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북미관계 수립 위한 기본합의 성격… 적대정책 CVID, 애초 포함 불가능

▲ 사진 : 뉴시스

김정은 북한(조선)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 채택한 공동성명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위한 기본합의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언론과 외교가에서 ‘북미관계 정상화’라고 표현해 왔던 그것이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전체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직후 서명식에서 말한 것처럼 “굉장히 포괄적”이다. 또 함축적이며 선언적이다. 길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체가 11개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식 뒤 회견을 열어 장시간 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주요 발언도 소개할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한 셈이다. 

공동성명은 지난 2000년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인 6.15공동선언을 연상시킨다. 6.15공동선언은 분단 이래 처음으로 남북정상이 직접 만나 통일을 어떤 원칙과 방식으로 실현할지(1, 2항)를 큰 틀에서 합의한 첫 문서다. 마찬가지로 포괄적이었다. 그리고 이후 정상회담들에서 채택한 10.4선언과 판문점선언의 초석이 됐다. 

70년 적대한 두 나라 정상이 ‘새 관계’ 수립 첫 약속

공동성명도 분단과 전쟁으로 무려 70여 년간 적대해 온 두 나라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직접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을 확약한 첫 문서다. 후속 실무협상은 물론, 평양과 백악관이 거론되는 2, 3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마련할 합의문, 북미관계의 척도가 될 것이다. 

핵심 합의사항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노력 ▲전쟁포로, 전쟁실종자 유해 수습, 이렇게 4가지. 

합의사항의 나열순서가 비중을 반영하는 만큼 첫 북미정상회담의 최대 의제가 바로 1항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임이 확인된다. 그래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두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위한 기본합의’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공동성명 서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견고한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사안들을 주제로 포괄적이고 심층적이며 진지한 방식으로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힌 게 이런 분석을 방증한다. 회담 의제가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두 가지였음도 알 수 있다.

대부분 언론이 공동성명에서 가장 주목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안전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한 것은 사실 두 의제를 합의로 이끈 매개고리 내지 디딤돌이라고 하겠다. 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처럼 번호를 매긴 합의사항으로 분류하지 않고 공동성명 서문에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명시한 것도 ‘안전보장 제공 약속’과 ‘완전한 비핵화 약속’ 맞교환의 비중이 크지 않음을 시사한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수히 쏟아져나온 관측대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은 적대관계 청산과 국교수립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북제재 해제와 군사적 대결 중단, 연락사무소 개설 등이 여기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북미수교는 가능한 한 빨리 하기를 원하나 지금은 시기상조”라며 대북 대사 파견에 대해서도 “아직 그 얘기를 하긴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견에서 밝힌 데 따르면,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폼페오 미 국무장관과 북한(조선)의 고위급이 다음 주에 후속협상을 갖는다고 한다. 물론 후속 실무협상에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문제만 다루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후속 고위급 실무협상은 새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완전한 비핵화 등 굵직굵직한 의제가 여럿인 만큼 이번 북미정상회담 준비과정처럼 분야별 실무협상 결과를 취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완전한 비핵화’의 목표=“핵 없는 한반도 실현” 

공동성명 합의사항 2항은 북미가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키로 한 것인데 정상회담 개최 전 주요 관심사였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추진 문제다. 이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조만간 실제로 종전이 있을 것”이라며 말했다. 종전선언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는 이어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서도 “법적 효력과 상관없이 한국과 중국을 참여시키는 게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북의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 해제 의향을 밝혔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3항에서 북한(조선)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2018년 4월27일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약속한 대목이다. 미국과 합의문에 남북간 합의인 판문점선언을 굳이 상기시키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이유는 왜일까? 판문점선언의 관련 문구를 보면 가늠할 수 있다. 판문점선언 3항의 4번째 합의사항인데 내용이 이렇다.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이에 따르면 ‘완전한 비핵화’는 “핵 없는 한반도의 실현”이 목표인 만큼 북한(조선)만의 핵 폐기를 뜻하지 않는다. 북이 정부 성명 등으로 거듭 강조해 온 미국의 핵무기 철거도 사실상 함축하고 있음이다. 북은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함으로써 선언 자체의 의의를 부각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이 노력할 ‘완전한 비핵화’에 미국 핵무기도 포함됨을 간접화법으로 강조한 셈이다.

앞서 지난 4월 한겨레는 북미정상회담 논의 상황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북이 비핵화에 상응하는 ‘군사위협 해소 및 체제 안전보장’ 방안으로 ▲미국 핵 전략자산 한국에서 철수 ▲한미연합훈련 때 핵 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북과 미국의 수교를 요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 뒤 미국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한국 핵우산 제거 문제는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주한미군 문제와 마찬가지로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완전한 비핵화’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과정을 곧 시작할 것”이라며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김 위원장이 회담에서 “북의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를 약속했다”고 알리기도 했다. 북부 핵시험장을 공개 폐기한 김 위원장이 이번엔 미국의 또 다른 핵심 ‘우려사항’인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시설 폐쇄로 선제적 행동조치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내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효과가 기대된다. 

‘새 북미관계’ 약속한 공동성명에 적대정책 CVID를 넣는다?

공동성명 4항 ‘전쟁포로, 전쟁실종자 유해 수습’은 김정은 위원장이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만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준 ‘선물’이라고 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대선 당시)미군 (한국전)전사자 유해 귀환 요청을 많이 받았고, 김정은 위원장과 송환에 합의해 6000여구 유해 발굴과 귀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양국은 지난 1996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운산과 장진호 일대에서 미군 유해 400여구를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10여 년 동안엔 유해 발굴이 중단됐다. 

끝으로 공동성명에서 비핵화 관련 표현이 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인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왜 CVID가 빠졌는지를 질문 받자 “시간이 없었다. 나는 여기서 하루 회담했다”면서 “성명을 봐라. 표현이 굉장히 강하다”고 비껴갔다. 

하지만 공동성명의 핵심내용과 성격상 CVID를 담는 건 애초 불가능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CVID는 미국이 조지 부시 대통령 집권 1기인 2001-2005년에 수립한 북핵 폐기 원칙이다. 당연히 대북 적대정책의 하나로 채택된 것. 그런데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중단하고 북한(조선)과 ‘새로운 관계’를 수립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북미 정상은 공동성명 뒷부분에 “북미 간 수십 년의 긴장과 적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공동성명에 적시된 사항들을 완전하고 신속하게 이행”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수십 년의 긴장과 적대를 극복’하겠다고 약속한 역사적인 공동성명에 과거 미국 정권이 수립한 대북 적대정책의 대명사격인 CVID를 담는 건 북한(조선)이 결코 수용할 수 없을뿐더러 미국 역시 명분이 없다. CVID와 ‘새로운 북미관계’는 양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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