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겉과속 - 2018년 5월11일

1. 각광받는 단식

프로야구 경기 용어 중에 ‘무관심 도루’라는 게 있다. 승부를 뒤집기 힘들만큼 점수차가 벌어진 경기의 종반에 뒤지고 있는 팀의 주자가 도루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경우 이기고 있는 팀에서는 이 주자가 2루로 가거나 3루를 훔치는 것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다음 루에 가는 것에 성공하더라도 도루로 기록되지도 않는다.

‘부고에 나는 것을 빼고는 신문에 나는 것은 다 좋다.’ 보수정치인들이 홍보에서 신조로 삼는 말이다. 정치인들의 활동이 대중의 관심을 받기가 힘들고 인기를 끌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정치인이 있다. 오늘 9월11일부로 9일째에 이르는 단식을 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국회의원 김성태가 그 주인공이다.

이제까지 여러명의 정치인이 단식을 하였다. 1983년 5.18 광주항쟁 3주년이 되던 날부터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단식을 했던 김영삼, 1990년 지자제 전면실시 등 4개항을 요구하며 단식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세월호가족 김영오씨의 단식중단을 촉구하며 동조단식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6년 가을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는 것을 막아보려고 시작했던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의 황제단식이나, 박근혜의 석방을 요구하며 벌였던 국회의원 조원진의 단식소동도 있었다.

이 중 국내외의 많은 관심을 받거나 민감한 사안으로 된 단식도 있지만 효과도 보지 못하고 세상의 주목을 끌지 못한, 고생만 하고만 단식도 적지 않다. 그에 비하면 김성태는 행복한 편이다. 이처럼 높은 지지를 받은 단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식을 하는 사람의 주장과 요구에 뜻을 같이 하더라도 단식은 반대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다. 그런데 김성태가 단식을 하겠다고 하자 ‘끝까지 하라’는 성원이 넘쳐났다. 그가 혹시라도 중간에 그만두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각광받은 단식은 없었다.

단식은 열흘은 넘어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그런데 김성태는 시작 당일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관심 단식’의 서러움을 맛보아야 했던 정치인들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김성태가 무엇 때문에 단식을 하고 있는지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은 아픔이라면 아픔이라고 할 수 있다. 단식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자유한국당의 지지도도 함께 추락하고 있는 것도 대략 난감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이 민심이고 시대의 흐름이다. 진작 없어져야 할 낡은 흉물이 사라지지 않고 몽니를 부리면 저런 험한 꼴까지 당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성태의 단식에 대해 쏟아진 뜨거운 지지와 관심은 국정농단, 분단적폐집단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 일이다.

시대 변화와 역사 흐름에 엇서거나 뒤쳐지면 보수건 진보건 이와 같은 한심한 신세가 되는 것을 면할 수 없다.

2. 난처해진 북한전문가들

5월10일 미합중국 대통령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은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한다고 공개하였다. 싱가포르가 정상회담 개최지로 유력하다는 언론보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미정상회담은 평양에서 열릴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이 예상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으며 싱가포르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해서 틀린 예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확인되지 않는 보도이긴 하지만 북측에서는 평양 개최를 요구하였다고 하고, 무엇보다 ‘관종’ 도널드 트럼프가 평양에 가는 역사적 장면의 주인공이 되고픈 욕망을 떨치지 못할 거란 예측이 충분히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평양행을 결심하지 못하였다. 미 행정부와 백악관, 정계에 가득한 적대정책의 신봉자들, 대결주의자들과 호전집단의 반대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평양으로 가는 것은 패배고 굴욕이며 제재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한사코 반대해 나서는 그들에게 기가 눌린 트럼프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영감’을 얻어 판문점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북측에서는 차가운 반응이 되돌아왔을 뿐이다. 결국 국무장관 폼페오를 평양에 다시 보내 싱가포르 개최를 겨우 합의하였다.

이 과정을 보면 한달 후에 열릴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걱정하게 된다. 북미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발표하던 두 달 전에는 누구나 정상회담 장소는 평양일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때부터 일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몽골 천막에서 정상회담을 한다는 기괴한 소문부터 유럽의 어느 나라가 북미정상회담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북미대결이 첨예해진 1990년대부터 북미정상회담을 하는 것, 평양을 방문하여 한반도 평화의 주역자리에 앉아보는 것은 미국 대통령들의 소망이었다. 그들에게는 미국의 본성이나 대북정책의 본질과 별개로 정치인으로서의 욕망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북적대로 먹고사는 세력의 반대와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던 빌 클린턴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며, 6자회담 9.19성명 발표 다음날 말을 바꿔야 했던 조지 워커 부시도 마찬가지였다. 임기 8년 동안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한 버락 오바마는 말할 것도 없었다.

주류정치 소속이 아니고 결정권을 자기가 행사해야 직성이 풀리는 특성을 가진 트럼프는 좀 다를 거라는 관측이 있었다. 북미정상회담에 전격 합의한 것은 이런 평가가 근거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후 정상회담 장소 결정 등과 관련해서 실망을 주고 있다.

정상회담은 정상끼리 하는 최고의 정치 담판이다. 상호관계와 정세, 내부사정 등이 작용하지만 정상의 결단과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그래서 예상이나 전망을 하는 일이 큰 의미가 없고 실제 벌어지는 일과 차이가 큰 경우가 많다.

더구나 북미정상회담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서 어떤 성과가 있을지, 어떤 변화가 시작될지는 북과 미국 양 정상의 지도력과 담력에 달려 있다. 이것은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확인된 일이기도 하다.

역사적 전환을 이루려면 정상이 자기 나라와 정치에 대한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는 지도자여야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지지도에 신경 써야 하고 이 눈치 저 눈치 봐야하는 정치인은 그런 대단한 일을 하지 못한다.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역사적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트럼프가 보여주고 있는 답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대북적대에 목을 매고 있는 호전집단의 저항을 견뎌내지 못하면 트럼프의 미래도 전임 대통령들, 특히 버락 오바마의 지난날과 별로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미국이 택할 일이며 그 선택의 결과 또한 미국이 져야할 책임과 부담으로 될 것이다.

한반도 정세와 힘의 균형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트럼프에 대해 들뜰 이유도 없지만 막연한 기대도 금물이다. 한국의 진보운동은 미국이 어떻게 나오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주의 깊게 보고 대처를 잘해야 한다. 

3. 비핵화의 족쇄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에 대해 ‘쓰레기’니 뭐니 하는 넋 나간 소리를 해대는 자들이 있었다. 적폐정당과 정치인들이 그들이었는데 이들은 곧바로 대중들의 지탄을 받았다. 자신들이 ‘쓰레기통에 내던져지는’ 꼴이 되었는데 그나마 남아있던 60대와 70대의 지지층까지 등을 돌렸으니 그 충격이 참으로 클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낡은 노랫가락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북이 관계개선, 대화에 나온 것은 제재의 효과다’는 식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어느 국회의원은 ‘판문점선언은 10년 동안에 걸친 우리의 대북 적대정책이 만든 것이다’라는 헛소리를 했다고 하는데 비슷한 맥락이다.

어떤 언론들은 ‘제재로 인해 북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고급정보(?)를 보도하며 북이 관계개선에 나온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과 관계없이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능력 중의 하나이니 ‘제재를 못 이겨 대화에 나섰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대북관계, 한반도정세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파격적이고 통이 큰 북의 행보에 그저 놀라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가 된다.

북미정상회담을 놓고 한국 언론들은 온통 ‘비핵화’ 타령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북미간,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발발 위기해소가 절박한 문제이긴 하지만 ‘비핵화’는 해결책이 아니며 만병통치의 해법도 아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런 상식에 맞지도 않게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해야 하느니 ‘PVID(영구적이며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가 맞느니 하는 논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전 배치된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전례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일이다. 전쟁위기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지도 따로 따져봐야 한다.

북미간의 적대관계가 근본적으로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핵화는 전쟁위기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북미관계가 ‘완전하고 비가역적이며 검증가능한 우호적인 관계’로 전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핵화, 즉 북의 핵무장 해제는 1990년대나 80년대로 되돌아가자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비핵화에 매달리는 것은 수십 년에 걸친 적대적 대결을 종식시키는 역사적 변화를 제약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 남북의 협력과 공동번영,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이 역사적 발걸음에 비핵화의 족쇄를 채우는 어리석은 일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4. 자신의 힘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 판문점선언 1항의 첫 번째 내용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북미정상회담이 열려봐야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의 이행여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남북정상회담을 북미정상회담의 사전회담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판문점 회담으로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우리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으며 어떤 놀라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확인된 마당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놀라운 일이다. 유엔의 제재가 그대로 있으면 남북의 교류와 협력에 지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재해제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종속물이 아니다. 남과 북의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미국에게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큰 힘 중의 하나다.

지금과 같은 격변의 시대에서 통일운동, 진보진영이 제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 자기의 힘, 우리 민족의 힘을 믿지 못하는 허무주의를 떨쳐버려야 한다.

6월12일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에 역사적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을 마냥 기다리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우리 민족의 힘을 믿어야 한다.

지금은 판문점 선언을 하나라도 더 많이, 하루라도 더 빨리 이행하고 현실로 만드는 일에 있는 힘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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