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끝났다. 진보정치세력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앞으로 진보정치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눈길을 끈다. 어쩌면 식상할지 모를 진보의 단결, 통합을 얘기했다. 민플러스의 논지와 무관하게 지방선거 이후 진보정치의 진로를 모색하는데서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싶어 이 교수의 허락을 얻어 싣는다. 민플러스는 지방선거 이후, 더 정확히는 한반도 대격변기 진보정치의 진로에 관한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적극 소개하려 한다. 이 교수 글에 대한 반론도 좋다. 기고를 환영한다.[편집자]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 처음 한 말이 나에게는 그 어떤 말보다 오래 여운을 남긴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것, 즉 오랫동안 북조선의 귀와 눈을 가렸던 편견과 관행이란 것이 대체 어떤 것일까? 여러 해석이 있을 것이다. 나는 미국에 대해 그동안 북쪽이 가졌던 편견과 관행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행위에서 유추하여 하나의 행동 지침을 만든다.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타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침을 여전히 따른다. 과거에 성공했기에 여전히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것을 생각해 보면 그 행동 지침은 이제 편견이며 관행이 된다. 그런 편견과 관행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시대의 변화를 보지 못하게 한다.

사실 우리는 미국이 제국주의적으로 세계를 침략해 왔던 수많은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 미국도 이제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힘이, 정치 경제적인 힘이 전면적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에 정치적 이단아라고 할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이미 예측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이 여전히 제국주의적으로 침략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행동하지 않았던가? 김정은 위원장이 편견과 관행이라 했던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런 변화된 시대에서 본다면 새로운 행동의 지침이 필요하다. 이제 상대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무기를 내려놓자. 그것은 선제적인 평화의 노력이고 김대중 선생의 햇볕정책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 끝에 우리가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어제 지방선거가 끝났다. 진보운동은 너나 할 것 없이 비참한 성적을 얻었다. 어려운 환경에도 맨몸으로 선거에 나섰던 모든 진보 후보, 모든 진보 당원에게 박수를 보낸다. 편하고 배부른 길이 있다는 것을 그들인들 왜 몰랐겠는가? 그럼에도 이 길을 택한 그들이 비참한 성적을 받았다고 폄하될 일은 아니다. 

고난을 택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진보운동이 마침내 이 땅에 적절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제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아직 섣부르지만 그런 고민 끝에 쓰는 글이다.

그런 고민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바로 김정은 위원장이 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쪽 남한에서 오랫동안 진보운동을 해온 우리들의 눈과 귀를 가렸던 편견과 관행은 무엇이었던가?

선거를 본 나의 마음에는 역시 진보의 대단결이라는 길 외에는 어떤 길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 아무도 진보의 단결이 가능하리라 믿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 통합진보당의 실패 때문일 것이다. 그 정점에서 지금 정의당과 지금 민중당 두 세력의 분열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분열의 원인을 생각해 보자. 서로의 감정과 오해나 착각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시대였다. 이명박, 박근혜 등 반북 보수세력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반북 이데올로기를 불어넣었다. 그런 과정에서 이른바 종북의 3대 시볼레쓰(북핵, 북의 세습, 북의 인권/ 편집자: 일종의 관문을 뜻함)가 제기되기도 했다. 국정원, 정보사, 경찰, 조중동, 종편 등을 동원한 여론 조작으로 종북몰이가 대두했다. 

진보운동은 여기서 갈등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반북적 입장을 분명히 하자는 쪽과 남북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반북적 태도만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쪽이 충돌했다. 결국 반북 보수세력의 장난에 진보가 휩쓸려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적의 분열 공작에 진보세력이 빠져든 것이라 하겠다. 

분열의 원인을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거꾸로 이제야 말로 분열이 치료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다가온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조미관계와 남북관계가 평화의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선거를 통해 그 동안 종북몰이를 통해 진보의 분열을 꾀해 왔던 반북 보수세력도 몰락했다. 어디 그 뿐이랴? 과거 종북몰이에 편승했던 반북 진보세력조차 그 누구보다 앞장서 남북과 조미 사이의 평화체제 구축을 찬양한다. 

이제 진보를 분열시켰던 결정적 요인, 종북몰이, 종북의 3대 시볼레쓰는 사라졌다. 아니 사라져 간다. 나머지 국내 정치와 경제에 관한 여러 입장에 관한한 사실 그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대동소이하다. 그렇다면 이제야 말로 진보가 단결할 결정적인 계기가 아닌가? 

물론 그동안의 감정대립이 있고 서로 간에 상처가 남아 있다. 그런 상처와 감정은 이제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상대가 용서를 빌어야 나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의 편견과 관행에 사로잡힌 생각이다. 내가 먼저 용서를 빌면 상대도 용서를 해주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생각한다면, 우리 진보세력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진보가 단결하지 않는 한, 국민들도 진보에게, 너나 차이 없이 마음을 열어 주지 않는다. 이번 선거를 보라. 국민은 박근혜를 타도하는 데 가장 앞장선 진보세력이 아니라 뒤에서 어정쩡하게 낙과만 주웠던 민주세력에게 마음을 주었다. 왜 국민은 진보세력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는가? 이 선거를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진보의 분열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평가이다.

그렇다면 마치 북조선과 미국이 세계 평화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진보세력도 과거를 묻어두고, 다시 한 번 단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대가 변했으니까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이미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2년 전에 발표한 책에서 보았다. 나는 사람들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에 특별히 그 책에 대한 서평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때 서평을 발표할 때 참석했던 과거 통합진보당의 국회의원이셨던 분은 내가 전한 이정희 대표의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가슴에 쌓인 분노와 고통을 어찌 내가 잊겠는가? 그 후 나는 나의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벌써 2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도 그 때 이정희 대표는 용기 있는 말을 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그 분의 마음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분도 그 눈물로 모두 용서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제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말한다. 이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렸던 편견과 관행, 즉 상대는 우리를 짓밟으려 한다는 두려움과 그에 대한 분노를 잊자.

그만큼 우리도 이제 힘이 생긴 것이 아닌가? 힘이 있는 자는 오히려 너그럽다. 우리도 이제 너그러워지자. 더 이상 유심노조라는 말은 잊어버리자. 국민이 웃을 줄 모르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단결하겠다고 말해 보자. 두렵겠지만 이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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