진해, 통영, 군산 등지에서 조선소가 문을 닫고 일자리가 줄어 지역경제가 파탄 난 것이 왜 소득주도성장론 때문인가? 전부 먹튀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산물이며, 이명박근혜 시절 정경유착과 경제성장 실패로 인해 발생한 기업파산과 구조조정의 산물이다.
왜 공기업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쫓겨나고, 구의역 사고 같은 것이 빈발하고 청년들이 일자리를 못 찾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민영화정책의 산물이며, 비정규직 고용정책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이 힘든 것은 부동산 투기에 미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군림하는 사회에서 높은 임대료 때문이고, 농가소득이 취약한 것은 국제 농업자본에 굴복한, 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농업자본에 굴복한 FTA로 농촌경제가 파탄 난 때문이다. 그나마 최저임금정책과 청년수당, 노인수당, 농민수당 등 약간의 복지정책이라도 밀고 있기에 서민들이 숨이라도 쉬는 것이고, 가느다란 희망이라고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정책을 후퇴하거나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조절하는 것은 자기 눈을 자기가 찌르는 것이다. 지금 경제정책에서 필요한 것은 보다 강력하고 총체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이지 속도조절이 아니다.
지금의 고용과 소득의 악화는 재정정책을 앞세우면서도 재벌개혁정책을 강하게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필연적 결과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재벌개혁 등 경제적폐 청산과 경제대개혁 정책이 연계될 때 소기의 성과를 볼 수 있다. 한쪽에서 정부가 예산을 들여 소득과 복지를 조금 올려놓고, 중소기업 진흥책을 추진해도, 시장에서는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재벌이 약탈해간다. 정부는 예산을 들여 고용을 창출하고 있지만 재벌은 대량해고와 비정규직화, 외주화, 국외진출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원회는 재벌개혁을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재벌의 지배구조는 자사주 마술을 이용한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더욱 강화돼 있다. 최근 재벌의 그룹 계열사 중 공정위 규제대상 91개사(9.3%)의 지난해 내부거래액은 7조9183억 원에 달해 2년 전에 비해 23.1%(1조4857억 원)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재정정책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비정규직, 여성, 노인, 청년, 빈민, 농민 등으로 흘러들어가는 약간의 소득보전조차 시장에서 소비재 구입과 금융, 주거, 교육, 보건, 문화 등의 영역에서 재벌에게 몽땅 털리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재벌과 금융, 먹튀자본의 약탈경제를 그대로 두고 재정과 예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정부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 복지정책, 임금정책, 노동시간 정책 등 개별 정책 간의 적절한 공조와 패키지화로 소득과 고용 효과를 보장하는데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중심에는 경제사령탑 내에서 재정정책과 재벌개혁을 강하게 연계하고, 경제적폐 청산과 경제대개혁, 소득재분배 효과를 더욱더 조밀하게 패키지화하는 마인드 통일이 약하다는데 있다. 경제사령탑의 교체와 재구성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재벌개혁, 경제적폐 청산은 미뤄두고 재정투입에만 의존해 소득과 복지, 일자리를 해결하겠다는 식의 불일치를 그대로 두고서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개혁 동력 창출에서 보다 혁명적 발상이 필요하다. 재정정책과 공공복지 창출, 완전고용과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 황금기를 열었던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책은 2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주의혁명과 민족해방혁명, 유럽 선진국에서 강력한 노동세력의 등장을 통해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이를 인정한 자본의 양보와 타협의 산물이기도 했다.
촛불항쟁에서 정치교체를 주도한 이 땅의 민중이 아직은 경제권력을 교체할 광장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신자유주의 경제에 포섭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조건에서 문재인 정부가 가뜩이나 부족한 인적자원을 가지고 상층의 전문가와 약간의 재정만으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재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나 국제적인 저성장구조와 무역전쟁,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이행기에 재계의 보이지 않는 경제보이코트가 준동하면 쉽지 않은 문제이다.
최근 요란하기만 했지 솜방망이에 불과한 종부세 정책, 밥상 차려놓고 숟가락 뺏는 식의 최저임금 정책,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동시간 단축 정책 등이 나타난 것은 경제개혁 동력에 대한 자신감 부족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선거에서 완벽하게 승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시장에서는 여전히 야당이다. 경제권력은 여전히 재계와 시장의 손에 있다. 그리고 시장은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있다. 계속 물건을 옮기려고 하지 말고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적폐 청산과 경제개혁 동력을 창출하는 당사자 운동을 강화하는 정책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노동권을 강화하고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등의 기본권 강화를 경제개혁 동력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많아지면 복잡하다는 식이다. 일부 전문가가 아니라 국민이 경제의 권력지도를 바꿀 수 있다. 경제개혁을 위한 국민적 운동은 진보와 광장의 몫이기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보다 과감한 행보 역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