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이야기
많은 정치인이 노동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해결책은 제각각이다. 촛불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기대로 현장이 들썩인다. 그러나 늘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만 하다. 왜일까? 노동자의 힘 없이는 제대로 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힘 없이는 촛불 정부의 노동개혁도 힘을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종훈이 ‘현장’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
구두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투쟁
8일 어버이날, 지난 달 26일부터 탠디 본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하는 제화노동자들을 찾았다.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이들은 우리가 잘 아는 제화회사 ‘탠디’의 협력업체에 구두를 납품하는 제화공이다.
백화점에서 화려한 불빛을 받으며 전시된 구두들, ‘제화공들의 손을 거친 수제화’라며 판매되는 구두의 판매가는 30만 원 넘는 것이 많다. 서민들에게는 수제화 구두 한 켤레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이런 화려함 뒤에 대접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제화공들이 구두 한 켤레를 납품하며 받는 돈은 7,000원. 10년째 오르지 않은 금액이라고 하는데 지난 10년 사이에 오른 구두값을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들이 탠디 본사에 요구하는 것은 구두 공임 2000원을 더 달라는 것이다. 10년 전 공임이 7,000원이었으니 1년에 200원씩만 올려달라는 것이다. 10년 사이 물가인상률을 봐도 그렇고, 탠디 본사의 영업이익이 27억 원에서 69억으로 두 배 이상 성장한 점을 봐도 이들의 요구가 지나쳐 보이지 않다. 오죽하면 노동자들이 본사 점거 농성까지 택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40년, 많게는 50년간 구두 만드는 일을 해온 제화공들이 작업장에 앉아 만들 수 있는 구두는 2시간에 3켤레 정도, 시급으로 따지면 만 원 정도를 받는 꼴이다. 임금을 보존하려면 하루 8시간 근무는 꿈도 못 꾼다. 10~12시간 장시간 일을 하고도 식비 등을 제하고 나면, 한 달 많게는 350만 원의 월급을 받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성수기 때나 가능한 일. 비수기가 돌아오면 일감 자체가 없다. 4대보험도 안되고, 퇴직금도 없으니 결코 많은 금액이라 하기엔 민망하다.
회사는 ‘이렇게 많은 임금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또 공임을 올려달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흘린다. 제화공을 ‘장인’이라 치켜세우며 ‘장인’이 만든 구두를 판매한다는 광고를 하는 구두회사가 할 말은 아니다.
이들은 고용형태도 특이하다. 탠디가 하청업체에 작업지시를 하고 자제까지 공급하지만 제화공이 개인사업자다. 개별사업자 등록증을 취득해 작업장에 투입된다. 그래서 구두 한 켤레 당 공임을 받고 일하는 형식이다. 전형적인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탠디 측은 ‘하청업체에 가서 공임 인상을 요구하라’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누구에게 항의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어버이날의 점거 농성
탠디 농성장을 찾은 날이 마침 어버이날이다. 회사 입구에서부터 차량과 용역들이 농성장 접근을 막고 있었다. 농성하는 조합원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한 노동자들이다. 여느 때 같으면 아들딸들과 저녁식사라도 하고 있을 날에 오늘은 이렇게 농성을 하고 있다. 농성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이 아려왔다.
애초 계획에는 회사 측을 만나고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는 짧은 일정이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어버이 날이니 어떻게든 오늘 협상을 잘 마무리 짓고 집에서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정에 없던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됐다.
협상에는 회사 측 정종신 전무와 김호협 이사가, 노동조합 측 정기만 지부장과 간부들이 참여했다. 노조의 공임 2000원 인상안 요구에 대해 회사는 840원의 인상안을 내놓았다.
협상이 늘 그렇듯이 질퍽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인내해야 했다. 오후 2시30분에 회사에 들어가 저녁6시가 넘도록 회사와 노조를 번갈아 가며 대여섯 번을 만났다. 내용이 진전되지 않아 회사 측에 부탁해 탠디 정기수 회장과 직접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다.
여론의 부담 때문인지 회사도 나름 성실하게 대화에 임했다. 노동조합 역시 일정부분 양보하면서 협상안의 간격이 좁아졌다. 840원 인상을 이야기하던 회사 측은 마지막엔 1,250원까지 인상안을 내놓았고, 노동조합도 1,500원까지 협상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지막 타결은 되지 못했고, 협상은 결렬됐다. 그렇게 어버이날 농성은 계속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이 지긋한 우리 제화노동자들... 어버이날은 집에서 가족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협상 과정을 지켜보니 탠디 농성은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성의 있게 협상에 응해준 탠디 본사가 우리 제화노동자들의 생존권적 요구를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사회는 장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제화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우리사회가 ‘장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제화공들 대부분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부장은 “제화 기술 배우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일도 힘든데 수입이 높은 편이 아니어서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에서 제화공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제화산업이 집중된 성수동의 경우 이곳보다 더 열악한 곳도 있다”고 전했다. 유럽의 장인들이 만든 명품 구두나 가방을 부러워하면서도 우리사회는 구두 장인을 이렇게 대하고 있었다.
30만원이 넘는 구두에 제화공들의 몫이 고작 1만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의 구두를 보면서 ‘이 구두는 누가 만들었을까?’ 제화공들의 거친 손을 떠올려 본다.
어버이날 따뜻한 밥 먹기 죄송스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