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겉과속 - 2018년 5월26일

1. 한밤중의 대책회의

5월23일 밤8시가 넘은 시각, 백악관에서는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부통령 마이크 펜스, 미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오, 백악관 비서실장 존 켈리, 그리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 등이었다고 한다.

그 전날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리비아처럼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데 대한 DPR Korea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담화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직후였다.

이 담화에서 최선희 부상은 펜스를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지칭하며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면 북미정상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담화를 전해들은 백악관은 ‘호떡집에 불난 것’ 꼴이 되었다. ‘DPR Korea가 정상회담 거부선언을 하여 미국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한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밤늦은 시간에 긴급회의가 열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자!’ 이것이 이 회의에 모인 자들이 고안해낸 대응책이었다.

그런데 개최한다고 발표한 정상회담을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북미정상회담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일이다.

이들은 DPR Korea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미국의 체면과 위신이 덜 깎이면서 정상회담을 포기하는 방법을 궁리해내느라 밤새 끙끙댔다.

날이 훤하게 밝아올 시간이 되어서야 이들은 트럼프가 DPR Korea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정중한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고 이를 공개하는 ‘묘수’를 찾아냈다.

‘친애하는 위원장께 Dear Mr. Chairman’로 시작되는,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는 트럼프의 편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로써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어온 북미정상회담 개최는 일단 중지되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악수하고 있다.

2. 때늦은 후회

그런데 문제는 ‘DPR Korea가 곧 정상회담을 거부할 것이다’는 이들의 판단이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는데 있었다. 미국은 ‘차이기 전에 먼저 차는’ 영리함을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차려지고 있는 밥상을 걷어차는 돌출행동을 한 것이었다.

횡설수설하며 정상회담을 못하겠다고 우는 소리를 한 트럼프의 편지에 대해 DPR Korea는 ‘트럼프, 우리는 네가 대화 반대론자들 때문에 고생 많이하고 있는 거 잘 알고 있다. 형편 풀리면 다시 연락해라’는 뜻의 입장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매우 당혹스러워졌다. 전날 밤 ‘DPR Korea가 곧 회담 거부를 선언한다’던 존 볼턴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망신 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던 그들 말을 듣는 게 아니었는데…’ 트럼프는 밤새 시달림을 견디지 못하고 그날 아침 그 편지에 사인을 한 것을 후회하였을 것이다.

트럼프는 결국 편지를 보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6월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는 갈팡질팡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이 벌인 정상회담 취소소동은 국제사회에 찌질한 존재가 누구인지, 대범한 나라가 누구인 것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잘난 체하기 좋아하고 자기과시욕이 강한 트럼프가 왜 이런 ‘찌질한’ 선택을 하였는가.

트럼프는 공개편지에서 정상회담을 포기하는 이유가 ‘최선희 외무상 부상의 담화’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런 일 때문에 정상회담을 안 하겠다는 건 억지고 생떼다. 미국의 처지가 매우 곤란하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지난 3월8일 트럼프가 DPR Korea의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인 때부터 미국의 네오콘들은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것, 한반도에서의 전쟁책동과 대북 적대정책이 폐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갖은 수작을 부렸다.

여러 종류의 비핵화를 들먹이며 회담개최의 장애물로 만들려고 하였다. 북미간 물밑협의에서 거론되지도 못한 사안들을 협의하고 있는 것처럼 퍼트리는 언론플레이 등으로 DPR Korea를 자극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수작에 DPR Korea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초조해진 네오콘들은 마이크 펜스에게 외신기자회견을 하게 했다.

펜스는 이 자리에서 ‘핵협상을 하지 않으면 리비아 모델처럼 끝이 날 것’이라는 등의 악담을 마구 쏟아냈다. 미합중국 부통령 펜스의 회견은 정상회담이 예정된 상대에게 해서는 안 되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는 평창올림픽에서 3류 정치인이라는 것을 남김없이 보여준 그의 자질에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회담 개최를 파탄 내려는 목적에서 감행된 짓이었다.

이에 대한 최선희 부상의 담화는 북측으로서는 당연한, 불가피한 대응이었다. 그런데 북측은 이를 국가기관의 논평이나 성명으로 발표하지 않고 외무성 부상이 개별적으로 한 조선중앙통신사와 담화 형식을 취하였다. 비록 ‘북미정상회담 재고려’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 담화를 ‘DPR Korea가 곧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선언을 한다’는 징조로 해석하였다.

그 이유는 백악관의 실세인 존 볼턴을 비롯한 대화 반대론자들이 정상회담 중도파탄을 너무나도 애타게 바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헛것이 보인 것이었다. 착각과 오인, 이것은 트럼프가 스타일을 완전히 구긴 찌질한 선택을 한 원인이었다.

물론 이 소동에는 착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존 볼턴이 ‘DPR Korea가 곧 정상회담을 거부할 것’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얼마나 믿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에게는 그 주장이 트럼프를 정상회담 취소로 밀어붙이기 위한 수단으로 더 중요했을 것이다. 하여튼 볼턴은 확신에 찬 태도로 트럼프를 압박하였고, 트럼프는 결국 그 수작에 말려들었다.

3. 달라진 것은 없다 

북미정상회담은 ‘정말 열릴 것인지’부터가 세계의 관심이었다. 그만큼 북미간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가 길었다. 그 골 또한 엄청나게 깊다. 무엇보다 상호관계를 규제하는 본성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북미관계의 전환을 막으려는 네오콘들의 책동은 집요하다. 백악관 실세들의 면면을 보면 북미정상회담은 파탄 나는 것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전쟁미치광이와 다를 바 없는 존 볼턴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홍반장’ 부통령 마이크 펜스는 네오콘이 트럼프를 통제하기 위해 박아 넣은 인물이다.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오 한 사람 정도가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찬성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도 최근에야 대화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세상의 우려대로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원활하게 추진하지 못하였다. 네오콘의 압박을 이겨내진 못한 것이었다. 유명한 관종인 그가 평양행을 포기할 때부터 주도권은 네오콘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가 23일 벌인 정상회담 취소소동은 이런 흐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북미관계가 변하면 한반도평화가 더 빨리 정착될 수 있고, 한국정부가 판문점선언을 이행하기도 쉬워진다. 그래서 북미정상회담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에게는 트럼프의 회담포기 소동이 허탈한 일이다. 게다가 그 전날 대한민국 대통령을 워싱턴까지 오가게 만드는 ‘훈련’을 시킨 격이 되었으니 분노까지 치밀어 오를 것이다. 촛불혁명 시대의 대한민국 국민은 더 이상 미국의 ‘하수인’이나 ‘아랫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과 북, 한반도 그리고 북미관계에 시작된 변화는 한반도에서의 힘의 균형이 변화된 결과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북미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단지 미국의 대북대결주의자들이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북이 대화에 나오는 것은 제재 때문이다’는 거짓 주장과 ‘핵 폐기를 하면 경제지원을 해주겠다’는 요망한 소리를 하며 적대정책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지금의 북미관계, 한반도정세는 ‘형세는 완전히 기울었으나, 승부가 난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상태다. 한쪽이 자기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에 진 선수가 끝까지 판정에 불복하면 무릎을 꿇리거나 때려눕히는 수밖에 없다. 정상회담 취소소동은 북미간에는 대결이 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 대결은 너무나 위태로운 일이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결정권도 없이 일어나는 불의의 사태를 겪어야 하고 커다란 고통을 입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은 열려야 하고, 북미관계는 협상과 대화의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북미관계의 변화는 결정권자가 바뀌거나 그 사람의 생각이 변해서 일어나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힘의 변화가 불러오는 거대한 역사적 변화다.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미정상회담은 성사되기 어렵게 되었지만 북미정상회담은 언젠가는 열리게 되어있고 미국은 이 흐름을 비켜가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북미는 여전히 대결상태에 있다는 것, 더불어 미국은 적대적 대결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대로다. 미국이 정상회담 취소소동을 벌이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북미관계 전환을 추동하는 또 하나의 힘은 남북관계 발전에 있다. 우리 사회에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와 압력을 견뎌내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판문점선언 이후 각종 언론에 출연하는 자칭 북한(조선) 전문가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것이 현실인 것은 어느 정도 맞지만 남북이 힘을 합치면 얼마나 거대한 존재가 되는지 그들은 생각하지 못한다. 미국의 영향력이 한반도에서 급속히 쇠락하고 있다는 사실도 감안하지 못한다.

이번 정상회담 취소소동으로 미국의 위상에는 큰 흠집이 났다. 내외의 반발에 부딪힌 트럼프는 ‘싱가포르 회담은 예정대로 열릴 수도 있다’고 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번 소동으로 미국은 체면을 구긴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DPR Korea와의 관계에서 더욱 수세에 몰리고 피동에 빠지게 되었다.

정세와 환경은 한반도평화와 공동번영으로 나아가는 데 더욱 유리하게 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우리 힘을 믿어야 한다. 어떤 시련과 난관이 있더라도 우리 힘으로 판문점선언을 이행하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다져야 한다.

미합중국 대통령 트럼프는 ‘각하 His Excellency’라는 극존칭을 사용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DPR Korea는 위대한 번영과 부, 그리고 평화를 가질 기회를 놓쳤다. 이 기회를 놓친 일은 진실로 역사에 슬픈 순간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트럼프와 미국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게 훨씬 더 어울릴 말이다.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 말고, 네오콘의 위협에 겁먹지 말고 북미정상회담에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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