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꿈에서나 그려온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고 평화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종전선언이자 남북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새 역사를 열겠다고 민족과 세계에 알린 포고문이다. 판문점 선언은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시대와 민족의 절박한 요구인 한반도 평화체제와 통일을 이룰 구체적 경로와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상 최고 수준의 합의라 하겠다.
판문점 선언의 가장 큰 의의는 ‘자주통일’이라는 우리 통일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 조치를 내왔다는 점이다. 자주통일이란 선언문 그대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에 의거해 외세의 간섭을 배제한 우리민족 스스로 이뤄내는 통일이다. 선언문에선 이의 실현을 위해 ▲정상간의 정기적 회담과 직통전화 ▲고위급회담을 비롯한 분야별 대화 ▲남북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시했다. 주목할 점은 연락사무소를 남북 양측이 아닌 개성 한 곳에만 설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남북수교를 위한 전 단계 조치가 아니라, 예상되는 전방위적 교류협력을 남북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기구다. 판문점 선언이 6.15공동선언을 계승한다고 할 때, 공동연락사무소는 연합연방제(연방연합제) 통일방안에서 제시한 ‘민족통일기구’로 나아가기 위한 전 단계 조치로 봐야 한다.
다음으로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의 경로와 방안을 남북이 처음 합의,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중국을 더한 4자회담 개최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의 실현을 위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밝혔다. 이는 논란이 됐던 평화협정 주체를 명확히 하고, 종전선언을 매개로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경로와 방안을 밝힌 것이다. 아울러 평화협정과 비핵화 과정이 병행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전쟁이 끝날 것이다!”라고 화답했다. 한국전쟁의 종식은 정전 이후 고착된 한반도 분단체제 위에 세워진 모든 구조와 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뜻한다. 그야말로 대전환이다.
대부분 언론은 ‘완전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춰 판문점 선언의 최대 성과가 비핵화 원칙 합의인 양 보도한다. 물론 평화체제를 위해 이 명문화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비핵화는 지난달 대북특사단의 발표처럼 ‘북에 대한 군사적 위협의 종식과 안전보장’을 전제로 한다. 즉 미국의 북에 대한 핵위협, 적대시정책의 종식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핵위협이란 주한미군뿐 아니라 일본, 괌, 미본토로부터의 핵위협도 포함한다. 이런 문제까지 해결돼야 북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종식된다고 할 것이다. 북한(조선)이 지난 20일 열린 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시험 중지를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 설명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 건설에 적극 이바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한반도 비핵화 과정이 세계 비핵화의 일환임을 뜻한다. 따라서 평화협정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화협정을 통한 북미간 적대관계 청산과 관계정상화가 비핵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판문점 선언의 비핵화 원칙 합의는 북미정상회담에서 진행될 평화협정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신호탄을 쏜” 정도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이제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와 자주통일의 문이 열리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린 첫 포고문이다. 우리 민족은 너무 오랜 세월을 기다려왔다. 그 사이 많은 이들이 늙고 병들고 스러져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지금까지 달려온 속도 유지’를 당부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만리마 속도를 남북통일의 속도’로 화답한 것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우리 민족의 절실한 심정을 반영한다. 남북의 선언에 주변 4강이 모두 호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회가 왔다. 판문점 선언에 의거해 분열과 대결을 접고, 자주와 평화가 살아 숨 쉬는 민족통일국가 건설에 합심해 나설 때다.