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캐나다 핫독스 영화제에 다큐 <앨리스 죽이기> 출품한 김상규 감독

캐나다 토론토에서 지난달 26일부터 오는 6일까지 ‘캐나다 핫독스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Hot Docs Canadian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가 열리고 있다. 핫독스 영화제는 세계 각국의 작품성 있고 우수한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초청, 상영하는 북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는 다큐영화제다. 이 영화제의 월드 쇼케이스(World Showcase)부문에 초청된 한국의 다큐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제작자 김상규 감독을 지난달 27일 토론토에서 만났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온 세계와 조국이 벅찬 감동과 통일에 대한 기대가 넘치고, 유수 다큐영화제에 젊은 한국감독의 작품이 초청되는 경사가 겹친 이날. 김 감독과 유쾌하고 즐거운 얘기만 나눌 수는 없었다.

<앨리스 죽이기(To Kill Allice)>는 한국 사회의 반공, 대북 적대이데올로기의 극적 단면을 보여줬던 재미교포 신은미씨 폭탄테러를 밀착 취재한 다큐영화다. 평범한 재미교포인 신은미씨는 지난 2014년 겨울, 남편과 다녀온 북한(조선) 관광경험담을 국내의 한 토크콘서트를 통해 전하는데 우익보수단체와 종편방송들은 그녀를 “종북 빨갱이”로 매도하는 매카시즘의 극단을 보여줬다. 당시의 실상을 조명하고 한국사회에 기형적으로 존재하는 분단의 상처와 현실을 영상에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종북’이라 낙인찍혀 강제출국 당하고, 여러 면에서 고통 받게 된 신은미씨와 종북을 부추겼던 종편언론의 행태를 돌아보며 그가 과연 진짜 종북세력인가를 짚어본다.

어쩌면 신은미씨를 옹호한다는 지적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레드컴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객관적이거나 공정하지 않은 한국사회의 현주소와 분노와 혐오를 부추기는 제도언론과 반공이데올로기의 악영향을 깊이 있게 조명한 영화이다.

다음은 김상규 감독과 인터뷰 내용이다.

- 캐나다 핫독스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로부터 <앨리스 죽이기> 초청과 관련한 메시지가 있었나?

“초청작 선정과 관련해 핫독스 영화제로부터 특별한 메시지를 받은 건 없다. 이 영화제는 출품을 원하는 제작자들의 응모를 받아 응모작들 중 초청작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연말에 공모했고 2018년 3월말 선정 통보를 받았다. 월드쇼케이스의 비경쟁부문은 각 나라의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선정하는 거로 알고 있다.”

- 영화 제작자가 된 동기와 영화를 제작하면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지?

“특별한 동기라기보다 영화라는 매체와 영상제작이라는,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능력을 통해 사회적 문제들, 특히 우리 삶과 직결된 분단과 자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사회적으로 발언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를 영상에 담는 작업과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며 문제제기와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영화제작을 하고 있다.

영상제작은 대학 재학 시절부터 했는데 전공은 전자공학이다. 영상동아리를 통해 영상제작 활동을 하게 됐고 대학원에서 다큐영화를 공부하고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중‧단편의 시사다큐를 제작한 지는 3년 정도 됐다. 초기 만들었던 영상들은 짧으면 3분, 길어야 30분 정도의 짧은 영상들이었는데 그러다보니 깊이 있는 얘기를 담고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관객들과 깊이 호흡하고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영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다큐영화를 제작하게 됐다. <앨리스 죽이기>가 첫 장편 다큐영화다.”

▲ 다큐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제작자 김상균 감독.[사진 : 나양일 통신원]

- 제작비용이 적잖이 들었을 것 같은데.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있어서 영화진흥위원회 기금으론 제작지원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다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DMZ영화제’와 이영희재단 등을 통해 창작비용을 후원 받은 적이 있다. 부족한 부분은 직접 벌어서 조달했고 주변에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과 품앗이를 통해 협조를 받아 활동하고 있다.”

- 다큐영화 <앨리스 죽이기> 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신은미씨 문제를 찍게 된 계기는, 그분 강연을 몇 차례 들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조선)과 실제 북의 모습에 다른 부분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북에 대한 한쪽으로 편중되거나 왜곡, 굴절된 정보가 아니라 그분 강연과 자체 취재한 북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관객들이 북한(조선)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만들었다. 시작은 2014년 4월16일 신은미씨 강의를 듣고 영화를 촬영해도 되는지 동의를 구했고, 2014년 11월 서울과 지방 강연을 함께 다니며 본격적으로 촬영을 하게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촬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익산 폭탄테러가 터진 거다. 익산 테러사건을 통해 원래 담고자 한 북한(조선) 얘기가 아니라 신은미씨 종북 논란을 통해 한국사회를 돌아보는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 한국에서 예술‧영화와 관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어떻게 생각하는지? 원하는 작품을 만드는데 표현의 자유에 제약은 없었나?

“독립영화를 하거나 음악,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양심의 울림을 거부하거나 반대하지 않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창작활동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하지만 그대로 다 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도 이 영화를 만들면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한 거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국사회엔 이미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만 접근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신은미씨가 한국에서 강제출국을 당한 것도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영화로 표현한 게 처벌받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위축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된다고 할 수 없다.

신은미씨 경우도 그다지 정치적 의사표현도 아니고 북을 다녀온 여행자로서 경험담을 얘기한 건데 여행담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고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는 건 심각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하고 생각한다.”

- 남북화해와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에도 아직 굳건한 국가보안법이 예술활동이나 영화창작에 제약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대다수 예술가들에게 제약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대다수 예술가들이 보안법의 존재가 자신의 예술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아직도 보안법이 건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보안법이 누구에게 적용되고 안 되고를 떠나 보안법 존재 자체가 상상력에 제약을 준다고 본다. 예술은 창조활동이고 창조는 상상력에서 출발하는데, 만약 특정한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한쪽 눈을 가리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온전한 창조활동과 예술이 나올 수 있을까?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 일상적으로 영향을 주는 건 아닐지 몰라도 상상력의 자유를 제약하고 제한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구상 중이거나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소재는?

“분단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모습과 상황들이 분단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분단과 불평등한 한미관계로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왜곡된 구조와 문제들로 고통 받는 ‘분단의 틈새 아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작품을 해보고 싶다.”

- <앨리스 죽이기>에 관해 관객들에게 하고픈 말씀은?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저사람 빨갱이, 친북·종북 아냐?’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분단이 자기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다수인데 과연 ‘나는 레드컴플렉스로부터 자유로운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돌아보는 기회를 드릴 거라고 생각한다. <앨리스 죽이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런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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