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협상 결과와 GM 투쟁의 교훈

▲ 사진 : 뉴시스

정부가 두 달 만에 실사를 끝내고 GM과의 협상을 타결했다.
GM은 한국지엠에 대한 빚 28억 달러를 출자전환하고, 10년 동안 시설투자 20억 달러, 구조조정비용 8억 달러, 운영자금 8억 달러 등 총 36억 달러의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7.5억 달러(약 8000억 원)를 투자하고 외투지역 지정 등 지원을 검토하기로 했고, 노조는 인력 구조조정과 인건비·복리후생비 절감으로 10년 동안 3조7000억 원을 양보했다.

정부는 5년 동안 한국지엠 지분 매각을 전면 제한하고 이후 5년 동안에도 35% 이상 1대 주주를 유지하도록 합의했다. 총자산 20% 이상 자산 매각을 제한하는 경영 견제 장치인 ‘비토권’도 회복했다. 

산업은행은 실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본사와의 거래”에 문제가 없다며 GM에 면죄부를 주었다. 그러나 그동안 논란이 됐던 ‘매출원가 구조’, ‘연구개발비 유출’, ‘이전가격’, ‘본사의 이자놀이’ 의혹 중 어느 것 하나 해명하지 못했다.

매각 당시보다 후퇴한 ‘굴욕 협상’ 

합의 내용을 평가하면 2002년 헐값 매각 당시의 협상보다 더 후퇴한 ‘굴욕 협상’이다.
첫째, CSA(비용분담협정)으로 GM 해외법인들을 지원하는 연구개발비 지출 의혹이 해소되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지엠이 2002~2016년까지 15년 동안 연구개발비로 지출한, 7조2000억 원 중 58%가 GM의 다른 해외법인들이 생산하는 차종에 적용됐다. 천문학적인 돈을 내가며 연구개발을 했으나 지적재산권도 받지 못하고 글로벌GM 경영에 복무했다. 

둘째, 본사 차입금에 높은 이자를 주는 기존 ‘이자놀이’는 정상적인 것으로 평가받았고, 신규 투자 28억 달러가 다시 대출로 이루어져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셋째, 다국적기업의 해외 자회사에서 들어오는 원재료는 비싸고, 국내에서 해외판매 법인으로 나가는 판매가격은 싸게 책정하는 ‘이전가격’이 해명되지 못했다.

넷째, GM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 한국 설치는 생산시설과 관련 없는 이름뿐인 것이며, 신차투입과 자금투입 시점 등은 구체적 일정과 내용이 없다.

다섯째, 군산공장 폐쇄 대책과 남은 조합원들 문제, 2000여명의 비정규직 문제, 불법파견 문제도 해소하지 못했다. 

이런 졸속 합의는 호주의 경우와 같이 향후 GM이 정부 지원금을 다 받은 뒤 철수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10년 존속’ 약속을 두고 GM은 연구소 하나만 남겨 놓아도 ‘존속’이라고 할 것이다. 매국적 협상을 한 관료들, 그런 관료를 임명하고 방치한 임명권자, 모두 책임을 면할 수 없다. 

▲ 지난 10일 서초구 자동차협업협동조합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GM 협력 MOU 체결식’에 참석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 베리 앵글 지엠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오른쪽),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 [사진 : 뉴시스]

GM 투쟁으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첫째, 경제주의 실천으로는 자동차산업도, 노동자 생존권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GM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법정관리인데, 산업은행과 노동조합은 독자생존과 법정관리로 GM의 경영권 박탈을 압박하지 못했다. 오히려 GM이 법정관리, 철수 등을 운운하며 노조와 정부를 협박했고 결과는 GM의 대승리였다. 빨대경영을 철회하든지 아니면 떠나든지 하나를 택하라고 우리가 GM을 압박하며 싸워야 했다. 

산업과 기업 경영에 대해 주권국가로서 경제주권을 가져야 초국적 자본에 대응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미래 전략을 가지고 이런 기조로 대응해야 투쟁의 정당성과 국민적 지지를 확보해 승리할 수 있다. 실제 GM이 떠나더라도 이런 기조를 가지면 다양한 독자생존 방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한국지엠은 수 년 전부터 쉐보레 브랜드 매각, 자본잠식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근본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고 단기적인 임금 확보 이상의 실천을 조직하지 못했다. 채용비리 등에 노조 간부들이 연루되어 현장조직들이 이번 투쟁을 힘 있게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주요 산업과 기업에서 외국인들의 지분이 50%를 넘지 못하며, 합작형태를 유지해 외국자본이 마음대로 매각이나 대량해고를 할 수 없다.

대공장노조, 산별노조, 민주노총의 실천은, GM 사태에서 교훈을 얻고 임단협 투쟁을 넘어 경제주권과 산업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개선과 정치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어느 정권에서도 노동조합은 단결투쟁 전선을 기본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노조의 강력한 투쟁대오 없이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조직력이 약했던 현대중공업도 간부 농성과 파업 결의를 통해 투쟁전선을 구축한 결과 희망퇴직이 소수에 그쳤다. 금호타이어의 강력한 파업전선, STX조선의 민주당사 농성 투쟁은 대량해고 등 추가적인 노동자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지엠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에도 힘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전망이 없다고 판단한 2600명이 퇴사했고, 이후 마지막 협상까지 강력한 투쟁도, 파업 결의도 하지 못했다. 보수언론의 노조 책임론에 밀리고 자본을 압박할 투쟁동력을 조직하지 못한 결과, 노동자만 희생을 보고 미래 전망은 확보하지 못한 채 끝났다. 초기에는 GM의 빨대경영에 대한 비판여론도 높았고 많은 전문가들의 지원도 있었지만 이를 강력한 대중투쟁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셋째,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혁신성장에 밀려 후퇴하고 있고, 산업구조재편 속에서 구조조정이 확대되고 재벌개혁은 퇴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이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충돌하면서, 성장과 이윤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산업 정책이 노동복지정책을 좌우하고 있다. 실제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은행 등의 수장들이 경제산업 정책을 주도하면서 노동부, 복지부 장관들은 실권 없는 부차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 재정, 산업정책, 금융지원 등에 대한 결정권 없는 노동·복지 정책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이제 조선업에 이어 자동차 등으로 구조조정이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대화도, 소득주도성장도 현장의 투쟁동력에 기반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 노동조합은 한편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 투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안 정책’과 ‘공론화’를 병행해야 한다. 

‘촛불혁명’, ‘한반도 평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노동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6월 항쟁이후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듯이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촛불’과 ‘평화’의 거대한 물결에 이어서, 구조조정 저지와 비정규직 항쟁으로 ‘노동의 봄’을 불러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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