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자유민주주의 -> 민주주의, 유일합법정부 삭제 조선일보 불만

교육부가 21일 중·고교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하였다. 행정예고 기간은 22일부터 내달 12일까지 20일간이다.  
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해 만든 집필기준 시안에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지고 그냥 ‘민주주의’로, ‘광복 후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으로 바뀌고,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기술을 삭제할 예정이다.

이걸 두고 조선일보는 오늘 사설에서 <결국 교과서에서 '자유' '유일 합법 정부' 없앤다>는 제목으로 교육부 행정예고 시안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반면 서울신문 사설은 <행정예고 역사 교과서 개정안, 큰 방향 옳다>며 교육부 입장을 옹호하였다.

▲ 역사교과서 새 집필기준안[그래픽사진 : 뉴시스]

조선일보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밝힌 우리 국가의 기본 원리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고 한 것과 배치되며, 좌파 세력이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시장경제'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온 조치라고 비판하면서 결국에는 좌파들이 헌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도 빼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현행 헌법에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표현과 함께 119조 ②항에서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가 있다. 때문에 교육부 시안이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는 경제민주화 조항에 경제주체간 ‘상생’을 추가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조선일보 말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항목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차기 개헌에서 국민적 토론이 필요한 대목이다.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포괄하는 자유, 평등, 인권, 복지 등 다양한 구성 중 일부만 뜻하는 협소한 개념이라고 설명했고, 서울신문 또한 여기에 동의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지금의 복잡다단한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심각하게 농단하는데 펜으로 앞장서온 조선일보가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만났을 때 부익부빈익빈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정치경제학의 상식도 외면하는 주장이다.
또한 서울신문 주장대로 역대 교과서 대부분이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써 온 사례에 비추어 보면 조선일보의 과민반응은 무엇을 지키고자 함인지 명백하다.

또한 조선일보는 이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표현이 삭제할 것을 우려하며, 좌파들이 '자유'만 싫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통성' 역시 혐오하고 있다고 하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세력이 집요하고 치밀하게 교과서를 바꾸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미있는 것은 일부 좌파 세력은 조선일보 사설이 1948년 12월 유엔총회 유엔결의의 앞·뒷부분을 교묘히 편집해 '대한민국은 38선 이남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궤변을 퍼트려 왔다고 주장한 점이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유엔 결의안 195(Ⅲ) The problem of the independence of Korea’(한국의 독립 문제)의 원문을 뉴라이트 계열 학자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대한민국 역사>란 책에서 번역한 것을 살펴보자. ‘유엔총회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선거를 감시하고 자문할 수 있었으며 모든 한국인의 압도적 다수가 살고 있는 한국의 그 부분에 대해 효과적인 통제권과 관할권을 갖는 합법적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하였다. 대체로 정확한 번역이라고 평가되는 이 번역문의 요지는 대한민국 정부의 관할권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관할 가능한 지역이라고 명확하게 나와 있다. 그 동안 누가 국민을 속여 왔는지는 차차 더 따져볼 일이다.

서울신문 사설은 여기에 더해 지금의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은’이란 기술은 사실상 사문화한 표현이고, 1991년 9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서 서로를 합법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모순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남북은 19991년 12월 기본합의서 전문에 ‘쌍방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명기했다면서 작금의 남북관계를 고려한다면 ‘유일 합법정부’는 낡은 틀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선일보 사설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현행 교육과정에서 ‘광복 후 대한민국의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으로 바꾼 점에 대해 서울신문 사설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대한민국 건국이 일제하 임시정부에서 시작해 광복 후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이 됐다’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러한 조치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다는 비난은 억지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중고등학생들이 우리나라 사회문화계열 교과서들을 암기과목으로 취급하거나 매우 어려워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거짓을 이야기하거나 이런 저런 개념으로 역사와 현실을 은폐시켜 왔기 때문이다. 실제가 아닌 것을 가르치니 어려울 수밖에. 이번 교과서 개정안이 그런 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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